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허용기준치의 단위
핵물질들은 보통의 다른 원자들과는 달리 알파, 베타, 감마, 엑스선 등의 방사선을 방출한다. 이 방사선들의 절대량은 베크렐(Bq), 큐리(Ci) 등의 단위로 표시된다. 큐리는 전통적인 단위이고 베크렐은 표준단위이다(1 큐리는 3.7 X 1010 베크렐이다). 한편 이런 방사선의 절대량 중에서 우리 몸에 들어오는 방사선량, 즉 피폭량을 표시하는 단위들은 그레이(Gy)와 시버트(Sv)이다. 1 그레이는 몸무게 1 Kg 당 1 쥬울(J)의 에너지를 받는 단위이고, 1시버트는 1 그레이의 에너지를 유효하게 받을 때 사용하는 단위이다. 즉, 그레이와 시버트는 피폭량의 단위인 것이다.
방사선 절대량이 피폭량으로 전환될 때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고려된다. 첫째, 방사선의 종류이다. 알파는 다른 방사선에 비해서 피해가 크므로 방사선 절대량에 20을 곱한다. 다른 방사선들은 그대로 사용한다. 둘째, 방사선 물질이 인체에 들어온 후 인체에 머무는 시간이 고려된다. 셋째, 특정 핵물질이 주로 침투하는 인체조직의 방사선에 대한 민감성이 고려된다. 넷째, 핵물질이 인체에 들어오는 경로이다. 침투경로에 따라서 위험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섯째, 각 핵물질들의 반감기이다. 핵물질마다 반감기가 서로 다르고, 반감기가 긴 물질일수록 오랫동안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을 고려하여 핵물질마다 특별한 상수(dose coefficient)를 정해두었다. 이 상수는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에서 정하였고, 세계보건기구가 이를 수용하였다.
피폭량은 이렇게 체내에 들어오는 방사능의 절대량에 상수를 곱하여 정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체내에 침투하는 방사능의 농도와 이 방사능을 포함하는 물질의 체적을 곱한 후 다시 상수를 곱해서 정해진다. 일반적으로 비상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연간 인체허용치는 1 밀리시버트(mSv) 이하로 정해져 있다. 이 기준치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가 정하였다.
▲ 헌국원자력안전기술원 담당자들이 서울 지방의 방사능 농도를 측정하는 모습. ⓒ뉴시스 |
2. 허용기준치의 현황
허용기준치를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을 볼 수 있다. 첫째, 국가마다 조금씩 다른 기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먹는 물의 경우를 살펴보면, 세계보건기구는 연간 0.1mSv 이하를 권장하는데 반하여 캐나다는 연간 0.08mSv 로서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치보다 낮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 기준치마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렇게 방사성 물질에 대한 기준치도 국가마다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둘째는 상황에 따라서 이 기준치는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미국의 방사선방호위원회(NCRP)는 기준치를 1910년대 이후 6차례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낮추었다. 의학의 발달에 따라서 낮은 선량의 방사능에도 피해가 있다는 증거들이 새롭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보면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태의 수습을 위해서 투입되는 노동자들에 대한 기준치가 연간 100mSv에서 250mSv로 대폭 상향된 것을 들 수 있다. 이렇게 필요에 따라서, 혹은 상황에 따라서 허용기준치는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다. 약 2주 전에 한국정부는 먹는 물에 대한 기준치와 음식물들에 대한 허용기준치를 정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역시 허용기준치가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정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허용기준치는 의학적인 판단 보다는 상황에 근거해서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국가별로, 인종별로 방사능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지는 않을 것이고, 또한 상황이 변했다고 해서 인체의 방사능에 의한 피해정도가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3. 허용기준치는 의학적으로 옳은가?
만일 우리가 "우리나라의 공기 중에 요오드가 검출되었으나 허용기준치 이하여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합니다."라는 방송을 들었다면 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앞서 말했듯이 허용기준치는 순수하게 의학적으로만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별도로 평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세계보건기구와 미국의 National Research Council(국가연구위원회)이 내놓은 보고서가 판단에 도움을 준다. 이 두 기구에 의하면 방사능과 암 발생은 비례 관계가 있으며, 피폭량이 증가함에 따라서 암 발생도 증가한다고 한다. 또한 이런 현상은 이른바 허용기준치 이하의 저농도 노출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 이론을 선형 무역치 모델(Linear No-Threshold Model, LNT)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이른바 호메시스 이론(Hormesis)과 대치하고 있다. 호메시스 이론은 핵산업계의 막대한 자금지원을 받아서 이루어진 연구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이비 이론으로서 의학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적은양의 방사선은 건강에 이롭다는 주장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호메시스 이론의 가장 중요한 오류는 특정 기준치 이하의 방사능 노출은 건강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서 암 발생과 방사능 피폭 사이에는 역치가 있어서 이 역치 아래에서는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오류는 호메시스 이론의 연구결과들이 세포수준, 혹은 실험동물의 데이터 밖에 없고, 인체에 대한 연구결과들이 없다는 것이다. 세포실험이나 동물실험을 이용한 연구결과 중에서 자신들에게 이로운 데이터만 선택하여 만든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호메시스 이론가들에게 정상적인 연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체에 대한 데이터를 가져오면 진지하게 살펴보겠다."
세계보건기구와 미국정부기관들은 이런 호메시스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수많은 증거들이 호메시스 이론이 주장하는 역치 아래에서도 암 발생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는 평상시 인체허용기준을 연간 1mSv로 권고하고 있다. 또한 먹는 물의 허용치를 연간 0.1mSv로 권고하고 있다. 물을 통해서 인체에 들어오는 방사능을 전체 피폭량의 약 10%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 두 기관은 이정도의 피폭량은 1만 명 중 1명이 암에 걸리는 정도의 위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이 기준치는 우리나라에서 4500 명의 새로운 암환자를 더 발생시킬 정도라는 것이다. 이렇게 공식적인 국제기구들은 인체허용 기준치를 제시하면서도 그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두었다. 이로써 우리는 인체 허용기준치가 의학적인 안전 기준이 아니며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임의의 숫자임을 알 수 있다.
