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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독자에게 훈계하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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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독자에게 훈계하지는 않는가?"

[프레시안 10년을 말하다]<6>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관점이 있는 뉴스'라는 문구는 <프레시안>이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뉴스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이라는 보편적 상식에서 보면 '뉴스에 관점이 있다'는 말은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누가 봐도 대한민국 사상의 오른쪽을 담당하고 있는 <조선>, <중앙>, <동아> 같은 신문들은 물론이고, 누가 봐도 그 반대편을 담당하고 있는 <한겨레>, <경향> 같은 신문들도 자신들이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언론이라고 주장한다. 서로 자신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국민들에게 사실만을 보도한다고 자부한다.

이런 거대 언론들의 '정론직필' 원칙 틈바구니에서 겨우 상근 기자 20명(10년 전에는 훨씬 더 적었을) 남짓한 인터넷 신문이 '관점'을 가지고 보도를 하겠다니 큰형님들 보기에는 얼마나 '객관적으로' 가소로웠을까?

사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언론이 중립적이라거나, 공명정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 나온 신상품 휴대전화 기사나, 서울 근교 어디 맛 집을 소개하는 코너에도 '로비'와 '사심'이 담뿍 들어 있기 마련인데, 권력을 가진 세력과 가지지 못한 세력들에 대한 기사나 부자들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기사가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난 우리의 언론들처럼 공정하다고 주장하면서도 감춰지지 않는 깊은 편향을 애써 감추고 있는 것보다는, 그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중립'이라는 짐을 내려놓고 자신들만의 '관점'을 가지고 보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이 중립적이려면 독자들에게 "이런 주장도 있고 저런 주장도 있다", "이것도 일리가 있고, 저것도 일리가 있다"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집적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판단은 독자들이 알아서 하시라"고 해야 하는데, 그것이 과연 좋은 언론의 덕목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단순히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을 두고 저널리즘(journalism)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보도되는 사건에 대한 해설과 논평을 하거나 유사 사건과 비교나 분석 등을 하게 되면 당연히 글을 쓰는 이의 생각과 의도가 담기게 마련이고 더 나아가서는 해당 언론사의 중심을 관통하는 성향이 포함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각 신문의 사설이나, 방송 뉴스의 논평은 각각의 정체성이 정확하게 드러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중립적인 언론이 존재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프레시안

<프레시안>과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경쟁사 인터넷 신문이 '시민기자'라는 키워드로 수만의 고정 독자층을 형성하고 일상의 소박한 이야기들까지 기사로 만들어내며 성장하고 발전할 때, <프레시안>은 처음의 기조대로 지식인·전문가 그룹의 글과 말에 지속적으로 집중했다.

이 전략이 과연 <프레시안>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나는 알 수 없지만, 뉴스의 흐름을 보여주고 기존시각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며 심층 분석 기사에 주력하겠다는 <프레시안>의 정신을 지켜왔다는 측면은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삼성그룹의 문제들을 집요하게 건드리고, 천안함 침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분투한 모습 등은 관점이 있는 뉴스의 전형을 보여 준 것이라고 평가한다. 인터넷 언론들이 운영의 문제 등을 핑계로 연예기사나 자극적인 신문들을 머리기사로 싣기도 하는 상황에서 <프레시안>의 고군분투는 칭찬해 주고 싶다.

참여정부 덕에 <프레시안>이 크게 성장했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참여정부 시절 <프레시안>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거두어들인 것은 아니었다. 한미 FTA 협상 정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연일 비수를 날렸던 <프레시안>이 아니었던가?

물론 참여정부 시절 <프레시안> 간부들이 방송에 고정 출연하는 등 잘 나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참여정부의 덕을 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프레시안>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추모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난 여전히 언론인, 대학교수, 관료, 정치인, 기업가, 현장전문가, 시민활동가 등 오피니언 리더그룹, 즉 <프레시안>의 표현대로 '고급독자'들을 주 독자층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만 할 수는 없다.

다른 언론들과의 변별력을 가지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중의 학문적, 교양적, 정치적 수준이 빠르게 성장한 2011년 한국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전문가 그룹 못지않은 내공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세속의 기준이 용납하지 않았던 '전문가 미네르바'가 입증해 주지 않았는가?

<프레시안>의 기사가 간혹 너무 어렵고 전문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지식인이라고 독자들에게 강의를 하거나 훈계를 하듯 글을 쓰는 필자들은 없었는지 살펴 볼 문제다. 난 전문적인 글을 쓸 줄 모르고, 오로지 내가 경험한 '날 글'만 쓸 줄 아는 사람이기에 가끔 <프레시안>의 글들이 주는 '글의 계급'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프레시안>이 평탄하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부의 갈등도 있었을 테고, 재정적인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10년을 살아왔으니, 앞으로 10년, 20년도 잘 버텨낼 것임은 틀림이 없다.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진보적인 고급 대중 매체 <프레시안>의 미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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