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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78] 불경하게 느껴지는 만큼 매혹적인 '거미여인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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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78] 불경하게 느껴지는 만큼 매혹적인 '거미여인의 키스'

[공연리뷰&프리뷰] 무대가좋다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

감옥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화가 언어를 통해 상영된다. 불가능한 두 세계가 한 곳에 공존하기 위해서는 합의된 보편적 기준을 초월한 몰리나가 필요하다. 작품은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으로 구속된 동성애자 몰리나의 영화이야기로 시작된다. 감옥과 영화의 공동 등장으로 시작한 연극은 이성과 환상, 사랑과 혁명, 남자와 여자, 문자와 영상 더불어 몰리나와 발렌틴이라는 대립 관계들을 동시에 제시한다.

▲ ⓒ악어컴퍼니 제공

특별한 외부적 사건보다는 두 남자의 대화, 심리를 통해 내부 사건이 모습을 드러내는 형식의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시대적 상황보다 인물들의 내적변화에 집중한다. 이 관계를 관통하는 것은 몰리나가 전해주는 영화이야기다. 몰리나가 상영시키는 영화로 시작된 연극은, 감상적이고 여성적인 몰리나를 경멸했던 발렌틴의 영화적 환상으로 막을 내린다.

원작 소설에서 몰리나가 들려주는 여러 편의 영화 중 연극은 사랑하는 남자와 키스를 하면 표범으로 변하는 여자주인공이 등장하는 첫 번째 이야기 '캣 피플'을 취한다. 관객과 발렌틴은 몰리나의 이야기가 조금씩 변형되고 있음을 짐작한다. 여기서 수정된 영화 속 인물이나 상황은 몰리나와 발렌틴의 관계를 상징한다. 몰리나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영화 속 여주인공은 아름답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키스를 받을 수 없는 불행한 여성이다. 시작부터 비극이 결정된 이 사랑이야기를 전하는 몰리나는 주인공의 머리모양과 옷, 손짓 등 디테일한 부분에 공을 들이지만 발렌틴은 감성적 몰리나를 비웃는다. 이념과 사상, 고급문화와 논리, 남성적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발렌틴과 달리 몰리나는 의상이나 외모 등 미적인 것들에 민감하며 관계와 인간의 감정, 사랑, 대중문화에 애정을 갖고 있다. 상반되는 두 세계가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연극은 주관적 사상과 무관한 인간 본연의 원초적 외로움을 끌어올린다.

▲ ⓒ악어컴퍼니 제공
혁명과 동성애라는 다소 자극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개인의 상처와 고독의 밀도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특수한 상황은 이질감대신 그 속에서 외적, 심적으로 학대당하고 있는 인간의 고통을 조명한다. 몰리나와 발렌틴의 정서적, 육체적 거리가 가까워짐을 연극은 극적이고 명시적인 언급이 아닌, 예민한 동작과 눈빛, 미묘한 대사 등을 통해 노출시킨다. 그 과정은 시간이 당연히 흐르고 낮과 밤이 자연스레 교차하듯 몰리나의 영화이야기와 함께 진행된다.

무엇보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위트 있는 몰리나의 캐릭터 재창조에 있다. 사랑스러운 몰리나에게서는 아름답지만 늘 거부당하며 변화를 강요받은 이의 상처가 홀로 남은 늙은 광대의 쓸쓸한 미소처럼 보이지 않는 흔적으로 존재한다. 게이라는 사회적 소수자를 거시적 관점에서 훑어 내린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안착해 깊숙한 곳을 어루만진 기특한 인간애가 사랑스러운 몰리나를 탄생시켰다.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이해했기에 가능한 지점이다. 이로 인해 관객은 몰리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됐으며, 발렌틴 감정변화의 과정이 명확하지 않음에도 그가 몰리나를 받아들인 이유를 짐작케 했다. 그에 비해 발렌틴이 갖는 외적, 내적 영역이 축소됐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섬세하게 그려진 몰리나와 달리 게릴라 발렌틴의 처절한 환경과 정신적 황폐함은 노골적 대사로만 드러날 뿐이다.

'무대가좋다((주)악어컴퍼니, (주)나무엑터스, CJ엔터테인먼트(주))박은태(몰리나 역)'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연이은 호평을 받고 있다. 박은태(몰리나 역)와 김승대(발렌틴 역)의 호연은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수확할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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