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숙제는 남았다. 100일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가축 347만 마리가 땅 속에 묻히고 피해액만 3조 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가축 질병의 확산을 부채질한 국내 축산 시스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상 초유의 구제역 사태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 상황. 막대한 피해만큼이나 큰 교훈을 남겼던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축산업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단해 봤다. '구제역 126일의 반성' 시리즈는 총 4회에 걸쳐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편집자>
☞ 지난 기사 보기 : 가축 찍어내는 '동물 공장', 구제역 '부메랑'으로 |
"가축에게 운동장을!"
전남도가 '동물복지'를 선언하며 지난달 내놓은 '친환경 녹색축산 조례안'의 내용이다. 전국을 휩쓴 구제역으로 사태로 밀집 사육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친환경 축산과 함께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선 "사람 복지도 제대로 안 되는 마당에 무슨 동물복지냐"라는 식의 차가운 시선도 존재한다. 그러나 가축 전염병의 창궐을 낳은 공장식 축산(factory farming)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이런 인식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비좁은 축사에서 유전자 조작(GMO) 배합사료를 먹으며 성장촉진제·항생제를 맞고 자란 가축이 인간에게도 좋을 리 없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사람 복지도 안 되는 마당에, 웬 동물복지냐고?
동물복지(Animal Welfare)란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는 데 있어 윤리적인 책임을 갖고 동물에게 필요한 기초적인 조건을 보장하는데 목적이 있다. 축산 등 인간의 필요에 따라 동물을 이용하는 행위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동물권리운동'과는 큰 차이가 있지만, 동물의 이용 범위와 그 과정에서 동물이 받는 고통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동물복지와 관련해 가장 앞선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곳은 유럽연합(EU)이다. 유럽연합은 이른바 '다섯 가지 자유(Five Freedom)'를 동불복지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굶주림과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먹이와 물 공급)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적절한 사육 환경) △고통·상처·질병으로부터의 자유(질병의 신속한 치료) △정상적인 활동을 할 자유(적절한 사육 공간 확보) △공포·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심적 학대 금지) 등이 그것들이다.
EU의정서는 가축의 사육단계부터 수송, 도축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별로 준수해야할 동물복지 사항을 명시했다. 산란계, 소, 돼지에 대해 각각 구체적인 규제 조항이 생겨났는데, 대표적으로 2006년부터 성장촉진제와 항생제의 사용이 금지됐다. 당장 내년부턴 '아파트형 사육'으로 불리는 닭의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상자 형식의 우리)와 암퇘지 임신에 쓰이는 스톨(철제 울타리) 등이 전면 금지된다.
가축의 수송에 있어서도 8시간 이상 가축을 이동시킬 경우 최소한의 휴식 시간을 갖추도록 의무화했고, 도축에 있어서도 가축이 의식이 남아있지 않도록 제대로 혼절시킨 뒤 죽여야한다고 명시했다. 도축장의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질 운명일지언정, 죽음의 과정에서라도 고통을 최소화해야한다는 취지에서다.
유럽연합의 동물복지 정책은 1822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제정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영국은 2006년엔 '동물복지법(Animal Welfare Act)'을 개정해 농장 동물 뿐 아니라 실험동물에 대한 학대 역시 금지하고 있다.
"'해피밀'은 '언해피'해!"…맥도널드가 '동물복지협의회' 만든 까닭은?
미국의 동물복지 규정은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느슨한 편이지만, 강한 소비자 운동과 이에 따른 생산자의 변화가 자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 역시 1966년 연방 차원의 '동물복지법'을 제정했지만, 이는 반려동물과 실험동물에 한정돼 있어 사육동물에 대한 규제는 빠져 있었다. 대신 가축의 장거리 수송을 금지하는 이른바 '28시간법'이 이미 20세기 초반 만들어졌고, 가축의 도축에 관한 '인도적 도축법' 역시 1958년 제정돼 도축 수단과 방식에 대해 상세히 규정했다.
▲ "당신의 불행한 식사는 준비되었다". 미국 동물보호단체 피타(PETA)는 맥도널드사를 대상으로 반윤리적 닭 학대에 대한 불매 운동을 벌여왔다. ⓒPETA |
일례로 미국의 소비자·동물보호단체들은 맥도널드에 대한 'Unhappy Meal 운동(어린이용 메뉴 'Happy Meal'에 대한 불매 운동)'을 벌이는 등 꾸준히 동물복지를 지킬 것을 요구하며 식품회사에 압력을 행사해 왔다.
이에 미국 맥도널드사는 회사 내에 '동물복지협의회'를 설치해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이 기준을 충족한 육류로 햄버거를 만드는 등 자구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사례로 버거킹은 가축의 사육 면적과 함께 닭장의 높이까지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이 같은 흐름에 육류생산자협회와 대형유통업체도 동참하는 추세다. 이들 기업에게 동물복지는 매출 신장을 위한 '기업 이미지 차별화 전략'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소비자의 자각이 생산자와 유통업체의 변화를 이끌어낸 성과임은 분명하다.
비록 소 잃었지만…외양간은 고치자!
