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겼다
도랑물이 냇물이 되고
냇물이 큰 흘떼, 강물이 되듯
우리도 한번쯤 살아야 될 게 아니냐
그 눈물겨운 아우성으로
우리는 이겨야 한다
북을 때려라
시 <북을 때려라> 중 일부
강원도 탄광촌에서 진폐증으로 죽은 친구를 그리워하며 선술집에서 쓴 비나리(시)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자작시 '북을 때려라'를 무대 위에서 읊다가 이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평생 노동자로 살다간 친구가 그리워서였고, 그 친구가 살던 시대와 지금 역시 별다르게 변한 게 없는 한국 사회가 서글퍼서였다.
2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문학관 대강당에는 2000여 명의 관객들이 백기완 소장의 인생 이야기를 듣기위해 모였다. 노나메기재단설립추진위원회 등에서 주최한 '노래에 얽힌 백기완 인생이야기'는 백기완 소장 인생 칠십 칠년 인생에서 '주워' 들은 노래와 직접 지은 시에 관련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는 자리였다.
1933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1950년대에는 농민운동, 나무심기운동 등을, 1960년대엔 한일협정반대투쟁, 70년대에는 장준하 선생과 반 유신 투쟁을 주도했었다. 80년대엔 전두환 정권 밑에서 고문을 당하며 감옥살이도 했다. 1987년 대선 때는 민중후보로 출마까지 했었다. 한 마디로 인생 자체가 한국 현대사나 진배없다.
이날 참석한 김세균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한국 현대사 질곡의 한복판에서 혼신의 힘으로 살아온 사람이 백기완"이라며 "영원한 재야인이자 마음의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인생 속 노래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 백기완 소장이 '노래에 얽힌 백기완 인생이야기' 공연에서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
가난에, 그리고 힘없는 나라가 서글퍼 부른 '세 동무'
백기완 소장은 노래 '세 동무'에 얽힌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어요. 당시엔 어디나 그렇지만 우리 집도 찢어지게 가난했죠. 아 근데 동생 놈이 시험에서 1등을 하면 곡마단에 데려가서 공연도 보여주고 솜사탕도 사달라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나는 동생이 설마 1등을 하겠냐 싶어 건성으로 '알았다'고 했죠.
아 근데 이놈이 정말 1등을 했더군요. 어쩌겠어요. 곡마단에 데려가 달라고 달려오는 동생을 피해 멀리 달아났죠. 근데 동생 놈이 기어코 뒤쫓아 오는 거예요. 한참을 그렇게 도망치는데 멀리서 곡마단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 노랫소리가 어찌나 슬프던지…."
당시 곡마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세 동무'였다. 결국 백기완 소장은 어린 동생을 위해 곡마단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동생에게 '공짜' 구경을 시켜줬다. 백 소장은 "그렇게 구경을 시켜주며 한참 어깨를 으쓱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동생이 솜사탕을 파는 장사꾼을 봤다"며 "망할 솜사탕 장사꾼이 그때까지도 가지 않은 걸 보고 얼마나 속으로 욕을 했던지…"라고 회고했다.
동생의 반짝거리는 눈망울이 마음에 걸렸지만 돈이 없는 백 소장은 '집에서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동생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하지만 집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군수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유리그릇을 가져가려는 '왜놈' 경찰이 이를 막는 어머니를 두들겨 패고 있었다. 경찰이 가져가려던 그릇은 어린 동생의 조그마한 밥그릇이었다.
어머니의 강한 저항에도 '왜놈' 경찰은 어머니를 발로 차고 강제로 그릇을 가져갔다. 어머니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철이 없던 백 소장은 배가 고파 어머니에게 그릇이 없더라도 밥은 먹자고 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없이 눈물만 흘렸다. 쌀독에 쌀이 떨어진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안 백 소장은 하루 종일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때 울면서 불렀던 노래가 '세 동무'였다.
노동자로 살다 죽은 친구를 그리워하며 쓴 '북을 때려라'
▲ 백기완 소장. ⓒ노나메기재단설립추진위원회 |
그 소녀의 나이는 11살. 고향이 덕유산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버지가 총에 맞아 죽어 소녀 혼자 도망을 쳤다. 도망을 치던 날,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도토리묵으로 도시락을 싸주었으나 나중에 보니 그 도토리묵은 다 뭉개져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백 소장은 "집이 가난해 싸줄 게 없어, 다 뭉개질 걸 알면서도 결국 싸준 게 도토리묵"이라며 "무엇인가라도 해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울고 넘는 박달재'에도 도토리묵이 등장한다.
백 소장은 83년도에 자작한 '북을 때려라'에 담긴 일화도 설명했다. 백 소장은 젊은 시절 자신과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집안도 유복했기에 고시 공부를 준비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강원도 탄광촌에서 노동자로 일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자로서의 삶을 산 것.
백 소장은 "결국 그 친구는 탄광촌에서 일을 하다 진폐증으로 죽었다"며 "후일에 강원도 탄광촌을 찾아가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그 친구를 생각했다"며 "그러면서 쓴 시가 '북을 때려라'였다"고 설명했다. 백 소장은 "자신의 모든 걸 버리고 노동자로 살아간 그 친구의 삶은 진정한 노동자의 삶이었다"며 "그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그 친구가, 그리고 이 땅의 노동자들이 안타깝다"고 눈물을 적셨다.
이번 공연은 노나메기재단을 출범시키고자 준비됐다. 노나메기는 '너도 나도 일하고 너도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벗나래(세상)'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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