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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건강하십니까?"…따로 노는 산재보험·무상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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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건강하십니까?"…따로 노는 산재보험·무상의료

[복지담론 속 숨겨진 죽음①] 건강의 사회정치적 성격

미국에서 최장수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심슨가족>. 한국에도 방영이 돼 큰 인기를 끌었다. 가족을 통해 다소 비판적으로 미국 사회와 국제 정세를 풍자하는 풍자물이다. 독특한 심슨 가족 캐릭터는 인형으로도 제작돼 전 세계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 인형의 뒤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숨겨져 있다. 심슨 인형을 만들던 태국 게이더 장난감 회사에서는 1993년 4월 10일, 화재로 188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한 이유는 단순했다. 노동자들이 인형을 훔쳐갈지 모른다는 이유로 일하는 시간 동안에는 회사가 공장 문을 밖에서 잠궈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에 근대 산업사고 중 가장 끔찍한 사고로 기억되고 있다.

이 사고가 있은 3년 뒤, 세계 70여 개국에서 이 사고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 밝히기' 행사를 가졌다. 이것이 '4.28 산재추모의 날'의 시작이다. 심슨 인형 사건은 극단적인 예이지만 노동자들이 위험한 산업현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것에 이견을 제기하는 이는 별로 없다.

노동부 산재사망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는 산업재해로 3시간 마다 한 명씩 목숨을 잃고 있다. 5분마다 한 명씩 다치고 있다. 2001년~2010년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산재로 총 90만4858명이 다치고 2만5145명이 사망했다.

한 해 평균 9만여 명이 다치고 25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꼴이다.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노동자까지 합한다면 이 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수고용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망·사고는 제대로 집계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4월 28일 '산재노동자추모일'을 맞아 <프레시안>에서는 노동건강연대와 노동자의 건강현실을 되돌아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삼성, 쌍용차 등 노동자의 죽음을 두고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노동자 죽음과 관련해, 이를 좀 더 깊숙히 고민하지는 못하는 모양새다.

<프레시안>과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자의 건강권에 담긴 사회·정치적 함의를 조망하고, 현재의 문제를 개선할 방법 등을 모색하고자 한다. 아래는 기획 순서.

<1> 한국사회에서 건강의 사회정치적 성격(보건정책) : 임준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
<2> 구조조정과 노동자의 죽음(사회역학) :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
<3> 산재사망 1위, 어떻게 벗을 것인가(산업의학) :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4> '정부가 없다' - 건강권보장, 예방 등에 무정부적인 상태 : 좌담회

<편집자주>

1. 주류와 비주류, 그리고 노동자 건강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는 비주류다. 자영업자를 포함한 노동인구가 2400만 명, 임금노동자 1700만 명, 그 가족까지 포함하면 한국 사회구성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주류로 인정되었던 적이 없다. 사회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노동자인데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까?

현재 한국 사회는 비정규, 소규모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 청년실업자를 포함한 광범위한 산업예비군을 한 편으로 하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전문직, 관리직 등이 다른 한 편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허구적 의식이든 물질적 기반에 근거하든 후자는 임금소득 뿐 아니라 이자, 배당, 지대 이익의 사소한 일부를 자본과 공유하면서 소위 중산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노동자로 구분되는 것을 거부한다. 생산 및 소비 과정에서 단지 공간의 차이만 존재할 뿐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강변해도 중산층은 이미 노동자와 섞임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러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을 싫어한다. 이러한 노동의 분할이 노동자 건강문제에도 그대로 작동된다.

7,80년대 국가 주도형 산업화는 국가주의 담론에 기초한 생산담론을 산업역군의 논리로 정형화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건강은 단지 생산을 위해 희생해야 할 도구쯤으로 각인시켰다. 다시 8,90년대 재벌주도의 경제체제는 전근대적 생산담론에 덧붙여서 근대적인 실행과 구상의 분리를 생산과정에 내재화하여 정규직 노동자를 전체 노동자에서 분리시켜 중산층으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생산을 위해 희생해야 할 도구 정도로 사회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전략을 추구하였다. 더욱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담론의 확산을 통해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노동의 유연화로 표현되는 자본의 구상을 현실화하였다.

