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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본의 '밥' 식맹(食盲)들아, 아직도 고깃국 타령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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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자본의 '밥' 식맹(食盲)들아, 아직도 고깃국 타령이냐?"

[기고] "내일은 뭘 먹을 겁니까?"

이를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론다 번이 쓴 유명한 책 <시크릿>은 우리가 하는 생각이라는 것은 파동이 같은 생각을 연이어 하게 하고 이를 현실에서 실현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현상을 생각폭풍이라고 말 한 사람도 있다. 연말연시를 맞아 <사단법인 밝은마을>에서 하게 된 열하루 동안의 단식수련을 마치니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닥친 일들이 꼭 그렇다.

단식수련에서 시작된 인연들

수련 중이던 스물 다섯 명 중에서 나를 포함 해 열 명가량이 채식을 선언했다. 머릿속으로만 육식의 문제를 공감하고 있다가 식생활 바꾸기를 결의한 것이다. 영동에서 농사짓는 손 아무개 선생이 두 시간여에 걸쳐 채식 열강을 한 덕이다. 구제역이 창궐하고 있는 당시의 정황이 한몫한 것은 당연하다.

단식을 끝낸 뒤 한겨레와 프레시안에 칼럼을 썼고 그게 인연이 되어 어느 소비자단체의 구제역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보식하는 중에 마주한 수많은 밥상들에는 고기가 안 들어간 그릇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김치에 섞인 고기들까지 두드러져 보인 것은 단식하고 채식을 작정한 때문이리라. 새해 상당기간은 구제역과 단식과 채식으로 연결되는 나날이었다.

군과 군, 시와 도의 경계를 넘는 길목마다 흰 방역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하얀 생석회 가루를 차량에 뿜어대고 있는 모습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본다. 신문 귀퉁이에 조그마하게 오늘은 어디서 구제역 양성판정이 났다는 소식만 실리곤 하더니 이제는 방송이나 정당, 종교단체, 환경단체가 나서서 토론회다 위령제다 하여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정말 위기인 모양이다.

아직은 방역대책이 부실하다느니 살처분이 비인도적이라느니 동물복지가 실현되어야 한다느니 하는 논의만 무성하다. 축산농가 보상과 재난지역 선포에 정치가들이 앞장서고 있다. 가축방역기관과 지자체의 역할을 강화 한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구제역, 우리의 밥상을 들여다보라는 경고다

그러나 정작 아무도 자신의 밥상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되풀이되는 고상한 전통인 남 탓, 정부 탓이 이번에도 미리 짜인 일정표처럼 연출된다. 축산 농가들은 날벼락 맞은 희생자다. 축산 농가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한탄과 절망에 공감하느라고 정부의 부실대응과 살처분 일변도의 방역 차단 책을 더 질타한다. 자기 자신이 당장 해야 할 책무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오늘은 뭘 드셨습니까? 오늘도 옥수수 많이 드셨습니까? 고기는 안 드셨다구요?"

요즘 내가 건네는 인사법이다. 우리의 밥상을 점검하지 않고서는 구제역이나 광우병, 조류독감을 막는 대책이란 모두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옛날 옛적에 전국의 모든 교실에서는 도시락 검사를 했었다. 혼식 장려라는 군사정권의 정책에 맞춰 교실마다 선생님이 회초리를 들고 밥에 섞인 보리쌀을 확인하곤 했는데 이제는 스스로 자신의 밥상을 검사할 때라고 본다.

왜 그러냐하면 동물들의 집단 살처분을 하나하나 역 추적하다 보면 바로 우리가 차리는 밥상이 그 종착점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밥상이 동물의 공장형 밀식사육을 부추겼고 밀식사육이 동물학대와 집단살육을 불렀다. 그렇게 형성된 밀식축산은 다시 우리의 밥상을 왜곡시켰다. 사람의 신체구조를 보거나 지구환경의 한계를 보더라도 지금의 산업형 공장축산의 육식은 인류 최대의 적이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의 밥상이 근 200만 소·돼지 집단살육의 원흉이라는 거다. 우리가 하루 세 번 차리는 것은 생명의 밥상이 아니고 죽음이고 살상이고 무덤이라고 하면 참 끔찍한 말로 들리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푸드 주식회사>라는 영화에 직접 트랙터를 운전하며 등장 한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인 마이클 폴란이라는 작가는 자신의 저서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한 끼 식사는 고도의 정치행위다."라고 말한다. 밥 한 그릇의 이치를 아는 것은 세상만사를 아는 것과 같다고 하신 해월선생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天依人 人依食 食一碗 萬事知 - 하늘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을 것에 의지하나니 밥 한 그릇의 이치를 안다는 것은 만사를 아는 것과 같으니라. 천도교 경전 '천지부모'편)

