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개선안 발표 5시간 만에 백지화…왜?

카이스트 "학생들과 논의하기 위해 만든 자료"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이 100% 영어 강의 부담 완화 등을 골자로 한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5시간 만에 백지화하는 웃지못할 일이 발생했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은 12일 국회에 출석해 학생들의 자살 원인으로 꼽히는 100% 영어 강의를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카이스트는 12일 오후 7시께 학내 포털 사이트에 징벌적 등록금 제도의 개선안을 포함해 전 학부생에게 실시해온 영어 강의를 전공과목에 대해서만 실시한다는 등의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 학사운영 및 교육개선안을 게재했다.

여기에는 학생들에게 입학 후 첫 2학기 동안 학사경고를 면제해준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 성적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수업료에 대해 8학기 동안 모두 장학금을 지원한다는 내용도 있다. 사실상 징벌적 등록금제를 폐지하겠다는 이야기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100% 영어 강의는 전공과목으로 제한하고 학업부담을 20% 경감해주기로 했다. 학생 관련 위원회에만 국한됐던 학생참여 폭도 확대하고 재수강이나 계절학기 등과 관련해서는 관련 위원회에 학생이 참여해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개선안, 게재된 지 5시간여 만에 삭제

이런 개선안은 12일 오후 7시를 넘어 학내 포털 사이트에 게재됐지만 자정이 지난 뒤 카이스트는 이 같은 개선안이 학생들과의 논의를 위해 임의로 작성한 자료라며 이를 백지화했다. 개선안을 공지한지 5시간여 만에 이를 번복한 것. 현재 학내 포털 사이트에는 게재됐던 개선안이 삭제된 상태다.

▲ 서남표 총장이 12일 국회에 출석해 현안 보고를 마친 뒤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카이스트는 총장에게 보고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의로 작성된 자료가 외부로 공표됐다며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제출된 개선대책 외에 추가된 내용에 일부 오류가 있어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것일 뿐 기만 등의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개선안 가운데 대부분은 서 총장이 출석했던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11일 제출된 내용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 총장이 국회 질의에서 개선하겠다고 답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에 따라 카이스트가 국회만 잘 넘기기 위해 개선대책을 국회에 제출하고 슬쩍 개선안을 공지했다가 취소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런 해프닝 자체가 서남표 총장의 리더십은 물론 카이스트 전체의 대응능력의 한계가 노출된 거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내 구성원들은 13일 서 총장 거취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카이스트 총학생회는 이날 저녁 7시에 비상학생총회를 열고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이다. 학내에서는 서 총장 퇴진 서명 운동도 진행 중이다.

카이스트 교수협의회는 혁신비상위원회 구성을 서남표 총장에게 촉구하기 위한 온라인 투표를 12일부터 실시하고 있다. 11일 총회에서 결의한 '새로운 리더십의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한 1단계 방안이라는 것.

교수협의회는 이 제안이 교수 과반수의 지지를 얻을 경우 서 총장에게 비상위원회 구성 여부를 14일까지 확답해 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며, 만약 서 총장이 이를 거부할 경우 14일 소집되는 총회에서 총장의 용퇴를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