그래서 이제 사회구성원의 다수를 점하는 노동자라는 이름은 단지 통계 분류상으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실제로는 임금만으로 먹고 살고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층과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로 받아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중산층으로 양분화 되었다. 8,90년대 저항적 노동운동의 존재는 이러한 흐름에 강력한 저지선으로 작용했지만 1997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담론적 우위를 넘겨주면서 상황이 완전하게 역전되었다.

그러나 전 지구적 질서로 확대되어 가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쉼 없는 자본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자본의 내재적 축적 위기와 중산층의 몰락 속에서 또 다른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는 중산층 전체를 체제 내화할 만한 물리적 기반을 채 갖추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더 큰 구조적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 위기는 중산층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건강 위기로 표출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2. 건강의 사회경제적 요인, 그런데 노동은?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화석화된 산업재해 통계로 읽혀질 수 없다. 연간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는 통계조차도 한국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은폐되고 있는 산업재해의 문제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10년 사고로 산재보험을 청구한 산재보험 손상환자수는 9만여 명이다. 그러나 산재로 사고를 당해도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이전된 환자수는 2006년 한해만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 건강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선 직업병이라는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인정도 되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근골격질환이나 천식 등 직업성질환자를 모두 포함할 경우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일까.

산업재해 또는 업무상질병으로 특화된 노동자 건강문제 뿐 아니라 건강 수명이나 삶의 만족도 등과 같이 건강의 총합으로써 노동자 건강 수준을 고려해볼 때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건강에 대한 배제와 차별은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활발하게 이루어진 연구 덕택으로 소득계층이나 교육수준에 따라 건강수준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상당부분 밝혀졌는데, 명확하지는 않지만 생산과정 또는 노동의 변수가 이를 매개하거나 강화하는 핵심적 경로와 요인이라고 주장해도 크게 틀린 주장이 아니다.

태어난 계급과 출신 학교가 노동과정의 위치와 고용의 지위를 결정하고, 결정적으로 건강의 차별과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노동과정의 위험 요인은 모든 노동자의 위험이 아닌 것처럼 이해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상당한 수준의 건강 위험이 이전되면서 건강의 차별이 구조화되는 것이다.

노동과정에서 (고용형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상대적 자율성의 차이는 정신건강의 차이를 가져올 뿐 아니라 혈관과 내분비계에 영향을 미쳐 신체적 건강의 차이를 가져온다.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과 (기업 내부 건강프로그램 등) 자본에 의한 지원체계 역시 차별을 구조화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대적 차이는 생산과정 및 노동과정 전반에서 노동자 일반의 건강 수준을 악화시키는 공통적인 건강의 위험요인과 결합하여 자신의 문제를 노동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위험은 절대적 상대적으로 중첩되어 있는데, 마치 위험이 중산층이 아닌 일부 (하층) 노동자에게 국한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건강 격차가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상대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더욱이 실업 등으로 노동과정에서 제외된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과거 노동과정의 산물에 기초했다고 하더라도 적용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되어 있다. 또한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는 자본의 이동이 노동자의 주기적인 대량 실업으로 이어지면서 자살, 심혈관계질환, 암 등 직업병이 실업 상태의 노동자와 가계의 심각한 위협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3. 시민적 권리와 노동자 권리가 분리된 건강보장제도

노동의 분할과 건강의 차별적 구조화는 노동자 건강보장제도를 시민적 권리와 노동자 권리를 분리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노동자 건강보장제도는 시민적 권리의 획득을 의미한 건강보험제도와 노동자 권리의 획득을 의미한 산재보험제도로 구분되어 있다.

중산층으로서 시민은 합리적 의료이용과 본인부담만 전제한다면 건강보험의 보편적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전제만 인정한다면 건강보험 내에서 의료이용의 차별을 느끼지 않을 수 있고, 보편적 시민으로서 연대감도 맛볼 수도 있다.

