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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와 무력한 오바마, 미국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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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와 무력한 오바마, 미국의 두 얼굴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인권이 '외교 브랜드'던 미국이…

미국이 9.11 테러 혐의자들을 따로 수감해 두고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가 다시 국제 뉴스의 중심에 섰다. 그곳에서 미국 감시병들이 수감된 테러 혐의자들을 상대로 비인도적인 '가혹행위'를 자행한 사례들이 드러나고 테러리스트라며 해외에서 잡혀온 사람들 가운데는 테러와는 상관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을 외교의 브랜드로 자랑해 온 미국이 감춰 온 치부를 여지없이 드러낸 꼴이 됐다. 단순한 언론 보도가 아니라 미국 정부의 문서에 기록된 사실들이 미국과 영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뉴욕타임즈>와 <가디언> 보도로 확인됐으니 미국의 이미지에는 커다란 상처가 아닐 수 없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지난 8일 연례 인권보서를 발표했다. 세계 190개 국가의 인권 상황이 상세히 지적돼 있는 보고서다. 그러나 막상 자국의 인권문제는 전혀 언급돼 있지 않았다. 보고서는 관례대로 중국과 러시아의 인권 탄압 사례들을 지적하며 인권을 존중하라고 점잖게 충고했다. 이에 대해 중국의 후진타오와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너나 잘 하세요"식으로 반박했다. 다른 때 같으면 미국의 독선적인 태도에 기분 나쁘니까 한 번 해보는 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관타나모 가혹행위' 때문에 미국의 입장이 딱해 보였다.

'애국심' 보수 공세에 무력한 오바마

9.11 이후, 특히 이라크 전쟁 이후 부시 정부는 포로에 대한 고문을 비밀리에 승인했다. 이는 오바마 정부의 법무장관 에릭 홀더가 공개한 내용이다. 2004년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고문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가혹행위'란 한 마디로 고문이다. 한 포로는 11일간 잠을 못 자게하고 심문했다. 손톱을 칼로 베는 고문도 있다. 단식으로 항의하는 포로에게는 콧구멍에서 위까지 튜브를 넣어 음식을 강제로 투입하고 그 튜브를 다른 수감자에게 사용했다. 물고문도 자행했다. 제2차 대전 후 도쿄의 전범재판소는 물고문을 전쟁범죄로 처벌했다. 그런데 부시 정부는 알카에다의 배후를 캐겠다는 강박 관념에서 물고문을 포함해 14가지의 고문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수용소가 자리한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정문 ⓒAP=연합뉴스

미국 정보기관은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추적하기 위해서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테러리스트 혐의자를 체포하고 이곳에서 체포된 혐의자를 통해 얻은 불확실한 정보를 근거로 독일, 폴란드, 리투아니아, 이태리 등에서 거주하는 아랍계 혐의자들을 검거했다. 불법이다. 이들은 거주국의 국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현지 정보국의 협조를 얻어 '인도' 받는 형식을 취했다. 완곡하게 표현해서 '인도'이지 납치의 사후 승인이었다.

이런 사실은 뒤늦게 알려져 외교문제가 됐다. <르몽드>(2006년2월22일)에 의하면 레바논 출신의 독일인 할레드 알 마스리도 미 정보원에 의해 검거돼 5개월 간 아프가니스탄의 비밀 장소에 수감됐다가 독일 정부의 항의로 풀려난 사람이다. 위키리크스에 의하면 영국, 이태리, 폴란드, 리투아니아, 마케도니아, 스웨덴 등이 자국 내에서 미국 정부원의 혐의자 납치에 협조했다. 소련이 붕괴한 후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의 위력과 미국이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살벌한 분위기에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약소국들의 떳떳치 못 한 행동이었다.