▲ AI 살처분 직전 양계장 닭장 안의 닭들ⓒ연합뉴스

육식이 문제다 - 지구환경과 사람을 망치는 원흉

자연상태에서는 최소 5-6개월 자라야 삼계탕이 되는 닭이 요즘은 부화한 지 27일 만에 삼계탕이 된다고 한다. 같은 무게의 생수보다도 양계장 닭값이 싸다면 이건 음식이 아니라 성장호르몬 덩어리이며 옥수수 뭉쳐 놓은 것에 불과하다. 닭들은 앞가슴 살만 기형적으로 발달하는 종으로 개량되었다.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아 살이 찌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닭고기 하면 앞가슴 살을 찾기 때문이다.

마이클 폰란의 책에는 미국인 한 사람이 1년에 자그마치 1톤의 옥수수를 소비한다는 통계도 나온다. 닭, 양, 오리, 돼지, 소, 칠면조는 물론 심지어 양식장 연어와 장어까지 다 옥수수 덩어리라는 것이다. 육식어종인 연어가 옥수수를 먹고 속성으로 자라게 하려고 연어의 디엔에이(DNA)를 조작했다는 사실도 나온다. 옥수수만 한 생산성 높은 사료가 없기 때문이다. 식용유, 과자, 인공향료 등과 라면봉지도 옥수수로 만든다고 한다. 포장지의 코팅도 옥수수고 현대식 건물 대부분의 건자재들, 예컨대 벽판과 이음재, 리놀륨, 유리섬유, 접착제 등도 다 옥수수다. 치약과 화장품, 일회용 기저귀, 배터리, 성냥도 옥수수를 넣어 만든다.

이렇다 보니 옥수수는 끊임없이 다른 식물과 인위적인 가루받이를 하고 유전자를 조작하여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70년대에 비해 2.5배, 20년대에 비해 7배나 늘었다. 말 그대로 유전자조작 옥수수가 지구를 습격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산업형 동물개체들은 인간을 필두로 모두 다 옥수수를 어머니로 모시고 살게 돼 버렸다. 한 사람이 1년에 옥수수를 1톤씩이나 먹는다는 사실이 비로소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덕분에 토지는 사막화되고 가축은 축산물로 불리며 독이 되어 사람의 건강을 망치고 있다.

원래 소는 반추동물로 되새김질을 한다. 되새김질을 위해 소의 위는 산성인 사람과 달리 산성도(피에이치 pH)가 중성이다. 그러나 섬유질이 없고 전분뿐인 옥수수를 먹게 된 소의 위에서는 발효작용이 일어나면서 엄청난 가스가 생기고 산중독이 된다. 이런 소는 숨을 헐떡이면서 침을 흘리고 설사와 궤양, 고창증(鼓脹症 - 발효성 사료 섭취에 의하여 제1위에 생산된 가스로 급격히 제1위와 제2위가 팽창하여 소화기능장애를 일으키는 일종의 대사질병)에 시달린다. 위 벽이 허물어지고 간에 농양이 생기는 이 병은 어떤 소든지 다섯 달 이상을 생존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항생제를 상용하는 것이다. 아예 사료에 섞어서 소에게 먹인다. 타일로신이나 루멘진 같은 약물들이 그것이다. 호주보다 37배나 많은 항생제를 소에게 먹이고 있는 우리나라 축산농가의 실정은 축산업자들이 더 잘 안다. 늘 약물 중독상태라고 말 한 한겨레 칼럼 덕분에 나는 몇 사람에게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그 말을 바꿀 생각은 없다. 얼마 전에 정부의 축산관련 부처에서 53종이나 되는 항생제를 25종으로 줄였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이번 구제역 사태에서 생계형이 아닌 거대 축산농가들을 일방적인 희생자들로 바라보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오도하는 것이다. 축산농가는 이중적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제역의 피해자이면서도 건강한 식탁을 어지럽히는.

