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충혈 된 눈으로 고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좋은 세상을 누리셔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지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답답하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실천하는 지성' 리영희 교수가 5일 오전 81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은 고인의 넋을 기리기 위한 정계, 사회계 인사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반독재투쟁, 통일운동 등에 앞장서며 반공 극우 이데올로기 속에서 진실을 밝혀온 리영희 전 교수는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날 장례식장에는 한나라당 등을 제외한 범 진보 진영 인사 대부분이 빈소를 찾았다.
"2년 뒤 좋은 세상을 보셨어야 했는데 안타깝다"
이날 오후까지만 하더라도 이해찬 전 국무총리, 한명숙 전 국무총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송영길 인천시장, 백원우 민주당 의원 등 야당 정치인을 비롯해,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김세균 사울대 교수 등 각계각층 인사들이 조문했다.
▲ 헌화를 하고 있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 ⓒ프레시안(최형락) |
1989년 인권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리영희 한겨레 방북 취재기사 기획사건'을 맡았던 천정배 민주당 의원은 고 리영희 전 교수의 부인 윤영자 여사를 만나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신 분이었다"며 "2년 뒤에 좋은 세상을 보셨어야 했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윤영자 여사는 "앞으로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두 손을 꼭 잡았다.
천정배 의원은 고인을 회상하며 "지식인 투사임에도 자애로운 분이었다"며 "두 가지를 모두 겸비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고인은 투사임에도 늘 우리에게 자애로웠다"고 평가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지적으로 깨어있는 분"이었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송 시장은 "고인의 말 중 가장 기억이 나는 말은 1980년대 때 남북 관계가 잘 풀리지 않으면 한국은 일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며 현 남북 상황에서 고인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리영희 교수가 결혼 주례를 섰다는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선생이 리영희 선생"이라고 평했다. 김 교수는 "리영희 선생은 냉전과 야망과 우상이 판치는 70년대와 80년대에 세상과 싸운 비판적 지식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모든 세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참 스승"이라며 "이런 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 교수는 "우리 후학이 그 분의 반이라도 따라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며 "하지만 부족하더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 고인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했다.
▲ 박원순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최형락) |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구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리영희 선생을 60년대 중반부터 봐 왔다"며 "나의 선생님이자 선배이며 항상 모든 일에 앞장섰던 분"이라고 평했다. 백 교수는 "살아온 세월 동안 올곧은 행동만을 해왔다. 그래서 고생도 많았다"며 "그래서 후학들이 더욱 그를 따랐다"고 회고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선생님이 가시니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항상 지식인으로서 올바름의 기준, 진보의 기준에 대해 말했었다"며 "리 선생은 우리 시대 진정한 지식인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상이었다"고 평했다.
한편 리영희 교수의 장례는 4일장으로 민주사회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유족은 부인 윤영자씨와 아들 건일·건석씨, 딸 미정씨가 있다. 장례위원장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임재경 초대 <한겨레> 부사장, 고은 시인이 맡기로 했으며 고광헌 <한겨레> 사장, 박우정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 등이 집행위원장을 맡는다.
영결식은 8일 오전 6시 30분에 진행되며 리 교수의 영현은 오전 10시 경기 수원시 연화장으로 옮겨져 화장된다. 리 교수의 장지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로 잠정 결정됐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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