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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대물>, 어느새 사라진 '결정적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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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대물>, 어느새 사라진 '결정적 질문'

[프덕프덕] '정치 시트콤'과 '정치 드라마'의 차이는?

SBS 드라마 <대물>은 오종록 PD와 황은경 작가의 교체를 겪으며 급격히 흔들렸다. 지난주 방송된 <대물> 5,6회는 4회까지 이어온 탄탄한 스토리와 구성이 크게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설령 제작진 교체가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더라도 4회와 5,6회는 그 전과 질적으로 크게 달라졌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어리숙하지만 분명한 소신과 어디서든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캐릭터였던 서혜림(고현정)은 하도야(권상우)에게 기대는 나약한 여인이 되었고 그의 첫 선거는 "정책, 공약에 따른 선거를 하고 싶다"는 서혜림의 대사와 달리 온갖 우연적인 사건에 의해 치러지게 됐다.

상대편 후보의 선거 캠페인에 동원된 아이돌 그룹이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뽀로롱 언니'를 맡았던 서혜림과의 인연으로 자발적으로 선거 운동에 동참한다거나, 이들의 동참만으로 지지율이 크게 뛴다는 등의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이 계속 이어졌다. 선거 운동 마지막 날의 납치를 당하고 폭우 속의 연설에 유권자들이 스스로 우산을 내리는 것도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병원에서 깨어난 서혜림의 첫 대사가 "유세장은요?"인 것은 박근혜 의원의 "대전은요?"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 SBS <대물> 한 장면. 이 장면에서 <대물>은 현재 활동하는 아이돌 '레인보우'를 출연시키면서 이름과 춤도 그대로 내보냈다. 특히 상의를 걷어올리는 동작으로 '배꼽춤'이라 불리는 이 춤은 선정성 지적에 SBS <인기가요>에서 방송 불가를 받은 춤이라 더욱 논란이 됐다 ⓒSBS

'정치 드라마'를 '정치 시트콤'으로 만든 이 모든 설정보다 더 크게 달라진 주요한 차이가 있다. 4회 이전의 <대물>과 그 이후의 <대물>간 가장 큰 차이는 정치를 바라보는 드라마의 시선 차이다. 4회 이전에서 <대물>은 유권자들의 현실과 정치인 간의 괴리, 이로 인해 시민들이 느끼는 억울함, 답답함에 초점을 맞췄다. 서혜림 자체가 정치의 무능함으로 인해 남편을 잃은 과부이고, 모기에 뜯기는 주민들의 현실을 이해하는 대변인으로 나온다. 정치인들은 이를 이해하기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는 모순적인 존재다. 서혜림은 자신의 직관적인 판단력과 정의감으로 유권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인, 검사 등과 싸우고 현실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5회 이후 <대물>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권력게임의 논리로 정치를 바라본다. 고도의 '권력 게임' 속에서 금력도 정치권력도 가진 것 없는 서혜림이 승리할 수 있는 계기는 우연한 사건,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구조에 따른 천운 외에는 없다. 물론 현실감이 떨어지게 하고 드라마의 구조를 느슨하게 한다. 4회까지의 서혜림이 외치는 '곧은 소리'가 줬던 카타르시스 찾아보기 어렵다. 6회 마지막에 고현정 씨의 탁월한 연기로 무마된 '폭우 속 연설' 정도다.

물론 정치권 자체는 5, 6회에서 더욱 악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감은 떨어지고 오히려 희화화됐다. 정치인들은 개인적 이득을 위해 검사를 살해하기를 마다하지 않고 선거 캠페인을 총괄하는 사무장은 도박으로 서혜림의 선거자금을 모두 탕진한다. 이 내용을 관통하는 질문은 '누가 유권자를 대변할 수 있느냐'가 아닌 '누가 착한 사람이냐'는 것 외에는 없다. '민주주의'와 '정치'는 사라졌다. 이 때문에 드라마는 아예 현실을 떠나 만화로 돌아간 느낌도 든다.
▲ SBS <대물>에서 서혜림(고현정)의 빗 속 연설로 화제가 된 장면. <대물>은 제작진 교체를 겪으며 '누가 유권자를 대변하느냐'는 질문을 잃어버렸다. ⓒSBS

SBS <대물>에 시선이 모이는 것은 높은 시청률 뿐 아니라 이 드라마가 만들어낸 독특한 위치 때문이다. <대물>은 분명 현 정부와 정치에 갑갑증을 느끼는 대중의 심리를 정확하게 꼬집어내 드라마 초반부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간 '사랑-결혼-불륜-이혼'을 주된 소재로 삼아온 이제까지의 한국 드라마와 차별성도 분명했다. '상업방송'인 SBS에서 이렇게 시사적인 드라마를 낸다는 것도 이슈였다.

그러나 인기와 동시에 정치권의 반발과 각종 정치적 해석에 휩싸였고 작가와 PD 등 제작진이 연달아 하차했다. 드라마 제작진은 '외압은 없었다'고 강경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분명 정치권의 시각에서 보기에 4회 이전의 드라마보다 5회 이후의 드라마가 더 보기 편한 드라마가 됐다. '바른 정치', '서민을 대변하는 대통령'이라는 이상이 제대로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럽게 현 정치권을 겨냥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정치 혐오증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소통과 대안을 꿈꾸며 이야기할 것인가. 이제 제작진이 완전히 바뀐 <대물>이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이다. 또한 이는 정권 중후반기를 보는 유권자들이 받아든 현실의 선택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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