부산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 정문 앞에서 10년 넘게 돼지국밥 집을 운영해온 김영자(가명·54) 씨는 파업 때문에 장사가 안돼 답답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하며 혀를 끌끌 찼다.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 정문 앞에 있는 해장국 집을 운영하는. 김 씨는 "회사가 너무 야박하다"며 "아무리 회사가 어려워도 그렇게 사람을 해고하는 법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느냐"고 타박하며 돼지국밥을 내려놓았다.
김 씨의 식당에는 손님들이 앉는 탁자마다 '사과 식초'가 놓여 있었다. 김 씨는 "쇳가루 마시며 일하는 노동자들인지라 '칼칼한' 맛이 나는 걸 좋아한다"며 "그래서 음식도 일부러 맵고 짜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식초는 노동자들의 기호에 맞게, 더 자극적으로 먹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면 먹으라고 놓은 것"이라며 "다 자식 같은 이들이라서 이 정도 서비스는 한다"고 덧붙였다.
▲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 전경. ⓒ노동과세계(이명익) |
"이들 해고하면 가족들은 어떻게 되냐?"
김 씨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온지라 모두가 내 자식 같은 이들"이라며 "이번에 해고된 노동자들 대부분이 우리 집에서 국밥을 먹었던 사람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는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 해고자가 30대 초반이거나 막 가정을 꾸린 젊은 애들"이라며 "이들을 해고하면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는 "물론 파업을 하고 나서 매상이 떨어진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해고자가 늘어나면 우리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 씨는 "해고는 노동자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상권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김 씨야 워낙 이곳에서 장사를 하면서 영도 조선소의 상황을 '빠삭'하게 알아서 그렇지 기자가 만난 부산 시민들 다수는 영도 조선소 문제를 잘 알지 못했다. 안다 하더라도 해고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했다'.
부산 중심가 서면 오거리에서 만난 대학생 이기영(23) 씨는 "회사가 어려우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왜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꼼장어' 식당을 하는 박정자(47) 씨는"다 해결된 문제에 제삼자가 끼어들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들었다"며 "왜들 자꾸 싸우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골적으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비판하는 이도 있었다. 부산 영도 조선소 뒤편 산동네에서 목욕탕을 운영하는 김인기(가명·56)씨는 "희망버스도 문제고, 김진숙이라는 사람도 문제"라며 "뭔가 콩고물이 떨어지길 바라며 그러고 있다"고 원색적인 비난도 했다.
과연 희망버스가 방해자에 불과할까?
실제 부산 시민이 한진중공업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구조조정 철폐라는 기치를 내걸고 30일 출발하는 3차 희망버스를 두고도 말들이 많다. 지난 13일 허남식 부산 시장, 신정택 부산 상공회의소 회장, 제종모 부산시의회 의장, 장화익 부산 고용노동청장 등은 공동으로 '희망버스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진중공업 노사 문제에 제삼자가 개입하지 말라는 것.
이들의 시급히 영도 조선소가 정상화돼야 부산 경제도 안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거기에 희망버스는 방해자에 불과하다는 것. 하지만 이같은 피상적 주장과는 달리 영도 조선소 노동자를 대량 해고한 게 부산 경제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라는 주장은 구조적이다.
조선 산업 전문가인 허민영 경제학 박사는 "2009년 기준으로도 이미 조선업 관련 부산경제의 약화는 점차 가시화되어 왔다"며 "회사가 그 이후 단행한 구조조정은 관련 출하액, 사업체수, 부가가치액, 종사자 지수 등 주요 지표와 추가적인 감소는 물론, 지역경제의 악영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민영 |
허 박사는 "명예퇴직자와 정리해고자 수가 이미 수천 명에 이르고 있으나 이들에 대한 일자리 대책에 거의 전무하다는 점도 부산 경제를 악화시키는 문제"라며 "공식통계만 보더라도 감소한 일자리 수는 2500개를 웃돌고 있다. 소리소문없이 해고된 비정규직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갑절을 넘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 박사는 "노사 합의 사안 중에는 해고된 노동자들의 재취업을 돕겠다는 항목이 있지만, 과연 이것이 어떤 역할을 할지도 의문"이라며 "또한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시하려면 부산 시민의 혈세가 상당수 낭비된다"고 주장했다.
허 박사는 "한진중공업 대량감원 사태는 곧 지역사회에 사회·경제적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일반 시민에게 이런 문제는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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