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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왜?" 기자를 '취재'하는 시민편집인, 한국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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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왜?" 기자를 '취재'하는 시민편집인, 한국엔 없다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뉴욕타임즈가 시민편집인을 따로 두는 이유

세계 정상의 신문 <뉴욕타임즈>가 지난 8월 새 시민편집인(public editor)을 임명했다. 기사 모니터링으로 신문의 질을 개선하는 옴부즈맨을 계속 존속시키기로 했다는 이야기다. <뉴욕타임즈>는 옴부즈맨을 두지 않아도 우수한 기자들이 스스로 사실을 엄격하게 확인하고 균형있는 기사를 작성하는 세계 제일의 신문으로 인정 받아왔다. 그런데 2003년 제이슨 블레어라는 젊은 기자가 허위보도를 하고 다른 신문 기사를 표절한 사건이 터진 이후 신뢰에 큰 상처를 입었다. 신문편집인이 교체되고 발행인이 독자에게 사과해야 하는 큰 사건이었다. 그 후 <뉴욕타임즈>는 신문의 언론윤리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시민편집인을 두기로 결정했다. 빌 켈리 편집인이 신임 신문편집인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밝힌 대로 세계 최고 수준의 언론윤리를 준수하는 신문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새로 임명된 아더 브리스베인(Arthur Brisbane)은 7년 째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뉴욕타임즈>의 제4기 시민편집인이다.

<뉴욕타임즈>와는 대조적으로 언론윤리라는 말을 꺼내기가 부끄러운 정도로 신뢰가 떨어진 보수 신문들을 포함해서 한국 신문들은 시민편집인을 두고 있지 않다. 언론윤리를 세계에서 가장 잘 지키고 있다는 신문은 더 잘 해보겠다고 시민편집인을 계속 두고 있는데 언론윤리가 엉망인 신문은 그런 감시기구를 전혀 두지 않는 대조적인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 신문의 신뢰가 해가 거듭할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더 이상 자포자기하고 방관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경영 상태가 비교적 낫다는 보수 우익 신문들까지도 당장 돈만 많이 들고 이익은 생기지 않는 시민편집인 제도를 도입할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신문의 질을 개선하고 신뢰를 높일 이 제도를 도입하는데 독자가 앞장 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신문을 감시하고 좋은 신문을 만드는 데는 독자의 책임도 무겁다고 본다.

왜 시민편집인 도입이 필요한가? 시민편집인이 신문의 언론윤리를 감시하고 신문의 신뢰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 신문의 위기는 경영의 위기에 앞서 신뢰의 위기가 더 심각하다. 그러므로 언론윤리를 도외시하고 신문을 권력과 광고주의 시녀로 전락한 신문을 독자가 나서서 감시하고 잘못을 시정하는 시민편집인을 두어야겠다는 것이다.

기자를 취재하는 '독자 대변인'

<뉴욕타임즈>가 운영하고 있는 신문편집인은 한국 신문에서 그 동안 사내외 필자를 통해 신문의 기사를 비평하고 독자의 불만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일을 해 온 옴부즈맨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그동안 옴부즈맨은 독자를 직접 대변하는 기능이 전혀 없었다. 시민편집인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다. 신문편집인의 명칭은 옴부즈맨, 독자의 대변인, 독자의 변호인, 중재자 또는 시민편집인(public editor) 등으로 호칭이 다르며 역할도 똑 같지는 않으나 독자의 불만을 근거로 활동한다는 점은 모두 같다.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가 운영하는 시민편집인은 독자의 대표 또는 독자의 대변인으로 독자가 신문의 기사에 대해 제시하는 불만이나 항의를 독자 편에서, 독자를 대변해서 신문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고 잘못을 시정하도록 권고하는 조정자 겸 변호인이다. 독자를 대변하고 신문의 과오 시정을 권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모든 독자와 시민이 알 수 있도록 <뉴욕타임즈> 지면에 공표한다. 독자가 무슨 기사로 신문에 불만을 제기했고 그 불평에 대해서 해당 기사의 필자(기자)는 어떻게 해명하는지, 시민편집인의 권고에 대해서 신문의 편집인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한 달에 두세 번 시민편집인 칼럼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독자에게 알린다.