미국은 테러 혐의자를 남의 나라에서 검거했을 뿐 아니라 이들을 비밀 장소로 옮겨 심문했다. 심문하는 곳은 고문이 허용되는 국가를 선택했다. 이집트나 튀니스 같은 아랍 국가나 동유럽의 예전 공산국가가 대상이었다. '인도'된 테러리스트 혐의자들은 유럽 13곳에 수용돼 신문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2005년11월2일)는 아프가니스탄과 동유럽 여러 민주국가에 100명 이상이 구금돼 있는 '비밀감옥'의 존재를 보도했다. 다만 안보 문제를 고려해서 장소는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미국이 전 세계에 '수용소 군도'를 설치했다"고 비난했다. 소련의 반체제 인사들의 수용소 생활을 고발한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를 빗대어 비난한 것이다.

또 미국은 테러 혐의자들을 비밀 수용소로 옮기기 위해 유럽 공항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미국은 이런 사실을 경유지 정부에 통고해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역시 외교문제를 일으켰다. <르몽드>(2005년12월5일)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자료를 인용해서 미국 CIA가 2001년부터 2005년 사이에 '납치'된 수감자들을 이동시키는데 유럽 공항을 이용한 회수가 독일 430회, 영국 210회, 포르투갈 59회, 아일랜드 50회, 그리스 13회, 스페인 체코 각각 15회, 터키 13회, 폴란드 6회라고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운동 때부터 악명 높은 관타나모 수용소의 폐지를 공약했고 2009년 1월 22일에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1년 뒤인 2010년 1월 22일까지 폐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관타나모 법원 판사의 거부와 상원 공화당 의원들이 폐쇄에 필요한 비용 지출법안을 거부해서 그 실현이 불확실한 상황에 있다. 민주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외국인 '납치' 고문 자행 등에 대한 유엔 인권위원회의 비난 보고서도 나와있다. 그러나 공화당은 국익과 안보를 내세우며 국제여론을 무시하고 있다. 매년 세계 인권보고서를 내며 다른 국가들에게는 인권을 지키라고 설교하는 미국의 두 얼굴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애국심을 내세우는 보수의 공세에는 무력해 보인다. 오바마의 두 얼굴을 보는 느낌이다.

'영구 조차권' 주장하는 미국, 못버리는 '제국주의'

관타나모는 미국의 두 얼굴을 드러내는데 역사적 인연을 갖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곳이다. 관타나모는 미국과 국교가 없는 쿠바의 남동쪽 끝자락에 위치해서 일반인의 통행이 거의 없는 곳이다. '테리리스트'들을 수감하는데 적격이다. 관타나모는 쿠바 섬에서 가장 큰 천혜의 항구이다. 미국은 19세기 말 스페인으로부터 네 차례나 쿠바를 매입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미국이 이기고 쿠바가 독립하게 됐다. 미국의 힘으로 독립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대가를 요구했다. 쿠바 섬에 미국의 해군기지를 건설할 땅을 조차하겠다는 것이었다. 조차료는 1년에 금화로 2000달러. 문제는 양국이 합의하거나 미국이 조차를 포기할 때까지 조차기간이 항구적이라는 일방적인 조약이었다는 점이다. 실질적으로 미국 영토나 다름없는 조차권이었다.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혁명에 성공했을 때 이 조약을 폐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아이젠하워 정부가 조차료 수표를 보냈을 때 쿠바 정부가 그것을 현금으로 찾아간 것이 실수였다. 쿠바는 혁명 상황에서 경황이 없어 실수로 조차료를 받았을 뿐이라며 조차권의 종료와 관타나모의 반환을 미국에 주장했다. 그래서 미국이 보내는 조차료 수표를 현금화하지 않고 재무부 회계국에 보관만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카스트로가 첫 회 조차료를 받았으니 그것은 조약의 계속 유효하다는데 동의한 것을 의미한다며 조약 효력의 불변을 주장하고 관타나모에 대한 조차권을 계속 행사하고 있다.

영국이 중국의 미카오 조차권을 포기한 것을 마지막으로 19세기에 식민지 열강들이 강제로 취득한 조차권은 이제 모두 끝났다고 본다. 아직까지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관타나모에 대한 미국의 조차권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자국의 중대한 이익이 걸렸을 때 미국은 결코 제국주의를 버릴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 역시 유럽 식민지의 독립을 주장해 온 미국의 두 얼굴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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