사상 초유의 이번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밀집 축산에 대한 성찰이 일면서, 우리 정부도 동물복지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현행 축산법에도 '가축별 마리당 적정 사육 면적' 등이 규정돼 있긴 하지만, 기준 자체도 미흡한데다 그나마도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먼저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동물복지 조례안을 내놓은 전남도는 우리에 갇힌 가축들이 움직일 수 있는 '가축 운동장'을 만들도록 도가 농가에 자금 일부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번 구제역 사태의 진원지로 축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린 경북 안동시 역시 '동물복지형 축산'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방목형 목장을 만들어 가축의 면역력을 키우고, 사료 역시 수입 유전자조작 사료가 아닌 친환경 먹을거리로 바꿔나간다는 계획이다.
농림수산식품부 등 4개 부처도 이번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축산 선진화 방안'을 내놨다. 가축 마리당 사육 면적 등 세부안은 4월 내 마련될 예정이지만, 대형 농가부터 도입되는 '축산업 허가제' 등의 규제를 통해 밀집 사육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친환경 축산, 소비자가 변해야 생산자도 변한다
그러나 2012년부터 시작될 축산허가제에 대해서도 축산농가의 반발이 이는 상황에서,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축산농가들이 고비용 때문에 친환경 축산과 동물복지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값싼 고기'만을 찾는 소비자의 변화 역시 절실하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6월 651개 축산농가를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만 봐도, 축산업자의 절반이 이상이 동물복지형 축산에 관심조차 없다고 답하는 실정이다. 특히 밀집사육이 보편화된 양돈과 양계농가의 경우 65%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현재의 유통구조 안에선 친환경 축산이 농가의 금전적 손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밀집 사육을 해서라도 수익을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사육두수를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친환경 축산은 농민들에게 '모험'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소비자의 변화 역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환경 방식으로 한우 30여 마리를 키우고 있는 안동가톨릭농민회 이상식 씨는 지난 1월 열린 '지속가능한 축산 방향 모색 토론회' 자리에서 "농민 입장에서 유기축산은 소득 감소 등 여러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힘든 과정을 뚫고 생산된 농축산물을 사주는 소비자가 없다면 친환경 축산이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안인숙 고양여성민우회생협 이사장 역시 "구제역 사태로 공장식 축산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지만, 소비자의 변화 없이는 생산자의 변화도 추동할 수 없다"며 "안전하게 생산된 먹을거리를 소비자와 생산자가 얼굴을 맞대며 직거래 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슷한 사례로 버거킹은 가축의 사육 면적과 함께 닭장의 높이까지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이 같은 흐름에 육류생산자협회와 대형유통업체도 동참하는 추세다. 이들 기업에게 동물복지는 매출 신장을 위한 '기업 이미지 차별화 전략'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소비자의 자각이 생산자와 유통업체의 변화를 이끌어낸 성과임은 분명하다.
비록 소 잃었지만…외양간은 고치자!
사상 초유의 이번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밀집 축산에 대한 성찰이 일면서, 우리 정부도 동물복지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현행 축산법에도 '가축별 마리당 적정 사육 면적' 등이 규정돼 있긴 하지만, 기준 자체도 미흡한데다 그나마도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먼저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동물복지 조례안을 내놓은 전남도는 우리에 갇힌 가축들이 움직일 수 있는 '가축 운동장'을 만들도록 도가 농가에 자금 일부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번 구제역 사태의 진원지로 축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린 경북 안동시 역시 '동물복지형 축산'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방목형 목장을 만들어 가축의 면역력을 키우고, 사료 역시 수입 유전자조작 사료가 아닌 친환경 먹을거리로 바꿔나간다는 계획이다.
농림수산식품부 등 4개 부처도 이번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축산 선진화 방안'을 내놨다. 가축 마리당 사육 면적 등 세부안은 4월 내 마련될 예정이지만, 대형 농가부터 도입되는 '축산업 허가제' 등의 규제를 통해 밀집 사육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친환경 축산, 소비자가 변해야 생산자도 변한다
그러나 2012년부터 시작될 축산허가제에 대해서도 축산농가의 반발이 이는 상황에서,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축산농가들이 고비용 때문에 친환경 축산과 동물복지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값싼 고기'만을 찾는 소비자의 변화 역시 절실하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6월 651개 축산농가를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만 봐도, 축산업자의 절반이 이상이 동물복지형 축산에 관심조차 없다고 답하는 실정이다. 특히 밀집사육이 보편화된 양돈과 양계농가의 경우 65%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현재의 유통구조 안에선 친환경 축산이 농가의 금전적 손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밀집 사육을 해서라도 수익을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사육두수를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친환경 축산은 농민들에게 '모험'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소비자의 변화 역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환경 방식으로 한우 30여 마리를 키우고 있는 안동가톨릭농민회 이상식 씨는 지난 1월 열린 '지속가능한 축산 방향 모색 토론회' 자리에서 "농민 입장에서 유기축산은 소득 감소 등 여러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힘든 과정을 뚫고 생산된 농축산물을 사주는 소비자가 없다면 친환경 축산이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안인숙 고양여성민우회생협 이사장 역시 "구제역 사태로 공장식 축산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지만, 소비자의 변화 없이는 생산자의 변화도 추동할 수 없다"며 "안전하게 생산된 먹을거리를 소비자와 생산자가 얼굴을 맞대며 직거래 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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