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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긴조' 피해자들 36년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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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긴조' 피해자들 36년 만에

[현장] 긴급조치 1호 '위헌' 판결…민변, 무상 변론

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
좁고 추운 네 가슴에 얼어붙은 피가 터져
따스하게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하던
그 시간
다시 쳐온 눈보라를 죽음이라 부르자

모두들 끌려가고 서투른 너 홀로 뒤에 남긴 채
먼 바다로 나만이 몸을 숨긴 날
낯선 술집 벽 흐린 거울 조각 속에서
어두운 시대의 예리한 비수를
등에 꽂은 초라한 한 사내의 겁먹은 얼굴
그 지친 주름살을 죽음이라 부르자
(김지하, <1974년 1월>)


36년 만이었다. 한 때 푸른 청춘이었던 청년들이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다시 만났다. 누군가는 아직도 고문 후유증으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모멸적이었던 남산 대공분실에서의 '그날'의 기억을 반복적인 악몽으로 꾸고 있었다. 김지하의 시처럼, 그들에게 1974년 1월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이른바 '긴조 세대'라고 불렸던 사람들, 한 참가자의 말처럼 한 때는 '봄빛처럼 푸르른 꿈이 있었던' 그 젊은이들이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되어 한 자리에 모였다. 10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유신·긴급조치 대법원 판결 및 피해자 재심·국가배상 등을 위한 설명회' 자리에서다.

이날 설명회는 지난해 말 대법원이 긴급조치 1호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리고, 이에 따라 지난 3일엔 긴급조치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형사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첫 결정까지 나오면서, 그간 피해자의 구제를 위해 노력해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주최로 열렸다. 수백여 명에 달하는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무죄 판결 및 보상의 길이 열린 상황에서, 이들의 법률적 구제 방법을 설명하기 위한 것.

▲ '유신·긴급조치 대법원 판결 및 피해자 재심·국가배상 등을 위한 설명회'가 10일 오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주최로 열렸다. ⓒ프레시안(선명수)

1970년대 폭압적 유신 독재의 상징이었던 긴급조치 1호는 "천재지변이나 재정·경제상 위기,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는 유신헌법에 근거를 두고 1974년 1월 8일 선포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조항을 근거로 총 9차례에 걸쳐 긴급조치를 내렸으며, 1호를 통해선 유신헌법에 대한 부정·반대나 헌법 개정의 주장·청원 등을 일체 금지하고, 이를 어긴 사람을 영장없이 체포·구속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심지어 이런 내용을 담은 긴급조치 제1호 자체를 비방해도 처벌했다. 이 때문에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구속돼 중형을 선고받는 사건이 줄을 이었으며, 막걸리를 마시다 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잡혀간다는 뜻에서 '막걸리 보안법'이란 말까지 나왔다.

"정치의 '정'자에도 관심 없었는데…아직도 고문 후유증 시달린다"

36년 전, 경기도 평택에서 토끼 40마리를 키우던 오종상(69) 씨 역시 1974년 5월의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오 씨는 버스 옆자리에 앉은 여고생이 '반공·근면·저축·수출 증대 웅변대회'에 나가는 길이라는 얘길 듣고 정부를 비판하는 말을 했다. 비판이라고 해야,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이나 독재 정권의 퇴진을 요구한 것도 아닌 당시 시행하던 '분식(粉食)'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오 씨는 "정부에서는 분식을 장려하는데 정부 고관과 부유층은 분식이라며 국수 약간에다 순계란과 육류가 태반인 분식을 하니 국민이 정부 시책에 어떻게 순응하겠냐"라는 말을 했고, 여고생은 이 이야기를 학교 교사에게 전했다. 교사의 신고로 중앙정보부에 강제 연행돼 고문을 당한 오 씨는 이듬해 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은 뒤 만기출소했다.

