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소들이 죽어갈 때 나는 머리 굴리고 있었다
보상금청구서에 도장을 찍고 담배 피우려 나오는데
포크레인에 걸린 암소 두 마리 구덩이로 향한다
그렇게 땅이 메워지고 모든 게 끝났지만
언어는 왜 그리 매혹적인지
빈 축사에 들어서면
텅 빈 말씀이 가득했다
그곳엔 어떤 깨달음도 후회도 없었다
그게 이상하고 하도 속상해 잠도 오지 않았지만
마음도 풀 겸 그 짓 하고 나서
지갑 속에 돈을 두 번이나 확인하는데
점점 비워지고 채우는 게 내 욕망인 것만 같아
괜히 웃음만 나왔다
짐승은 말이 없다. 언어의 타락이 곧 삶이지만 축산업자도 언어를 버릴 수가 없다. 병든 언어가 판치는 세상에서 자유로운 건 본능뿐이다. 이제 자유로운 건 욕망뿐이고 남겨진 건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경기도 안성에서 소를 키운 지 13년이 되어간다. 젖소목장을 15년이나 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축산학과를 졸업했지만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부모님은 목장을 접으셨다. 그리고 서울에서 견디지도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한우사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소들은 정직했다. 주인의 보살핌과 사랑을 보여주면 자신의 목숨 값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국제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50여 마리의 암소들은 우리 가족의 삶을 이어줬다. 풍족한 삶은 아니었지만 자유롭고 보람찬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송아지가 축사 한가득인 가을이면 마음은 이미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올겨울,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은 그냥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파주로 김포로 확산은 되었지만 여주, 이천으로 와서야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남의 염병이 제 고뿔만 못하다'는 속담은 이제는 '과부사정 과부가 안다'로 처참히도 바뀌고 말았지만.
암소 한 마리가 밥을 먹지 않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날은 일죽면을 휩쓸던 구제역에 우리 동네 한 분도 매몰이 끝난 날 아침이었다.
소를 묶어놓고 주둥이를 벌렸다. 이 윗몸이 헐고 혀를 만지니 바닥이 벗겨졌다. 구제역 의심증상이었다. 멍했다. 현실이 아닌 듯 내 발걸음은 흔들렸다. 부모님과 상의를 하고 다시 확인하니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수라장이던 면사무소에서 간신히 백신을 구해 예방접종한 지 6일째였다. 몇 번의 주저 끝에 주변 한우농장에 피해를 줄까 봐 걱정도 되어서 면사무소에 의심신고를 했다.
그리고 오후에 가축위생연구소 남부지소에서 검사를 나와 다시 확인했더니 구제역 같다고 했다. 그날은 면사무소에 접수된 의심신고만 13집이었다.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시청 방역계장과 상황실에서 매몰예정일을 알려주고 나는 여기저기 전화걸어 검사결과만이라도 나오고 매몰하자고 사정했으나 보상금이 깎인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기고를 보낸 후 조인선 시인은 다시 연락해 와 "(구제역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며 살처분에 분노했다.
조인선. 1993년 시집 [사랑살이], 1997년 문학과사회 [구두를 찿아서]외 3편 발표, 2002년 시집 [황홀한 숲], 2010년 시집 [노래] 등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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