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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비선 가동해 '북한인권 괴문서' 국회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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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비선 가동해 '북한인권 괴문서' 국회 보고"

[인터뷰] 김형완 전 인권위 정책과장이 증언하는 '현병철 인권위'

국가인권위원회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아니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포털 사이트에서 '인권위'로 검색할 경우, '인권위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국민권익위원회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등의 질문이 나온다.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사태는 현병철 위원장이 취임하고 나서부터 예견된 일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현병철 임기 1년 4개월 동안 인권위 초기부터 기반을 다지고 왕성한 활동을 해온 인사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권위를 떠났다.

지난 8월에는 인권위 1세대의 마지막 인사인 김형완(50) 전 인권정책과장이 사표를 제출했다. '더 이상 인권위에서 할 일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현병철 위원장 체제 아래에서는 인권위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 그가 생각하는 인권위의 역할은 무엇일까.

"자기 검열에 빠진 개는 절대 짖지 못한다"

22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전 과장은 인권위의 역할을 '개 소리'에 비유했다.

▲ 김형완 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과장 ⓒ프레시안(허환주)

"언제나 인권위원회는 개입니다. 호랑이 세 마리가 어린 아이를 가운데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몽테스키외의 삼권 분립입니다. 이들 세 마리 호랑이의 견제와 감시로 어린아이는 보호가 됩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호랑이들끼리 담합을 하게 됩니다. '머리는 네가 먹고 몸통은 내가 먹고…'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국회가 대의기관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권력기관과 카르텔을 형성해 자신 역시 권력기관으로 전락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개를 한 마리 집어넣는 것은 그런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호랑이가 어린아이를 잡아먹으려고 할 때, 개가 짖으면 사람들이 부지깽이 등을 들고 달려옵니다. 개가 짖지 않으면 사람들은 생업에 종사합니다. 물론 개가 짖다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가 호랑이 눈치를 보면서 아이가 위험에 빠져도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에게 잡혀 먹습니다.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 전 과장은 "개가 자기검열에 빠져 사람들이 싫어할까, 사회적 논란을 불러올까, 아니면 대통령에게 잡아먹힐까, 사람들이 미친개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등의 생각을 하면 이 개는 절대 짖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김 전 과장이 생각하기에 현 인권위원회는 '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국민의 세금을 받아 운영되는 인권위가 국민을 위한 그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그만 나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대중, 노무현 때는 치열하게 정권과 싸웠다"

나이 마흔에 독일 유학길에 오른 김 전 과장은 인권위 초대 위원장인 김창국 변호사의 연락을 받고 8개월간의 짧은 유학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복귀했다. 인권위에서 일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김 전 과장은 "뜻 깊은 일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러 고민이 있었지만 결단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쳤다. 당시 인권위의 역할은 어땠을까. 김 전 과장은 "지금의 인권위보다 더욱 치열하게 정부와 싸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인권위가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김 전 과장은 "한미 FTA, 이라크 파병, 공권력에 의한 농민 사망 등에서 인권위는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했다"며 "이로 인해 정부와는 늘 마찰을 빚어왔다"고 밝혔다. 그는 "노무현 시절에는 대통령실에서 인권위원장이 대통령 재가 없이 해외 출장을 갔다고 언론플레이까지 벌일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 전 과장은 "현재 안팎에서 좌로 편향된 인권위를 정상화시키겠다는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만약 인권위가 좌편향적인 역할을 해왔다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좌파 정권들과 코드가 맞아 콧노래를 부르며 운영돼 왔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전 과장은 "그간 인권위는 의제를 다룰 때, 이념 전쟁으로 다룬 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자유권, 그 중에서도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았다"며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를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이나 세력과의 싸움에서 갈등이 있었으면 있었지 다른 건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 전 과장은 "반민주, 반인권 세력들은 그들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권위의 역할을 두고 색깔 씌우기에 급급하다"며 "그렇게 해야만 전두환도, 이명박 대통령도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안건을 제출하면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던 현 위원장"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인권위는 사실상 제 역할을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김형완 전 과장이 사표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현 위원장 취임 후 사표를 제출할 때까지 내부에서 숱하게 싸웠다고 한다.

"인권위원장이 취임한 후, 나를 불렀습니다. 자기는 인권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심지어 뉴스도 안 보고 육십 평생을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취임 후 KBS 뉴스도 보고 동아일보도 구독하게 됐다며 앞으로 많이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 민감한 현안을 두고 현 위원장은 저와 많이 부딪쳤습니다. 안건을 회의에 상정하려고만 하면 막기 급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답답한 나는 왜 위원장이 독박을 쓰려 하느냐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권 현안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설득을 했지만 현 위원장은 이러한 의견을 묵살했습니다. 무조건 안 된다고만 했습니다."

