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당청 관계'를 강조하던 한나라당이 결국 청와대의 입김에 꼬리를 내렸다. 청와대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 기능 폐지 움직임에 제동을 걸자 '폐지'에서 '존치'로 입장이 돌아서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지난 3월 여야간 폐지 합의를 두고 "합의한 적 없다"며 발뺌하고 나섰다.
여야는 10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회의에서 검찰관계법 심사소위가 올린 복수의 중수부 폐지안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이 소위의 합의까지 번복하면서 여야간 대치 상황으로 치달았다.
말 바꾼 한나라 "우리 합의한 적 없는데?"
여야의 '벼랑 끝 대결'은 검찰소위 위원장인 박영선 의원이 "중수부 폐지에 원칙적으로 소위가 합의했다"고 보고하자, 한나라당 간사인 이한성 의원이 "합의한 적 없다"고 반박하면서 시작됐다.
이한성 의원은 "중수부를 폐지하기로 전원 합의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합의에 이른 것으로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발했고, 같은 당 손범규 의원 역시 "민주당의 발표로 국민들이 여야가 중수부 폐지에 합의한 걸로 잘못 알게 됐다"며 거들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왜 이제 와서 딴 소리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영선 의원은 "속기록에 다 나와 있는데 한나라당이 언론만 나타나면 연극을 하며 국민을 혼란케 하고 있다. 자꾸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법적 대응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과거 사개특위 속기록을 보면, 중수부 폐지를 주장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언급이 그대로 나와 있다. 지난 3월 11일자 사개특위 속기록엔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특별소위 합의사항 보고'에서 "우리 소위원회 판단으로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 손광수, 안대희 중수부장 시절을 마지막으로 시대적 소명을 다한 것이 아니냐,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사건으로 이제 종언을 고할 때가 되었다", "지금 대검에는 공안부·강력부·형사부가 있다. 중수부의 직접 수사 기능을 폐지하자", "대검 중앙수사부의 직접 수사 기능을 없앰으로써 대검을 정상화하는 것" 등 발언 내용이 담겨 있다.
4월 12일자 속기록에는 민주당 김학재 의원이 "(중수부) 폐지에 합의하지 않았냐"라고 확인하자,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이 "그러게요"라고 답한 부분이 나와 있다.
언론보도에서도 합의 발표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의 '중수부 폐지' 주장이 그대로 담겨 있다. <프레시안> 보도를 보면, 지난 4월 20일 열린 사개특위 회의에서 한나라당 이한성 의원은 "검찰이 처음부터 추상처럼 수사했으면 국민의 신뢰를 받았을 것 아니냐"며 중수부 폐지에 반발하는 검찰을 공격했다. 같은 당 주광덕 의원 역시 "중수부 폐지는 국민의 요구나 가치를 담은 것이지 검찰 수사를 무력화시키는 방향이 아니다"라고 '폐지'를 주장했다. (☞관련 기사 : 대검 중수부, 수사권 폐지되나)
민주 "속기록 있는데 합의한 적 없다고?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
그간 합의 사항을 부인하지 않던 한나라당은 사개특위 전체회의가 열린 10일에서야 불현듯 합의 사안을 부정하며 한 발 빼는 모양새다. '중수부 출신 중수부 폐지 주장 의원'으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던 이한성 의원은 "중수부 폐지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던 장윤석 의원이 회의에 불참한 날 (중수부 폐지를) 결정하지 않았냐"고 반박했고, 이에 박영선 의원은 "장 의원이 회의 결석이 너무 잦아 원래 없던 소위 간사까지 만들어 이한성 간사가 한나라당 의견을 수렴키로 하지 않았냐"며 반박했다.
민주당 김동철 의원도 "속기록이 있는데도 합의 사항이 없다고 하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라며 "더 이상 사실 관계를 가지고 꼼수를 부리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같은 당 유선호 의원도 "이런 식이라면 더 이상 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중수부 폐지를 놓고 여야의 양보없는 공방을 벌임에 따라, 1년 4개월 동안 논의됐던 주요 사법개혁 사안도 함께 발이 묶일 가능성이 커졌다. 여야간 고성이 오가면서 한 때 중단됐던 회의는 오후 2시께 다시 개회했으나, 여전히 '합의'에 관한 사실관계를 두고 공방이 계속됨에 따라 중수부 논의에 대한 진전을 보진 못했다.
한편 사개특위는 오는 13일 검찰관계법, 15일 법원관계법 등 쟁점 사안을 추가로 논의하고, 17일 전체회의를 열어 관련 법안을 작성한 뒤 20일 전체회의에서 최종 의결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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