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씀 못하신 채 깊은 숨을 쉬고 계시기만 한 선생님을 뵈오니 이제 떠나실 준비를 하고 계시는구나 했습니다. 역사의 짐을 온통 끌어안고 살아오신 선생님이 조금 있으면 우리 곁을 떠나시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나라 역사가 그간 선생님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워드렸구나 하는 아픔이 가슴을 저몄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리영희 선생님이 계셨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그 짐을 어떻게 지고 나서야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권력이 우리를 어떻게 세뇌해오고 어떻게 눈을 가려왔으며 무엇을 동원해서 우리의 귀를 막아왔는지 깨우쳐주셨습니다. 현실의 곳곳에 숨겨진 함정을 미리 꿰뚫어 알아보게 하셨고 장막 뒤에 누가 음흉하게 웃고 있는지 똑바로 보게 해주셨습니다.
그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든 깨우침이 지식인의 책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용기 역시 필요한 것임을 온 몸으로 증언하셨습니다. 누가 옥살이를 즐겨하겠습니까? 그러나 선생님은 그걸 예감하고도 해야 할 일이라면 뚜벅뚜벅 그 길로 걸어들어 가셨습니다. 역사란 묘한 것이어서, 선생님이 옥에 갇히면 선생님을 가둔 자들이 다름 아닌 죄인들이라는 것이 판명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선생님을 따라 용기를 배우는 이들이 늘어났습니다.
양심적인 언론인들을 비롯해 선생님을 따르는 각 분야의 후학들이 진실을 은폐하고 양심을 짓밟는 권력에 저항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저항에 지적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것은 결국 저항을 무력하게 만들고 만다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겼습니다. 글 한 줄 제대로 쓰기 위해 어떤 치열한 과정과 준비가 필요한지 일깨워주신 것은 우리 시대 전체의 시야를 다르게 만드신 힘이 되었습니다.
젊은이들도 그렇게 자라났습니다. 1970년 중반에 선생님의 글을 읽기 시작한 세대들은 비로소 '선생님'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상의 은사'라는 칭호는 모두가 공감하는 가운데 어느새 저절로 주어진 역사의 지표였습니다. 거기에는 선생님의 제자가 된 모든 세대의 감격과 감사 그리고 존경이 한없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리영희"라는 이름은 역사의 진실을 매장시키려는 모든 권력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자본의 우상을 허무는 우리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시대를 전환시키는 상식이 되어갔고 역사를 움켜쥐고 있다고 여기는 자들은 그런 상식으로 무장한 리영희 세대가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씨알 하나 땅에 심었는데 자라난 나무는 어느덧 울창한 숲을 이뤄내는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저들은 리영희라는 이름을 지우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도리어 리영희는 시대의 가슴에 빛나는 이름이 되어갔습니다. 저들은 리영희라는 존재가 이젠 역사의 유물이나 된 것처럼 취급하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리영희는 지금, 이곳에 뜨겁게 울리는 육성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바라시는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하고 여쭈면 선생님은 그러셨지요. "내 글이 더는 필요가 없는 세상"이라고. 한때 우리는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은 달라져갔고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렸으며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도 제법 괜찮아졌다고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엄연한 착각이었습니다.
