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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물렀거라…"햇빛과 바람이 키운 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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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물렀거라…"햇빛과 바람이 키운 돼지들"

[구제역 126일의 반성④·끝] 구제역 이기는 친환경 축산, 비법은?

전국을 뒤흔들었던 구제역 사태가 126일 만에 마무리됐다. 3일 충남 홍성군을 끝으로 전국에 내려졌던 가축이동제한 조치가 해제됐다. 무너졌던 축산업은 재정비에 나섰고, 키우던 가축을 잃은 축산농가도 힘겨운 새 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넉달여 간 전국을 휩쓴 구제역 사태가 마침내 종식을 맞이한 셈이다.

그러나 숙제는 남았다. 100일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가축 347만 마리가 땅 속에 묻히고 피해액만 3조 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가축 질병의 확산을 부채질한 국내 축산 시스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상 초유의 구제역 사태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 상황. 막대한 피해만큼이나 큰 교훈을 남겼던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축산업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단해 봤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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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 : 가축 찍어내는 '동물 공장', 구제역 '부메랑'으로
☞ 2편 : 비록 소는 잃었지만…외양간은 고치자!
☞ 3편 : 아직도 '통큰' 고기만 찾는 당신, 공장식 축산의 '공범자'

축사 안으로 봄바람과 함께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몇 놈은 지푸라기 위에 뒹굴며 봄 햇살을 즐기고 있었고, 몇몇은 널따란 '운동장'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발 디딜 틈 없는 빼곡한 축사, 멀리까지 진동하는 가축 분뇨 냄새는 이곳 농장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친환경 축산을 진행 중인 '자연농업 이장집' 흙돼지들의 이야기다.

25일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적암리 '자연농업 이장집'. 농장 대표 김정호(54) 씨가 밝은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파주 일대를 싹쓸이 한 구제역으로 불과 2달 전까지만 해도 흉흉한 분위기였지만, 김 씨의 농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유독 생기가 감돌았다. 얼마 전 새 보금자리를 얻은 새끼 흙돼지 40여 마리는 한 눈에 보기에도 건강하고 활력이 넘쳤다.

▲ '자연농업 이장집'의 흙돼지들. 시멘트 바닥 대신 볏짚을 깔아주고, 축사는 벽을 없애 개방형으로 조성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햇빛 쏟아지는 축사…"가축 면역력 키우기는 제1의 방역"

"과연 현대 축산농가들이 소독을 하지 않아서, 약을 쓰지 않아서 구제역이 발생했을까요? 구제역을 이기려면 면역력이 중요하지요. 제 1의 방역은 가축 면역력 키우기입니다."

그래서인지 김정호 씨의 농장은 지붕만 있고 벽을 없앤 개방형 축사로 조성돼 있었다. 바닥은 딱딱한 시멘트 대신 흙 위에 푹신한 볏짚을 깔았다. 땅을 파는 습성이 있는 돼지들을 배려한 것이다. 돼지들이 볏짚 위에서 대소변을 보니, 따로 분뇨 처리 비용도 들지 않는다.

축사 자체도 넓었다. 400평 남짓의 축사에 흙돼지 40여 마리가 마치 운동장이라도 만난 듯 뛰어다니고 있었다. 가축들을 위한 운동 공간도 따로 마련했다. 보통 4평에 15~17마리의 돼지를 한꺼번에 몰아넣는 일반 농가에 비해 훨씬 넉넉한 셈이다. 가장 잔인하다는 모돈 출산 케이지 '스톨' 또한 이 농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항생제는 물론 주사 한 대 놓지 않았지만 우리 돼지들은 건강합니다. 사실 수입곡물 배합사료와 각종 항생제, 성장촉진제에 의존하는 축산업 자체가 구제역 사태의 원인이죠."

이장집이 제시한 '친환경 축산' 비법은 다른데 있지 않다. 일단 가축이 흙을 밟고 다니게 하고, 소규모라도 햇볕이 드는 방목장을 만들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축사엔 벽을 없애 공기 소통이 잘 되게 한다.

사료 역시 중요하다. 이장집에선 수입 유전자 조작(GMO) 곡물 사료 대신 손수 벤 봄풀과 부엽토 등을 섞어 만든 발효 사료를 먹인다. 고가의 사료비도 들지 않고, 돼지도 건강히 자랄 수 있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이장집 같은 소규모 축산 농가도 사료 및 분뇨 처리에 비용을 들이지 않고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이유다.

축사 한 켠에선 닭 예닐곱 마리와 오골계가 부지런히 바닥을 쪼고 있었다. 돼지와 닭을 이렇게 가까이에 풀어놓아도 되냐고 묻자, 김 씨는 "빽빽한 닭장과 돈사라는 현대축산에 익숙해져서 그렇지, 예전엔 다 이렇게 키웠다"며 웃었다. 바닥을 부지런히 쪼고 있는 닭들을 보며, 김 씨의 축사가 별다른 소독 없이도 유독 깨끗한 이유를 알게 됐다.

