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이라는 단어로 촉발된 '靑-言 전쟁'이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청와대가 지난 28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기사를 문제 삼으며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취재제한 조치를 내리자 두 신문은 주말 동안의 숨고르기를 거쳐 31일 닮은 꼴 사설을 통해 반격에 나섰다.
<조선> "'청와대 브리핑' 같은 사이비 매체 만들어 공격하더니…"
먼저 <조선일보>는 "언론 증오는 이 정권의 '청와대병(病)'"이라는 사설을 통해 '대통령은 계륵'이라는 자사 기사에 대한 청와대의 비판을 반박했다.
이 신문은 "'계륵'은 '버리자니 아깝고 갖고 있자니 짐스럽다'는 뜻으로,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면 다 아는 말"이라며 "지난달 '한겨레 21' 좌담과 월간중앙 기사도 대통령을 가리켜 '계륵 같은 존재'라고 했는데도 청와대는 '조선일보가 국가원수를 먹는 음식에 비유했다'며 시비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 신문은 "'쓰는 순간 통쾌하다 해서 마구 남용하면 공급하는 자, 공급받는 자가 모두 황폐해진다'는 청와대의 말처럼 3년 반 동안 청와대 사람들이 해댄 말과 보인 행동에 이보다 더 들어맞는 표현은 없을 것"이라고 공박하기도 했다.
이어 이 신문은 노무현 대통령, 이병완 비서실장, 이해찬 전 총리와 자사가 벌인 시비를 되짚으며 "이것으로도 성이 안 차는지 청와대브리핑이니 국정브리핑이니 하는 '사이비' 언론매체까지 만들어 주요 신문을 닥치는 대로 비난 공격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이 정권은 줄곧 조선일보에 대해 사실상 취재 거부와 함께 온갖 폭언과 압박을 일삼아 왔기에 더 달라질 것도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선' 엄호하고 나선 <동아> "두 신문 독자에 대한 차별"
또한 <동아일보>는 '국민의 알 권리 빼앗는 청와대의 취재거부'라는 사설로 "청와대는 즉각 위헌적인 취재 거부를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조선일보> 사설과 대동소이한 이 사설은 "이백만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을 먹는 식품에 비유하거나, 출처불명의 유치한 농담을 인용한 천박한 메타포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면서 두 신문을 '마약'에 비유했는데 그렇다면 두 신문의 수백만 독자를 마약중독자로 만드는 메타포는 고품격인가"라며 청와대와 자사의 갈등을 독자들과의 그것으로 확장시켰다.
또한 이 신문은 자사와 청와대의 문제에 집중했던 <조선일보>와 달리 두 신문을 하나로 묶는 모양새를 취해 눈길을 끌었다. 이 신문은 자사 기사에서 문제 된 '약탈정부' '도둑정치'는 학술적 용어라고 주장하는 한편 "조선일보 기사의 '계륵'이라는 표현도 노 대통령과 관련해 다른 언론에서 이미 쓴 말"이라고 엄호했다.
또한 이 신문은 "공무원들이 특정 신문만 골라 취재를 거부하는 것은 견해 차별이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독자의 '정부에 대한 알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두 신문에 대한 인터뷰 거부와 취재 비협조는 결국 두 신문 독자에 대한 정보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보기 싫은 신문이 듣기 싫은 소리를 했다고 해서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청와대가 취재 거부를 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주장한 이 신문은 다만 "청와대는 노 대통령에 대한 시중의 비판이 글로 옮기기 민망할 정도인 줄 알기나 하는가"라고 말해 '표현의 민망함'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 신문은 <조선일보>의 '계륵' 기사와 자사의 '약탈정부' 칼럼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반박했지만 '노무현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모임' 운운했던 편집부국장 칼럼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식은 피자'도 있고 '푸들'도 있는데 '계륵'이 어때서…
한편 두 신문은 청와대의 취재제한 조치가 내려진 다음 날인 지난 29일에도 이를 사실보도 하는 기사를 통해 청와대 조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미 <월간중앙>과 <한겨레 21>이 대통령에 대해 '계륵과 같은 존재'라고 언급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한편 국가원수를 음식 등에 비유한 해외 사례를 전했다.
이 신문은 '식은 피자'(오부치 게이조 일본 전 총리, 뉴욕타임스) '감자'(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타게스차이퉁) 와 함께 '푸들'(블레어 영국 총리) '얼간이'(부시 미 대통령) 등을 그 예로 꼽았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청와대가 언론 보도에 불만을 표시할 수는 있겠지만 취재거부는 언론 본연의 임무와 헌법에 명시된 언론 자유정신에 정면 배치된다"는 윤영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지적을 전했다.
또한 이 신문은 "동아일보에 대한 청와대의 취재거부 조치는 이번이 두 번째"라며 "두 번 다 동아일보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취재거부가 특정 언론사에 대한 견제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고 보도했다.
취재제한 대상이 된 두 신문이 예상대로 반격에 나섰지만 대통령과 일부 비서관들이 휴가를 보내고 있는 청와대는 별다른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고만 짧게 말했다.
다만 과거 보수 언론과의 충돌 과정에서는 청와대 측이 보수언론의 행태에 비판적인 대중들의 지지를 일정 정도 얻기도 했던 선례와 달리 이번에는 그야말로 싸움 자체에 대해 '식상하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고민이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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