반면 생산과정 및 노동과정의 유해요인으로 인해 건강이 나빠진 노동자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노동자는 시민적 권리로서 건강보험의 보편적 적용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시민적 권리를 부정하고 노동자의 선택적 권리인 산재보험으로 보장받을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 산재보험적용의 절차는 노동자로 하여금 권리에 대한 접근을 포기하도록 만들만큼 복잡하다. ⓒ노동건강연대


노동자의 선택적 권리는 최소한 법적인 의미에서 의료비용의 본인부담은 발생하지 않지만 매우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 노동과정에서 본인의 건강을 앗아간 유해요인을 떠올리고 이것과 질병 간의 관계를 스스로 증명해내야 한다. 노동자개인이 전문가 집단에 의한 검증의 절차를 거쳐 질병판정위원회라는 최종적인 판정의 심판대에 올라가야만 노동자의 권리로써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이처럼 노동자에게 건강보장제도란 생산과정 및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건강 문제에 대하여 노동자성을 벗어던지라고 강제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만든 제도이든가, 아니면 매우 선택적인 절차를 통해 노동자의 일부만 노동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드는 자기 분열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현행 건강보장제도 하에서 건강에 대한 시민적 권리가 노동자 권리의 확장과 발전으로 전취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시키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치명적인 독이다. 시민의 건강권을 대표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진료비 할인제도 수준일 뿐 진정한 의미의 보험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것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4. 노동과정의 건강문제를 포괄하는 무상의료로

이렇게 시민의 건강과 노동자의 건강이 분리되고 노동과정 문제가 은폐되어 있는 현행 건강보장제도를 그대로 둔 채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만을 의미하는 무상의료 전략은 현실의 노동자 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생산과정 및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건강문제와 소비과정 및 재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건강문제를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는 노동과정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노동권과 구분되는 시민의 권리로 무상의료를 규정하는 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또는 복지 담론은 노동자 복지와 무관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현실적으로 산재보험제도의 개편 없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산재로 인한 임금 및 소득 손실의 보장을 담보해주는 휴업급여가 배제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권리를 배제하는 시민의 권리가 보편적 복지 담론으로 포장된다고 할 때 노동자 복지는 보편주의에 기댄 최소주의 접근을 한다는 비웃음과 노동자 권리의 배제라는 현실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복지담론은 분배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생산관계 및 생산과정의 문제에 대해선 침묵하는 경향이 크다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건강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시민적 권리의 보조물 정도로 취급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더욱 크게 부각된다.

노동자 건강 문제에 대한 관점을 정립해야 한다.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를 시민의 권리와 결합하는 복지 담론을 전개하지 않는 한, 더 나아가 분배를 넘어서 생산과정과 노동과정에 대한 민주성확장과 노동자 참여의 조직화를 논의하지 않는 한, 복지국가담론은 중산층을 노동자로부터 분리하고 시민권을 노동권으로부터 분리함으로써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한 자본의 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복지국가 담론이 아니라 사회연대국가 노선 등에 대한 총체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이러한 담론이 생산과정 및 노동과정에서의 건강결정요인 문제를 포괄할 수 있는지, 건강문제의 주체인 노동자가 건강 문제를 어떻게 인지할 수 있고 해결구조에 참여할 수 있는지, 그 안에서 노동자의 알권리와 사전예방의 원칙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5. 시민적 권리로서의 복지담론을 넘어서

현재의 문제가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전개되는 자본의 운동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만으로 노동의 분할에 따른 노동자 건강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는 잣대가 불명확해지고 있다. 정규직의 고용불안이 강화되어 전통적인 중산층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는 상태에서 정규직화 투쟁을 통한 중간계층의 강화 전략은 올바른 노선일까. 실행과 구상,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심부와 주변부, 시민권과 노동권의 분리로 대표되는 전략에 반하는 적극적인 저항전선을 구축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는 싸움이 동일노동 동일조건을 요구하는 싸움으로 발전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노동자의 권리를 포괄하지 못하고 건강에서 시민적 권리와 노동의 권리가 분리되어 제도화 되어 있는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 채 시민적 권리에 초점을 맞추어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만을 주장하는 복지담론이 노동자의 권리를 충분하게 담아내기는 어렵다.

산재보험 개혁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시민적 권리로 확장하고 노동자의 보편적 건강보장제도로서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을 통합적으로 재구축하는 노동자 복지전략이 필요하다. 재분배에 국한된 복지담론을 뛰어넘어 노동과정 및 생산과정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서 저항의 물꼬를 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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