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극을 넘어서다
미국에서는 <웨스트윙>이나 <커맨더 인 치프>처럼 대통령을 직접 다루는 드라마가 오래전부터 인기를 끌어왔지만 그간 한국에서 대통령은 <제5공화국>처럼 역사드라마의 틀 내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폭력배의 사투리가 바뀐다'는 풍문 아닌 풍문처럼 정치권력의 영향이 과도했던 방송 현실의 탓인지도 모른다.
그간의 정치역사 드라마와 이들 드라마가 가장 다른 것은 '허구'의 내용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 드라마 <대물>은 동명의 만화가 원작이고 <프레지던트>는 일본의 가와구치 가이지의 만화 <이글>을 원작으로 한다. 만화 <이글>은 미국의 독특한 선거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내 각광을 받았고 만화 <대물>은 화려한 스케일과 극적 구성으로 인기를 끌었다.
가상인물을 내세운 대통령 드라마가 가진 강점은 분명하다. 국민들이 꿈꾸는 대통령, 이상적인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들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정치 혐오'로 요약될 정도로 한국의 정치에 신물난 시청자들에게 대리 만족,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대물>이 첫 여자 대통령을, <프레지던트>가 '한국판 오바마'를 표방하는 것 역시 이를 노리고 있는 셈.
SBS <대물>은 아나운서 출신 평범한 중산층 주부였던 서혜림(고현정)이 종군기자였던 남편(김태우)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려다 우연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3년 후 대권을 잡는다는 내용이다. 또 최수종이 주연을 맡는 KBS <프레지던트>는 유신시절 운동권으로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 후보 장일준(최수종)이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대통령 출사표를 던진다는 내용으로 "치열한 두뇌싸움과 아찔한 멜로"를 드라마 컨셉으로 내세운다.
▲ SBS 드라마 <대물> ⓒSBS |
대통령 드라마의 카타르시스
시청자들은 '대통령 드라마'에 왜 호응하는 것일까. 정치 드라마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두가지 정도다. 고도의 전략 싸움 등 정치인 간의 권모술수가 보여주는 긴장감 등 극 자체가 갖는 갈등구조의 매력이다. 여느 '막장' 드라마 못지 않은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
▲ KBS 수목드라마 <프레지던트>의 주인공을 맡게 될 최수종 씨. ⓒ뉴시스 |
<대물>에서 서혜림이 외치는 대사, "우린 대체 누굴 믿고 살아야 합니까! 내 아이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등이 시청자들의 각광을 받았다. 드라마 초반부에 나타나는 재벌과 정치, 언론권력의 3각 유착관계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공분을 일으키게 하고 "들판의 쥐새끼" 발언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레임덕의 증거?
이는 현실에서의 정치인 리더십에 대한 불만의 표출일 수도 있다. <시사인> 고재열 기자는 트위터(@dogsul)에 "현직 대통령에게는 차기 대통령 이야기가 회자되는 것 자체가 레임덕의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현실 정치를 소재로 하는 만큼 오해의 소지도 많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대물>을 두고 박근혜, 한명숙, 박영선 등의 정치인을 거론되고 있고, '민우당'이라는 명칭도 민주당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작가 교체를 두고도 말이 많았다. 아직 방영도 안 된 <프레지던트>는 주인공의 '인권변호사' 프로필을 두고도 벌써부터 말들이 많다. 드라마 스스로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이유다.
아직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알 수 없으나, 초기에 쏟아지는 관심만 보면 미처 가지지 못한 진실한 대변자에 대한 갈망이라는 사회의 코드는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2010년 가을에 찾아온 대통령 드라마들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소비되는 지도 흥미로운 볼거리가 될 전망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