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대한통운 인수를 둘러싼 삼성-CJ그룹간 갈등은 1라운드가 종료되었다. 그 전날까지도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던 두 친족그룹은 일단 봉합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삼성 측은 "삼성SDS의 참여는 통합 물류솔루션을 판매하기 위한 비즈니스 차원의 결정"이었을 뿐이라고 적극 해명했고, CJ 측 역시 '삼성 음로론'을 제기하며 이건희 회장을 맹비난했던 홍보담당자를 경질했다. 그러나 이 사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향후 확인⋅감시가 필요한 요소들이 있다.
CJ의 '승자의 저주' 문제
우선,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으로 '분노의 베팅'을 한 CJ 측의 문제, 즉 이른바 승자의 저주 문제가 있다.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싼 범현대가의 갈등과 관련하여 필자가 지난 1월 6일자로 <프레시안>에 기고한 칼럼 "승자의 저주를 말할 자격?"에서 이미 지적했던 바와 같이, 제3자가 승자의 저주 운운하는 것은 결코 오지랖 넓은 간섭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 관련 기사: "승자의 저주를 말할 자격?")
우리나라의 대형 M&A에서 승자의 저주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총수의 무모한 의사결정을 견제하지 못하는 재벌 지배구조의 결함을 상징하는 것이며,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비용 부담 속에 회생시킨 워크아웃 기업을 단지 채권단의 이익만을 기준으로 매각하는 부실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의 결함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례적 행보, 그 배경은?
예의 주시해야 할 사안은 또 있다. 삼성SDS가 포스코와 손잡고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그 때문에 삼성증권이 CJ와 맺은 자문계약을 파기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물론 삼성 측은 계열사 차원의 독자적인 결정이라고 해명했고, 심지어 삼성증권이 CJ와 자문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그룹 차원에서는 알지도 못했다고 했다.
필자는 재벌 전문가라는 평을 듣고 있다. 나아가 (필자에게는 썩 내키지 않는 별명이기는 하지만) '삼성 저격수'로 불리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지난 10여년 동안 삼성을 관찰해왔던 필자로서는 대한통운과 관련된 삼성의 해명을 단 한마디도 믿을 수 없다.
특히 그룹 차원에서는 삼성증권의 자문계약 체결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는 해명이 진짜 사실이라면, 이는 김순택 부회장 휘하의 미래전략실의 무능을 자인하는 것이며, 경영 현안을 직접 챙기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에 구멍이 생겼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 된다.그런데 이 해명을 믿으라고?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 정말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만약 이번 사안이 이건희 회장의 지시 하에 이루어진 일이라면, 그 배경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이병철 회장 사후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갈등을 그 배경으로 지목한다. 물론 그럴 듯한 추론이기는 하지만, 단지 20년 전의 구원(舊怨) 때문에 삼촌이 장조카 일에 초를 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게 해서 이건희 회장이 얻을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포스코와 손잡은 삼성SDS의 최대주주가 이재용 사장이라는 사실에 착목하여, 사촌 간의 전쟁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별로 설득력은 없는 것 같다. 포스코⋅삼성SDS컨소시엄에서 삼성SDS의 지분은 5%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소수 지분으로는 대한통운 인수로부터 얻을 직간접적 이익은 별로 크지 않다. 더구나 지금 이 순간 이재용 사장에게 필요한 것은 삼성SDS라는 한 계열사의 이익이 아니다. 오히려 3세 총수로서의 리더십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이재용 사장이 사촌형과의 갈등을 자초하여 얻을 게 뭐가 있겠는가?
총수일가간 갈등, 지배구조 위험의 핵심
결론적으로, 이번 삼성-CJ그룹간 갈등의 배경은 오리무중이다. 다만, 이것을 단순히 20년전의 구원 때문만으로 보기도 어렵고, 계열사 하나의 사업적 이익의 문제만으로 보기도 어렵다. 제3자로서는 일 길이 없는 양 총수 일가 간의 문제로 추측된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진행형'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삼성그룹과 이로부터 계열분리된 CJ그룹 및 신세계그룹은 모두 이병철 회장의 상속재산을 차명으로 관리하다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공통점을 갖고 있다. 차명재산 전부가 상속재산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아 있다. 삼성특검도, 그리고 국세청도 파악하지 못한 차명재산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두 집안 내부의 일로 남겨둘 수는 없다. 총수일가의 사적 이해관계 때문에 계열사의 사업적 판단이 좌지우지되는 것이야말로 지배구조 위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승자의 저주 문제와 마찬가지로, 국민경제 전체를 피해자로 만드는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 모두가 이번 사안의 향후 진행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공정사회 국정철학 차원에서도 예의 주시해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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