김 전 과장은 "그러다 일이 터졌다"며 올 5월, 한국을 방문한 프랑크 라 뤼 'UN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현병철 위원장과 면담을 한 내용이 언론에 유출됐는데 그것을 흘린 사람으로 나를 지목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라 뤼 보고관을 만난 현 위원장은 북한 인권에도 신경을 써달라고 요구했고 라 뤼 보고관은 "나의 역할이 아니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 사실은 몇몇 언론에 알려졌고 인권위원장이 유엔 조사관의 역할도 제대로 모른다는 구설수에 휘말렸었다.

김 전 과장은 "면담에서 현 위원장이 라 뤼 보고관에게 북한 인권 관련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걸 듣고 '북한 인권 관련 특별보고관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러지 말라'고 제지를 했지만 현 위원장은 그걸 듣지 않고 상당량의 북한 인권 관련 자료를 주면서 그런 발언을 했다"며 "내가 알기론 면담 내용은 라 뤼 보고관 측근에게서 흘러나왔는데, 내가 흘린 줄 알고 나에 대한 내부 감사까지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그 후 김 전 과장은 돌아올 수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김 전 과장이 제출하는 안건은 현 위원장이 일체 결제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든 안건이 보류 상태가 됐다. 현 위원장은 자신의 부하인 팀장이 같은 안건을 올리면 그제서야 결제를 해주는 식이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김 전 과장. ⓒ프레시안(허환주)

"실무자도 모르는 괴문서를 국회에 보고하기도…"

현 위원장의 파행적 행보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일례로 지난 2월에는 북한 인권법안 관련 안건을 국회에 보고했다. 주목할 부분은 인권위 내부에서는 이를 알고 있던 사람은 공식적으로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주무부서인 인권정책과 과장인 김 전 과장도 몰랐다고 한다.

김 전 과장은 "이런 사실은 국장도 몰랐다. 그런 문건이 작성 된지도 몰랐다"며 "그런데 위원장이 국회에 보고한 문건에는 국가인권위원회라는 명칭이 표기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인권법안 안건은 전원위원회에서도 추후 재상정하기로 하고 넘어갔다"며 "이런 상황에서 위원장은 실무자를 통해서 만든 것도 아닌 비선을 통해 만든 일종의 괴문서를, 독단적으로 국회에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과장은 "그래놓고 문제가 되니 시간이 촉박해서 그랬다며 죄송하다고 한다"며 "그렇게 모든 일을 죄송하다고 하며 넘어가는 게 현 위원장"이라고 비판했다. 김 전 과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위원회 지도부가 권력과의 갈등을 불사하면서 독립적 지위를 지키려고 애쓴 반면, 현 체재는 그러기는커녕 권력에 알아서 눈치를 보고 있다"며 "견제를 못하는 수준을 넘어서 잘못하는 것에 대해 침묵, 방조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현 위원장은 해외에서 인권위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서는 매우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전 과장은 라 뤼 보고관과의 면담을 예로 들며 "당시 라 뤼 보고관은 인권위 상임위원 및 비상임위원들과 현병철 위원장을 함께 만나기를 원했다"며 "하지만 현 위원장이 이를 거부했기에 둘이서만 만났다"고 말했다.

실제 이로 인해 상임위원 등은 현 위원장을 만난 다음날에서야 따로 라 뤼 보고관과 면담을 가졌다. 김 전 과장은 현병철 위원장이 그렇게 한 이유를 두고 "라 뤼 보고관이 현 위원장을 만나는 일은 공식 업무가 되어 여기서 나온 이야기들은 모두 보고서에 기록이 되기 때문"이라며 "만약 이 자리에서 인권위원들이 인권위의 문제를 언급할 경우 보고서에 기재되는 걸 우려한 현 위원장이 쓴 소리를 할 인권위원들을 배석시키는 걸 꺼려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러한 현 위원장의 행태를 견디다 못해 사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현재 김형완 전 과장은 인권위 10년 역사를 정리하는 백서를 준비 중이다. 또한 인권 관련 정책적인 부분을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도 계획 중이다. 짖지 못하는 개가 된 인권위의 역할을 일정부분 해야겠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인권위가 본연의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지속되는 한 인권위가 다시 '짖는 개'로 돌아오기는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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