오 씨는 중앙정보부에서 일주일간 밤낮없이 받았던 고문의 후유증 때문에 "지금도 말을 길게 하면 몸이 떨리고 말을 더듬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치의 '정'자에도 관심이 없었던 나 같은 사람도, 자그마한 땅이라도 마련해 농사를 짓는 게 꿈이었던 나 같은 사람도 무자비하게 잡아넣고 고문했던 것이 긴급조치"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 긴급조치 피해자로 첫 무죄 판결을 받은 오종상(69) 씨. ⓒ프레시안(선명수)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재심 권고를 받기도 했던 오 씨는 결국 지난해 12월 열린 재심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긴급조치 1호에 대한 '위헌' 결정으로 인한 첫 무죄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그간 긴급조치 위반 혐의에 대해 해당 조치의 해제로 형이 폐지됐다는 이유를 들어 무죄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면소 판결을 해왔다.

참 '신중한' 사법부였다. 그만큼 오랜 세월이 걸렸다. 유신 독재체제의 고분고분한 협조자로 숱한 사람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던 사법부는 결국 긴급조치 1호 선포 36년 만에 스스로의 과거를 결자해지 했다. 36년 만에 사법적 불명예를 벗은 오 씨의 무죄 판결로, 그와 마찬가지로 불법 체포·구금됐던 수많은 피해자들에게도 구제의 길이 열렸다.

백기완 "이명박 정부는 유신체제의 사생아…법원 판결은 싸움의 시작일 것"

1974년 1월 긴급조치 철회를 위한 시국기도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체포돼 역시 3년형을 받았던 이해학 목사(당시 주민교회 전도사)는 "시멘트 바닥에 나를 무릎 꿇려 앉히고 자신이 이발하고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던 검사의 모멸적인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말했다. 도시빈민운동을 하던 김진홍, 인명진 목사 등 6명이 구속된 이른바 '성직자 구속 사건'이었다.

이 목사는 "36년이 지난 지금 다시 재판을 받으려는 이유는 사법부의 엉터리 재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결국 잘못된 재판은 역사의 심판을 받고, 진실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긴급조치 1호의 '첫 피고인'이었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더욱 날선 비판의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개헌청원서명운동을 주도하다가 고(故) 장준하 선생과 함께 체포, 기소가 이뤄진지 불과 엿새 만인 1975년 1월 31일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백 소장과 고 장준하 선생의 유족 역시 지난 2009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현재 심리를 기다리는 중이다.

백 소장은 이날 설명회를 공동주최한 7080민주화학생운동연대 회원들을 향해 "1970년대 분단 억압체제인 유신 체제를 깨부시기 위해 앞장섰던 동지들을 보니 힘이 난다"면서도 "오랫동안 자유, 민주주의, 통일, 해방을 외치며 살아왔는데 긴급조치와 유신체제는 지금도 우리를 뼈져리게 억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긴급조치 1호에 대한 위헌 판결은) 유신체제의 사생아인 이명박 정부를 타도하기 위한 싸움의 시작일 것"이라며 "그 싸움에 부디 이 늙은이도 끼워달라"고 밝혀 박수를 받기도 했다.

민변, '긴조 피해자'들 무료 소송 지원

한편, 이번 소송을 주도한 민변의 긴급조치 변호인단은 대법원의 위헌 결정으로 향후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 청구 및 무죄 판결·형사보상 등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민변 과거사위원회 이상희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결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인정한 것임과 동시에, 긴급조치 1호가 형식적 법률의 요건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라며 "이후 긴급조치 9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위헌 판결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변은 향후 긴급조치 1호 피해자를 중심으로 재심 및 형사보상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며, 수백여 명에 달하는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일괄 구제를 위한 특별법 입법도 추진할 전망이다. 또 긴급조치 9호를 비롯한 유신헌법에 대해서도 헌법 소원을 준비 중이다.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민변의 공익·인권사건 처리 원칙에 따라 별도의 비용없이 민변을 통해 재심 및 형사보상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문의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긴급조치 변호인단(02-522-7284, http://minbyun.jinbo.net)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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