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는 지난해 1월 중국의 상하이자동차그룹(상하이차, SCM)에 인수된 뒤 기술유출 논란에 휩싸였다. 쌍용차와 상하이차는 이런 논란이 일 때마다 "기술유출이 아닌 정당한 기술이전"이라고 주장하며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쌍용차 노동조합이 '기술유출'을 문제 삼으며 지난 16일부터 전면적인 파업에 나섰고, 이를 계기로 기술유출 의혹이 새롭게 확대되고 있다.
L-PRJECT 라이선스 계약의 내용
쌍용차 노조는 쌍용차와 상하이차가 지난 6월 '엘 프로젝트(L-PRJECT)'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문제 삼고 있다. 노조 측은 이 계약 때문에 쌍용차가 생산하고 있는 SUV 차량인 카이런의 생산기술이 통째로 상하이차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
21일 <프레시안>이 입수한 'L-PROJECT 라이선스' 계약서를 보면, 쌍용차가 보유하고 있는 카이런 생산기술과 제조기술을 이전받은 상하이차가 카이런을 개조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설계된 SUV 차량을 중국 현지에서 제조하고 판매하는 것을 양측이 합의한 것으로 돼 있다.
쌍용차가 상하이차에 이전하는 기술의 내용은 카이런의 설계, 개발, 제조, 판매, 마케팅과 관련이 있는 도면, 자료, 소프트웨어 등으로, 사실상 카이런 생산에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을 망라하고 있다.
상하이차는 쌍용차의 기술을 이전받는 대가로 미화 277만7778달러(우리 돈으로 약 260억 원)를 일괄 지급하고 중국 현지에서 생산, 판매되는 카이런 한 대당 75~150달러를 쌍용차 측에 지급한다고 계약서에 적혀 있다.
쌍용차 노조는 헐값으로 기술을 넘겼다고도 주장한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카이런 생산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3000억 원 정도가 들어갔다"며 "고작 260억 원에 팔아넘길 기술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쌍용차와 상하이차는 이번 계약을 통해 2008년경 2300cc 급 카이런을 연평균 2만 대 이상 중국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거듭돼 온 중국 상하이차의 '기술 빼가기' 의혹
중국 상하이차가 대주주 자격을 이용해 쌍용차의 기술을 빼간다는 의혹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상하이차는 올해 초에 포기한 'S-100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도 기술유출 의혹이 제기됐다. 이 프로젝트는 중국에 쌍용차와의 합작공장을 설립하고 그곳에서 카이런을 현지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당시 노조 측은 S-10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상하이차가 지난해 5월 쌍용차의 핵심 기술인력 150명을 중국으로 파견하도록 해 중국 부품업체의 생산능력 점검과 기술지도를 했다고 주장한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파견된 쌍용차 기술진은 중국 부품업체에게 기술지도를 했다"고 말했다. 노조 측은 이런 과정을 통해 상하이차는 카이런의 설계도면 4070장을 빼갔다고 주장한다.
한편 지난해 11월 상하이차가 소진관 전 쌍용차 사장을 '실적 저조'를 이유로 전격 경질할 때도 쌍용차 안팎에서 상하이차가 기술을 빼가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상하이차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쌍용차 경영진을 개편하면서 이사회 9명 가운데 6명을 중국인으로 교체했다. 종전의 이사회에는 한국인과 중국인이 각각 4명씩 들어 있었다.
사측 "유출이 아니라 이전" 항변
일단 쌍용차 측은 카이런의 생산기술이 상하이차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을 정당한 절차를 거친 '기술 이전'이라고 보는 데서 노조 측과 큰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쌍용차의 한 관계자는 "정당한 기술료를 받고 기술을 넘기는 것"이라며 "기술을 몰래 넘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기술유출'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카이런 생산기술을 헐값으로 팔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노조가 말하는 3000억 원 투자에는 생산시설 설비 비용까지 포함돼 있다"며 "260억 원 정도면 헐값 매각이라고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업계의 의견은?
한편 전문가들은 쌍용차의 기술유출 논란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술유출이라고 할 만한 기술이 쌍용차가 가지고 있기나 한지 의문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산업연구원의 조철 연구위원은 "쌍용차가 인수될 때도 기술유출 위험이 거론됐지만 그런 분위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며 "쌍용차가 가지고 있는 기술에 대해 업계에서는 매우 회의적인 의견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기술을 이전받아 중국 현지에서 카이런을 생산하려는 장기적 목표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 위원은 강조했다. 그는 "상하이차는 중국 내 부품업체에 쌍용차의 기술을 이전시켜 납품 받으려고 한다"며 "그렇게 될 경우 국내 부품업체들은 심각한 위기에 내몰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관련 업계는 이번 쌍용차 사태를 예의 주시하며 자신들의 기술유출 위험을 단속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기술가치와 무관하게 쌍용차의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며 "이번을 계기로 기술유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내부 단속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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