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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 대부' 이돈명 변호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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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 대부' 이돈명 변호사 별세

향년 89세. 유신시절 숱한 시국 사건 도맡아

'인권운동의 대부', '인권변호사의 맏형', '인권변호사의 대명사' 등의 별칭을 갖고 있는 이돈명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가 11일 저녁 별세했다. 향년 89세. 이 변호사는 최근까지 외출을 하는 등 활동을 해왔으나 노환으로 이날 자택에서 별세했다.

1922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이 변호사는 1948년 조선대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1952년 사법고시 3회에 합격한 뒤 판사를 거쳐 196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특히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 하에서 숱한 시국 사건 변론을 맡았다.

1974년 유신 치하에서 민청학련 사건을 시작으로 이후 인혁당 사건, 김지하 반공법 위반 사건, 청계피복 노조 사건,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 YH 사건, 미국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광주민주화운동 등의 변론을 맡았다. 1979년에는 10.26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 씨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시국 사건 변론을 주로 맡다 스스로 투옥되기도 했었다.

1986년에는 한승헌, 홍성우, 조영래 변호사 등과 인권 변호의 취지에 공감하는 동료들과 '정의실현 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했는데, 이 모임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전신이다.

▲ 2004년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와 함께 참석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30돌 기념식. ⓒ연합뉴스

이 변호사는 이밖에도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인권위원장,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장,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인 및 상임이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등을 맡았고, 조선대 총장, 상지학원 이사장을 맡으며 사학 개혁에 앞장서기도 했다. 남재희 전 장관은 YS 정부 시절,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이 변호사를 총리로 추천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최근까지 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로 재직하며 활동을 해왔다.

유족으로는 아들 영일, 동헌, 사헌 씨와 딸 영심, 영희 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의료원 장례식장 14호실이며 발인은 15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천주교 성당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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