문제된 기사의 당사자에게 취재 경위, 기사로 채택된 배경을 확인하고 중요한 기사인 경우 사내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기사화 됐는지 까지도 독자에게 지면으로 알린다. 그러려면 시민편집인이 기자를 상대로 '취재'하는 일이 불가피해 진다. '취재 대상'이 되는 기자로서는 불편한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시민편집인과 기자 사이에 긴장이 흐를 수밖에 없다. 기자는 시민편집인을 자연히 꺼리게 된다. 초대 시민편집인 다니엘 오크렌트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는 것처럼 보도해서 부시가 전쟁을 일으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 주디트 밀러(Judith Miller) 기자를 자기 칼럼에 고발한 일도 있다. 오크렌트는 대량살상무기에 관해서 불확실한 기사를 썼다고 문제를 제기한 독자를 대신해서 밀러 기자에게 전화를 걸고 문제 기사의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밀러는 답변을 회피하고 나중에는 오크렌트의 전화까지 받지 않기에 이르자 오크렌트는 이러한 사실을 시민편집인 칼럼에 상세히 '고발'해서 밀러가 여론의 지탄을 받게 만들었었다.

그런 일이 겹치면서 초대 시민편집인 다니엘 오크렌트에 대해서는 편집국의 저항이 있었다. 그의 후임자 바이런 컬레임(Byron Calame)도 비슷했다. 지난 6월 3년 임기를 마친 제3대 시민편집인 클라크 호이트(Clark Hoyt)는 비교적 원만하다는 평을 받았으나 그 역시 고별인사를 하기 위해 한 기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상대가 본능적으로 "내가 또 무얼 잘못했나요?"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호이트는 고별 칼럼에서 회고했다. 새로 취임한 브리스브레인도 취임 인사차 편집국을 한 바퀴 도는데 한 기자가 "이 자리를 원한 이유가 무업니까?"라고 항의조로 묻더라고 그의 첫 칼럼에서 소개했다. 시민편집인 자리는 그 만큼 어려운 자리이다.

시민편집인, 한국에는 한 명도 없다

신문사로서는 이러한 자리를 맡을만한 경륜과 인품을 가진 원숙한 언론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또 이 제도를 유지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보조 인력도 필요하다. 시민편집인은 보수만 신문사에서 받을 뿐 신문사로부터 어떤 간섭도 받지 않는다. 신문사로부터 완전히 독립돼야 그의 비판이 독자의 신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사는 시민편집인에게 독자가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기자 접근을 허용하지만 시민편집인의 판단이나 칼럼 내용에 간섭할 권리가 전혀 없다. 물론 시민편집인도 독자를 대변해서 신문사 모든 사람을 만날 권리가 있고 필요한 권고를 할 수는 있지만 자기 결정을 신문에 강요할 권리는 없다.

따라서 신문사가 사내 저항이 있고 부담만 무거우면서 당장 이익은 없는 시민편집인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오로지 언론윤리의 수준을 높여 신문의 질을 개선하고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숭고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이러한 시민편집인을 두고 있는 신문과 방송이 100개 정도 뿐이다. 미국에는 34개의 신문과 4개의 방송이 시민편집인을 두고 있다. 한국에는 유감스럽게도 독자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이런 시민편집인을 두고 있는 언론기관이 하나도 없다. 우리 언론의 현주소이다. 한국 언론의 신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빨리 시민편집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신뢰도 바닥' 한국 신문, 행동하는 독자가 필요하다

문제는 독자의 적극적인 신문 비판 참여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독자는 개인적인 불평은 많이 하지만 기사나 편집 방향에 대해서 신문에 직접 의견을 글로 제시하는 일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독자의 불만을 묵살해 온 한국 신문의 좋지 않은 관행에 1차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지만 독자도 미리 효과도 없는데 불만을 표시해서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고 자포자기 하는 습관이 없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나 신문의 부정적인 태도만 탓할 게 아니라 신문이 독자의 불만을 목살 할 수 없도록 독자위원회를 조직해서라도 신문에 압력을 가해서 독자의의견이 신문에 반영되도록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신문이 나아지고 신문의 무책임한 보도를 견제할 수 있다. 독자가 행동하면 신문은 상업적인 고려에서라도 독자의 정당한 요구를 언제까지 묵살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한국에 시민편집인 제도를 도입해서 땅에 떨어진 한국 신문의 신뢰도를 세계 수준으로 끌여 올리는데 독자가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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