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교수는 그간 지병인 간경화와 배에 물이 차는 증세로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에서 투병해 왔으며 5일 오전 12시 40분께 이 병원에서 별세했다.
이로써 한국 지성계는 반공 극우 이데올로기 속에서 진실을 밝히고 한국인 지식인과 청년을 새로운 시대로 이끈 '사상의 은사'를 잃었다. 리 교수는 스스로 한국 지식인, 지성인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고 침묵 속의 지식인들을 깨운 선구자였다.
▲ 리영희 교수ⓒ프레시안(김하영) |
전쟁 이후 리 교수는 기자가 됐다. 그는 1957년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로 시작해 1972년까지 <조선일보> 및 <합동통신> 외신부 부장을 지내다 해직될 때까지 '박정희-케네디 밀약' 등 수많은 특종을 썼다. 그러나 그의 기자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1964년에는 <조선일보> 기자로 있을 때 쓴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검토 중'이라는 기사가 반공법을 위반했다며 구속됐고 2심에서 선고유예를 받았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회사 안팎과 갈등을 일으키다 결국 1968년 <조선일보>에서 쫓겨났다. 이후 그는 <합동통신>에서 외신부장으로 있었으나 1971년 위수령에 항의하는 '64인 지식인 선언'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강제 해직됐다.
그 이후 1972년 한양대 교수로 임용됐지만 역시 해직과 복직을 거듭해야 했다. 1972년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1976년 제1차 교수재임용법에 의해 교수직에서 강제 해임됐다.
유신정권이 한창이던 이 기간에 리 교수는 반공·냉전·극우 논리에 메스를 들이대는 문제작 <전환시대의 논리>(1974년)를 썼다. 리 교수는 동아시아 정세를 분석한 이 책에서 중국의 부상과 한미 관계, 한일 관계의 실체를 밝혀냈고 특히 베트남 전쟁에 대한 시각을 뒤흔들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젊은 학생들과 지성인들은 이 책을 '지적 해방'으로 받아들였고 이른바 '전론 세대'를 구성하기도 했다.
<전환시대의 논리> 이후에도 리 교수는 줄곧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책을 내놨다. 1977년에는 사실 그대로의 중국을 다룬 <8억인과의 대화>과 한국 사회의 도그마를 파헤친 <우상과 이성>을 냈고 이 역시 <전환시대의 논리> 못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다. 그러나 리 교수는 이 책들로 인해 또다시 고초를 겪어야 했다. 리 교수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1977년 12월 반공법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 받았다.
리 교수는 1980년 1월 광주교도소에서 출소했으나 한양대학교에 돌아가기 까지는 4년 여의 시간이 걸렸다. 리 교수는 해직 4년 2개월 만인 1984년 7월 한양대학교에 다시 복직할 수 있었다. 1980년대에도 리 교수는 <분단을 넘어서>, <베트남전쟁 : 30년 베트남전쟁의 전개와 종결>, <역설의 변증 : 통일과 전후세계와 나'> 등의 책을 내놓았다.
1989년 4월에는 <한겨레> 창간 1주년 기념으로 북한 취재단의 방북을 기획했다는 이유로 안기부에 구속 기소됐다. 이로써 리 교수는 다시 6개월 여간 고초를 겪어야 했으나 정부의 탄압에 격앙된 독자들이 <한겨레>에 폭발적으로 성금을 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87년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부교수로 두 학기 동안 '평화와 투쟁(Peace and Conflict)'이라는 제목의 특별 강좌를 열어 '한민족 현대정치 운동사'를 강의했다. 1988년 <한겨레> 비상임이사 및 논설고문, 1993년 통일원 통일정책평가위원을 지냈다.
리 교수는 지난 2000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는 집필, 공개 발언 등을 자제해 왔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9년에는 "한국 사회가 파시즘 시대의 초기에 들어서 있다"며 현 정부를 이례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현대 인권사의 제4기'로 규정하면서 "비인간적이고 오로지 물질주의적, 인권이 존재하지 않고 인권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 파시즘의 시대 초기"라고 비판했다.
▲ 故 리영희 선생님 영정 사진. ⓒ프레시안(최형락) |
리 교수의 장례는 4일장으로 민주사회장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차려졌다. 유족은 부인 윤영자씨와 아들 건일·건석씨, 딸 미정씨가 있다. 장례위원장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임재경 초대 <한겨레> 부사장, 고은 시인이 맡기로 했으며 고광헌 <한겨레> 사장, 박우정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 등이 집행위원장을 맡는다.
영결식은 8일 오전 6시 30분에 진행되며 리 교수의 영현은 오전 10시 경기 수원시 연화장으로 옮겨져 화장된다. 리 선생의 장지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로 잠정 결정됐다.
▲ ⓒ프레시안(최형락) |
▲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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