4. 기준치는 무엇을 위해서 만들었는가?
허용기준치는 핵폭탄이나 핵발전소가 없던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핵발전소 등이 생긴 이후 이 기준치의 필요성이 더 커진 것이다. 핵산업계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환경오염이 불가피해졌고, 이에 핵산업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러한 기준치가 필요해진 것이다. 기준치가 존재하면 그 이하에서는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없거나 미미하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 기준치는 국가들마다 다르고, 처한 상황에 따라서도 변하고 있다. 이 기준치가 의학적인 판단근거 보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핵산업계는 이렇게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이 기준치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체에 대한 방사능 피폭의 기준치가 핵산업계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다른 근거도 있다. 누가 이 기준치를 만드는데 참여하는지 보면 된다. 기준치는 물론 정부에서 만든다. 그러나 이 기준치를 정하는 정부의 위원회에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는가? 의학자들인가? 아니다. 주로 핵공학자들이다. 정부 관리와 핵산업 관련자들이 이 기준치를 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기준치는 핵산업에 의한, 핵산업을 위한, 핵산업의 숫자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5. 자연방사능과 의학적 방사능 노출의 위험
우리는 흔히 "이번 피폭량은 엑스레이 한 번 찍는데 노출된 양의 몇 분의 일이다"라는 설명을 듣게 된다. 의학적인 이용에도 방사능 피해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엑스레이를 한번 찍어도 인체에는 피해를 준다. CT나 MRI 등의 다른 방사선 검사도 마찬가지이다. 진단을 위해서 뿐 아니라 치료를 위해서도 방사능을 사용한다. 암 치료를 위해서 진단용으로 사용되는 양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방사능을 치료를 위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뿐인가? 자연방사능도 있다. 지구를 향해서 우주에서 날아오는 방사능과 땅속에서 나오는 라돈 기체가 인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자연방사능도 인체에서 암을 유발한다는 전문가의 견해를 들은 바 있다. 이렇게 우리가 불가피하게 노출되는 자연방사능과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선택하는 의학적 방사능이 암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정당성에 있어서 핵발전소나 핵무기 개발을 위한 핵실험에 의해서 노출되는 방사능과는 차별성이 있다. 자연방사능은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우리의 환경을 이루고 있고, 의학적 방사능은 피해보다는 이익이 더 크기에 우리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이웃나라의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받는 방사능 피해나 핵무기 개발을 위해서 피폭되는 방사능은 이들과 같은 정당성을 가질 수는 없다.
세계보건기구는 핵무기 개발을 위한 핵실험에 의해서 전세계 인구가 0.005mSv의 방사능에 더 피폭 되었고, 체르노빌 핵사고에 의해서 0.002mSv 더 피폭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전 세계인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않는 핵실험과 체르노빌 사고는 그 피해자인 세계인 앞에서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6. 정부는 왜 도쿄전력을 변호하는가?
요즘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의 정부의 태도를 보면 우리 국민에게 위해를 가하는 도쿄전력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변호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왜 그럴까? 도쿄전력은 우리 국민들에게 공기나 음식물을 통해서 엄청난 방사능 피해를 주고 있다. 앞으로는 수돗물과 바닷물 오염을 걱정해야 할 것으로 예측되는 이때에 왜 우리정부는 도쿄전력을 비호하는 듯 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지난 7일 방사능 농도가 높은 날에도 유럽 기상대의 예측대로 다른 날보다 방사능이 높았는데, 왜 우리 정부는 그 피해 정도를 더 낮게 예측하였을까? 정부 말대로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뿐이었을까? 아니면 정부 내의 찬핵 인사들이 갖고 있는 도쿄전력과의 동류의식이 이렇게 표현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판단은 좀 더 지켜보면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7. 누가 그들에게 인체 피해여부를 판단할 권한을 주었는가?
필자는 의사로서 인체에 대한 피해여부를 언론에서 매일같이 말하는 소위 "전문가들"의 설명을 듣기가 거북하다. 인체에 대한 피해 여부는 의학적 판단이 분명한데, 의사면허도 없는 비-전공자들이 매일같이 인체에 피해가 없다느니, 미미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월권행위라는 생각이 계속 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말들이 의학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세계보건기구 등의 문서를 통해 알게 된 이후에는 더욱 불편하게 느껴진다. 이런 월권행위에 대한 우리나라 의학계의 반응을 살펴보면 이들 비-전공자들의 월권행위가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의사협회는 핵산업계의 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안전하니 비 맞아도 된다"고 외치고 있고, 의학협회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런 논평도, 의견도 개진하지 않는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우리국민의 건강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뜻인지, 아니면 국가권력을 장악한 핵산업계 앞에 무릎을 꿇겠다는 뜻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 똑똑하다는 의사들의 행태는 그야말로 연구할 대상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 전공자들은 마치 의사면허를 덤으로 받은 것처럼 매일 언론에 대고 인체 영향을 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학협회와 의사협회의 이런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사회적 책무를 등한시 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의사들이 의학적 판단을 언제까지 핵공학자들에게 떠넘길지 지켜볼 일이다.
또한 정부와 핵산업계는 언제까지 의학적으로 옳지 않은 말들로 국민을 호도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다시 한 번 상기하지만 세계보건기구와 국제방사능방호위원회는 기준치 이하에서도 암 발생이 증가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현재의 기준치는 의학적인 의미의 안전기준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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