권력은 여전히 거짓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보수언론은 우리 사회를 속이고 있습니다. 매일 진실을 가리는 세뇌작업을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대학은 젊은이들을 자기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품으로 만들기에 바쁩니다.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은 절망의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분단의 현실은 전쟁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습니다. 강대국의 비밀 거래와 흥정 속에서 이 나라 역사는 어디로 갈지 모르는 판국입니다. 무력으로 뭔가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평화의 미래를 망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것이 너무도 송구하고 마음 아플 따름입니다. 온몸을 던져 역사의 진실에 눈뜨게 하신 선생님의 제자들이 그 가르침에 따라 제대로 싸우지 못한 탓입니다. 우리의 힘이 부쳐 때로 건강도 좋지 않으신 선생님을 역사의 현장으로 이끌어 내어 소리 한번 외쳐달라고 무리하고 무례한 청을 드렸던 것도 돌아보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못난 제자들 야단 한번 크게 쳐주세요. 정신 번쩍 들게 말입니다. 이 정도 따위 가지고 뭘 그리 힘겹다고 엄살이냐고 매섭게 역사의 회초리를 들어주십시오. 오늘날의 교육원칙이 체벌금지라고 하지만 그런 체벌은 달게 받고 싶습니다. 아니 그건 체벌이 아니라 잠자고 있던 의식을 깨우고 마비되었던 양심을 치며 느슨해져 가던 의지를 다지게 하는 선생님의 애정어린 가르침인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립습니다. 때로는 소주, 때로는 막걸리잔 기울이며 살아온 지난 이야기로부터 오늘의 정세에 이르는 말씀을 듣던 시절이. 남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그 정겨운 표정과 우스갯소리도 잘 하시는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벌써 십여 년 전이 되었나요? 1996년 <한겨레>에서 나온 저의 책 <패권시대의 논리>(후에 <밀실의 제국>으로 개정판)에 서문을 써주시면서 "나는 본래 책 서문 안 써줘. 하지만 이 경우는" 하시고는 긴 글을 보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던지요. 주변에서 이런 경우는 없다며 부러워했을 때 저 혼자 횡재를 한 듯 한 기쁨에 찼었습니다.
"이 책은 오늘날 사회과학적 인식이 지리멸렬해져 버린 듯 한 우리의 피로해진 지적 풍토에 신선한 관점과 의미 있는 충격 그리고 활기찬 전환점을 마련해주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이 말씀은 사실 감히 제 책에 해당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 선생님의 저서에 언제나 어울리는 글이라고 믿습니다. 그 말씀을 고스란히 선생님에게 되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받을 것이 아니라 그건 선생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느새 피로해졌고, 지리멸렬하며 구태의연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선생님의 신선한 관점과 그 의미 있는 충격, 그리고 전환의 활기를 다시 느끼고 싶습니다. 기가 펄펄 살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명확한 논리와 사실의 엄격함이 하나로 엮여 역사에 대한 양심의 증언을 토해내신 선생님의 그 뜨거운 목소리가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 목소리가 울리는 자리마다, 전쟁의 북을 울리는 자들도 움찔하고 자기도 모르게 북을 치던 손을 놓으며 권력의 거짓을 제조하는 자들도 막무가내로 밀고나갈 의지를 잃고 눈치를 보는 현실이 만들어져가는 겁니다.
▲ 故 리영희 선생님. ⓒ프레시안(김하영) |
"이명박 정권은 파시즘으로 가고 있다"며 병석에서도 일갈하신 선생님. 선생님을 존경하며 그리워하고 따르는 이들이 아직도 무수합니다. 선생님은 돌아가시고 나서도 여전히 활동가가 되시는 까닭이 이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더는 피곤치 않은 활동가입니다. 육신은 이제 영면하시지만 선생님이 남기고 가신 의식의 자산은 우리 모두의 자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생명력을 얻어 발로 걷고 손을 뻗으며 소리를 내는 역사의 육신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살아계신 동안에도 고맙고, 돌아가신 이후에도 여전히 고맙습니다. 남기고 가신 것이 많습니다. 그 하나 하나가 우리 모두의 자랑이고 감사이며 힘입니다.
떠나시는 길이 우리에게는 아쉽고 슬프지만 그리움과 감사로 그 길 배웅해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을 이 시대에 알고 배우며 존경할 수 있음이 영광입니다.
리영희 선생님은 "뼈 마디마디로 진실의 자식"이었다는
고은 선생님의 추도시를 지금 막 읽었습니다.
그 진실의 자식은 우리에게는 진실의 아버지였습니다.
선생님, 우리 선생님. 리영희 선생님, 부디 편히 가십시오.
한없이 존경하고 사랑하며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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