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식 '사회적 협약'이 30일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해석과 실현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제각각이다.
'투자 확대를 전제로 한 출총제 폐지, 경영권 보장' 제안에 대해 김 의장 측은 "비상상황에서 나온 용기 있는 사회적 협약 제안"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재벌들의 해결사로 나서며 '선처'를 바라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만만치 않다.
김근태의 '소금산'은 재벌?
30일 김근태 열린우리당 당의장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주몽>에 대해 장황히 설명하며 "주몽이 부여 백성들의 소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금산'을 찾아 고산국으로 떠났는데 우리에게도 바로 그 '소금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제시한 소금산은 결국 '재벌과의 빅딜'로 드러났다. 김 의장은 "국내투자 확대, 신규채용 증대, 하청관행 개선,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배려 등을 경제계가 결의한다면 출총제 폐지, 경영권 보호 ,규제완화 조치 등을 여당이 나서서 실행에 옮기겠다"고 제안했다.
김 의장은 이를 "재계에 대한 여당의 뉴딜 제안"이라고 규정하고 "당장 내일은 상공회의소를 방문하고 이번 주 안에 전경련,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을 방문하는 한편 필요하다면 재벌총수들도 직접 만나 협조를 구하겠다"면서 발 벗고 나설 뜻을 감추지 않았다.
이와 함께 김 의장은 "경제계와 합의가 이뤄지면 두 번째 단계로 노동계에 대한 대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한 장정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기를 내서 제안한 것…욕먹을 각오 됐다"
"출총제 때문에, 경영권 보호가 안 돼서, 규제가 많아서 투자가 안 된다"는 재계의 주장을 100% 수용한 김 의장의 이날 발표에 대해 핵심당직을 맡고 있는 측근인사는 "이는 '김근태식 사회적 대타협'으로, 사회적 협약을 제안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인사는 "사실 오늘 나온 내용은 '김근태가 제안한 것'으로 믿기 힘든 것이 많다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바로 내일부터 시민단체들로부터 욕먹을 각오도 하고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 인사는 "우리도 솔직히 출총제 같은 것 때문에 투자가 안 됐다는 재계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힘들었다"면서 "돈 된다는 보장이 있으면 왜 그 사람들이 투자를 안 했겠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 이후 재벌들의 '자본파업'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가 (규제를) 풀어줄 테니 재계는 돈 보따리를 풀라는 것"이라며 "재계에서 보따리를 받아서 노동계 설득에 나설 것이고 이것이 바로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주장했다.
"재계가 거절하면 '마이 웨이' 가자는 것으로 해석"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것이 재벌과 주고받기 식의 거래를 통해 이뤄질 수 있겠냐"는 지적에 이 인사는 "그 비판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면서 "하지만 그간 추진됐던 각종 사회적 협약이 성과를 거둔 게 하나도 없었지 않느냐. 다 같이 모이면 판이 깨지기 십상이니 만큼 우리가 나서서 순차적으로 협약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재계가 이를 어떤 수준에서 수용할 지는 미지수다. 전경련이나 대한상의 차원에서 투자 확대, 원하청 구조 개선 등의 요구에 대해 추상적 선언만 발표하고 출총제, 경영권 방어 등과 관련된 '실리'만 챙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또 다른 핵심 인사는 "결국 이건희, 정몽구 등 '오너'가 나서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그래서 재벌총수까지 직접 만나겠다고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그 부분에 대해선 현대자동차 CEO 출신인 이계안 의원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인사는 또한 "만약 이런 제안까지 재계가 거절하고 나온다면 결국 각자 '마이 웨이'를 걷자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면 우리는 사회복지 강화 쪽으로 다시 돌아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노동계 "논의할 가치도 없어 보인다"
재계와 '뉴딜'이 성사될지도 미지수이지만 다음 주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될 노동계와 '2차 뉴딜'도 첩첩산중이기는 마찬가지다.
당 전략기획위원장과 서민경제위원 직을 맡고 있는 이목희 의원은 '노동계와 정부여당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뉴딜이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에 대해 "인정한다"면서 "협약과 별개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포스코 사태에서 드러난 원하청 구조의 문제점,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등은 지속적이고 꼼꼼히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이수봉 대변인도 "김 의장이 재계에 요구한 내용은 당연하게 법적으로 지켜져야 할 사항과 기업이 당연히 맡아야 할 사회적 책무에 대한 것인데 도대체 뭘 받고 뭘 주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오늘 나온 것대로라면 논의할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고 일축했다.
남이 하면 '우경화 정책', 우리가 하면 '고뇌에 찬 결단'?
또한 김 의장의 이날 발표는 우리당의 전면적 우경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간 강봉균 정책위의장을 중심으로 한 당 골간조직에서는 '아파트 분양가 원가 공개 반대',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정책', '건설규제 완화' 등 '실용적'인 정책과 발언을 잇달아 내놓았지만 김 의장과 서민경제위는 '동반성장'을 강조하며 일정하게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을 보여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날 김 의장의 발표는 강봉균 정책위의장등 이른바 실용파의 그간 주장을 훨씬 뛰어넘었다.
김 의장은 이날도 "참여정부가 미국식 시장주의에 경도됐다"며 "강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정글식 시장이 되어선 안 되고 패자부활전이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평소 논리를 설파했지만 "비상상황이기 때문에 경제계의 요구를 고려해서 그 쪽으로 선택하겠다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유야 어떻든 "김근태 계까지 '親재벌 노선'으로 돌아서면 우리당의 우경화는 걷잡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김 의장의 한 측근 의원은 "그 쪽(실용파)하고 우리는 근본적인 철학이 다르다"고 애써 선을 그었다. 이 의원은 "예컨대 금융산업법 같은 것은 물러설 수 없고 마구잡이식 건설업 부양, 부동산 세제 같은 것은 오늘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용파의 우경화는 그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고 자신들의 우경화는 '서민경제 활성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주장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여당의원 "금시초문이다"
개혁적 성향으로 분류되는 여당의 다른 의원은 "그런 내용(뉴딜)이 발표된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면서 "사전에 전혀 논의된 바도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독단적으로 준비해 밀어붙인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내용 역시 결국 재벌들한테는 손 안 대겠다는 것 아니냐"면서 "그나마 있었던 재별개혁조차 완전히 접겠다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 역시 "김근태 의장이 이제 완전히 항복선언을 한 것"이라며 "정부여당의 재벌정책이 실패했다는 선언에 다름아니며 김 의장 스스로가 재벌의 해결사를 자임하고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심 의원은 "그 의도에 진정성이 전혀 없다고 말하긴 힘들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번 제안은 재벌들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것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당권을 쥐었지만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김 의장이 고민 끝에 '욕먹을 각오'를 하고 'GT식 사회적 대타협'을 제안하고 나섰지만 그 실현가능성은 가늠하기 힘들다. 오히려 장고 끝의 악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다만 그 성공 여부를 떠나 이번 제안이 김 의장의 '회심의 승부수'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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