"돼지는 바닥을 파고, 닭은 청소부 역할을 합니다."

▲ 400평 가까이 되는 축사에 돼지 40여 마리가 뛰어다니고 있다. 축사가 돼지들에겐 집이자 운동장인 셈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김정호 씨는 인공 수정 대신 '자연 교배'를 강조했다. 이장집 돼지들이 좀더 '행복한' 이유다.

"아무리 사람이 먹기 위해 키우는 가축이라지만, 인공 수정만큼 잔혹한 일도 없지요. 품종 개량을 거듭해 가장 상품성 있는 수컷 몇 마리만 모아놓고, 죽어라 정자만 생산하게 한 다음 이 종자를 전국에 뿌리는 게 인공 수정입니다. '열등한' 종자들은 교배는 물론 가차 없이 도태시키죠. 자연의 법칙을 완전히 거스르는 일임은 물론 종 다양성도 사라지고, 가축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의 돼지들 역시, 지난 구제역 '광풍'을 피해갈 순 없었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건강하게 자란 이장집 흙돼지들은 비껴갔지만, 반경 500m 안의 다른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병하면서 이장집 역시 지난 1월 '예방적 살처분' 범위 안에 들었다.

매몰되던 날엔 태어난 지 하루 밖에 안 된 아기돼지 5마리 역시 어미와 함께 차가운 땅 속에 묻혔다. 대규모 축산업이 낳은 구제역 사태가, 병치레 한 번 없었던 건강한 돼지 50마리까지 '예방'이란 이름으로 앗아간 것이다. 매몰 후 나온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정말 자식 놈 키우듯이 키웠는데…한동안 여기(축사) 근처에도 못왔어요. 자꾸 생각이 나서. 이제 이 놈들 보며 위로를 받는 거죠."

김 씨의 씁쓸한 미소 뒤로, 일주일 전 새로 들여왔다는 새끼돼지들이 석 달 전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모른다는 듯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친환경 축산이 돈 많이 든다고? '강한 소농'은 다르다!"

사실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밀집 축산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친환경 축산에 대한 관심도 여느 때보다 높아진 터였다. 그러나 이를 위한 유통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농가들이 사육 두수는 확 줄인 대신 비용은 더 들어가는 친환경 축산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값싼 고기만을 찾는 현재의 소비·유통구조 안에선 친환경 축산이 농가의 손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뜩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국내 축산업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사육두수를 줄이는 것은 물론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친환경 축산은 농민들에게 '모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씨는 "친환경 축산이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은 이미 친환경이 아니란 얘기"라고 일축했다.

"무조건 비싼 사료만 사다 먹이려고 하니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겁니다. 사실 막대한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파괴되는 농지가 얼만데, 그런 대규모 축산은 결코 친환경이 될 수 없죠. 1kg의 쇠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들어가는 곡물량만 11kg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지구 한 쪽에선 사람들이 굶어죽는데, 이건 소가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이 된 거죠."

엄청난 육류 소비를 뒷받침하기 위한 대규모 축산이 엄밀한 의미에서 결코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요즘 대형 농가들을 보면, 모든 게 전화 한 통으로 해결 됩니다. 전화 한 통으로 모내기를 하고, 전화 한통으로 사료를 주문하고, 분뇨 처리를 하고, 주사를 놓고…. 이건 농부가 아니라 사업가죠. 그러면서 농민들은 늘 빚에 시달리고, 힘들어 합니다. 규모를 지탱하기가 어려운 거죠.

친환경 축산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일단 규모를 확 줄이면 됩니다. 당장 우리 집만 해도 먹이를 손수 만들어 먹이니 사료값도, 분뇨 처리 비용도 들지 않아요. 항생제는 물론 주사 한 방 놓지 않아도 어느 돼지들보다 건강합니다."

농장이라고 해봐야 400평 남짓의 축사에 현재 기르고 있는 흙돼지 40여 마리가 전부지만, 김 씨는 '강한 소농'을 강조한다. 대규모 농업이 농민은 물론 식탁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철학에서다.

▲ 이장집 대표 김정호 씨가 흙돼지들에게 풀을 먹이며 즐거워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최근엔 소규모 축산농가들을 대상으로 자가 사료 만들기 등 '자연농업' 비법을 담은 강연회도 정기적으로 열고, 친환경 방식으로 축산을 하겠다는 농가들에 한해 흙돼지 역시 분양하고 있다. 올해부턴 '자연농업' 방식만을 고집하는 농가들과 친환경 축산 유통망 역시 마련할 예정이다.

김정호 씨는 "하루 평균 1시간 즐겁고 행복한 노동으로 수입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햇빛과 바람, 가축을 생각하는 농민의 노력만 있다면 친환경 축산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첫째는 농민의 노력, 나머지는 자연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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