'식맹'의 등장

예전에는 글을 모르는 문맹이 있었다면, 요즘은 컴맹이 있고 넷맹이 있다. 최근에는 모든 사람들이 식맹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타락한(?) 식품들의 생산과 가공, 유통의 비밀을 모른 채 자발적으로 대자본의 밥이 되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수백 마리 또는 수천 마리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농부라기보다 축산자본가라고 봐야 한다.

자기가 먹을 것을 생산하기보다 팔기 위해 생산하는 것을 산업이라 하고 그런 사람을 자본가 또는 농기업가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구제역 방역의 초동대응이 부실했다느니 백신 예방이 늦었다느니 생매장이 끔찍하다느니 하면서 고깃국을 먹고 있는 사람은 전형적인 식맹이다. 사람의 혀끝을 농락하는 싼값의 고기를 만들어 내느라고 벌어진 일들이기 때문이다.

재작년부터 대형 식당에는 색다른 안내판들이 나붙기 시작했다. 식재료의 원산지표시다. 특히 육류에 대한 원산지 표기가 의무화되면서 국산 고기를 앞다투어 광고하고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해병대 퇴역군인들의 모임인 해병전우회라는 단체가 애국심을 북돋는다는 구실로 양담배 피지 말고 국산담배 피우자고 차량에다 써 붙이고 다니는 행위와 같아 보인다. 공중파 텔레비전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설을 맞아 한우를 많이 먹자는 캠페인이 시작되고 있다.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는 현상들이다. 사람에게 좋은 고기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도리어 육식은 암페타민이나 모르핀 같은 마약류의 향정신성 의약품처럼 엄격히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건강문제, 환경문제, 동물학대문제, 생명경시 풍조 등 모든 지구문명의 총체적 위기를 싸안고 있는 게 바로 육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식탐이 어느 지경까지 치달을지 식당에 걸린 차림표를 보면 끔찍할 정도다. 항정살이라고 하여 돼지의 목덜미 살만, 그것도 생고기로 내놓지를 않나, 간과 횡경막 사이에 있는 근육질의 갈매기살(일명 안창고기)를 내놓기도 하고 돼지 한 마리당 200그램밖에 안 나온다는 가브리살을 금싸라기 값으로 내놓기도 한다. 가브리살은 등심 왼쪽에 손바닥만 하게 있는 등겹살이다. 그래서 이 고기는 황제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동물의 몸 부위를 골라가며 떼어 내 먹고 있는 사람들의 자멸적인 식탐은 자본의 부추김에 끝 모를 질주를 계속한다.

참으로 용기있는 사람. 참으로 진보적인 사람

외출할 때 손수건과 도시락과 장바구니 챙길 줄은 모르고 지갑만 챙기고 거울만 들여다보는 사람은 교양인이라 할 수 없다. 현대의 지식인은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다발로 물건을 사는 사람 일 수 없다.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면서 매식을 일삼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사람이다. 한 끼 밥 한 그릇은 고도의 정치행위라 하지 않았는가.

어제 휴대폰 문자가 왔다. 6년여 전에 도법스님과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하다가 서해안 해창개펄에서 만난 사람이다. 어린 초등학생 아이를 학교도 쉬게 하고서 순례길에 내 보냈던 젊은 엄마다. 문자에는 밥상에 더 이상 고기를 올리지 않겠다고 씌어 있었다. 입으로 느끼는 쾌락을 중지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살상은 계속 되풀이되지 않겠냐고 하셨다.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다. 내가 쓴 한겨레 칼럼을 보고 바로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두어 달 전에 정읍 노인종합복지관에 강의하러 갔다가 무슨 자활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분과 식사를 같이 했는데 이렇게 글 한 편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오마이뉴스>에는 <구제역, 우리도 할 일이 있다>는 기사가 올라와 있다, 최봉실 기자가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채식을 실천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대단한 개혁가라고 생각한다. 제도와 체제는 바꾸면서 자기 자신은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뒤늦게나마 구제역 사태를 맞아 식생활을 점검하고 습관화된 편리들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진보주의자다. 참된 개혁주의자다. 개벽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비참과 환란을 당하여 정치권력자나 시스템을 비판하면서도 자기를 혁신하는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출현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내일은 뭘 먹을 겁니까?

(*필자 주: 이 글은 1월 말에 출간되는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 기관지 <귀농통문>의 머릿말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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