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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이 김구라에게서 '기왕지사' 배워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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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이 김구라에게서 '기왕지사' 배워야 할 것

[프덕프덕] 쉽지 않았던 추석, 쉽게 말하는 '가카'

기왕(旣往). 이미 지나간, 벌써 생겨난. 생존과 적응을 강조하는 'MB식 실용주의'를 축약. 요새 가카께서 새로 미는 유행어. "기왕에 된 거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 등으로 쓰임. 영어로는 'already'로 번역되나 사람에 따라 "I'm sorry"로도 쓸 수 있음.

가카께서는 억울하실 법하다. 위로에 서툴다는 게, 본인은 좀 민망할지언정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로에 서툴다. 특히 큰 불행에 처한 사람에게 위로란 더욱 어렵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지 않나.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지 않느냐.

기왕에 대통령 되신 가카, 추석 연휴 수해를 입은 다세대 주택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 수재민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을 편안하게 먹어요. 기왕에 된 거니까. 편안하게." 그는 수재민이 "편안하게 먹을 수가 있어야죠"라고 답하자 "사람이 살아야지"라고도 말했다.
ⓒKBS

말씀대로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생각해보자. 짐작컨대 아마 가카께서는 이 말에 사람들이 분개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혹은 알더라도 왜들 그러는지 모르실 것이다. 왜냐?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카께서 겪는 '설화'에는 두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마사지' 없는 '생방'일 때 터진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서민을 직접 대하는 현장방문 때 나온다는 점이다.

"내가 노점상 할 땐 '끽' 소리도 못했어" 라는 말로 유명해진 YTN <돌발영상> 편이 그랬다. 그는 상인들에게 "내가 옛날 젊어 재래시장 노점상 할 때에 비하면 세상 좋아졌잖아"라고 하고 "너무 어렵다"는 슈퍼 주인의 말을 끊고 수행원들에게 "이것 좀 사먹어라, 이 뻥튀기"라고 외쳤다. 시민들을 더욱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이런 말들이 그의 솔직한 면모를 드러낸다는 점이었다.

이번 '기왕지사' 발언 역시 그렇다. 이번 추석 참 힘들었다. 채소값이 하루가 다르게 뛰어 차례상에 푸른 나물 하나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배추 한 포기가 5000원, 대파 한단 4000원, 무 한 개에 3000원이 넘어섰다. 이것도 최소치, 크고 괜찮은 채소를 구하려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뛴다. 그에 더해 추석 전날부터 서울 경기 지역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차례 음식을 준비하던 가족들이 부엌에 들어온 물을 퍼내야했고 고향으로 내려가던 사람들은 침수 소식에 허겁지겁 서울로 돌아왔다.

이 대통령의 "기왕 이렇게 된 거"라는 말에 시민들이 화를 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수재민 입장에서는 명절에 닥친 수해도 서럽고 당장 밥은 어떻게 먹을지, 잠은 어디서 잘지 걱정도 태산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충고는 가볍고 쉽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말에는 수해 피해를 입은 서민에 대한 고민이 없고 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다.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대책을 세워야할 책임감도 느낄 수 없다.

이래서야 추석 연휴 첫날 가카께서 KBS <아침 마당>에 출연해 보인 모습이 무색하지 않은가.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쏟았더랬다. "너무 일찍 돌아가셨어요. 내가 약속을 했어요. 새 옷을 한 번 사드린다고 약속을 했는데 그걸 지킬 기회가 없어 늘 가슴이 아팠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에게 "기왕 이렇게 된거 마음을 편하게 먹으시라"라고 하지 않는다. 따져보면 맞는 말이지만 너무 쉬워서 그렇다. 이 훈훈한 아침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사람 사는 이야기, 현실에서는 또다시 깨졌다.

시민들과 말 나누기, 그렇게 어려우시다면, 이번 추석때 화제가 된 MBC <라디오스타 슈퍼쇼>를 참고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이 방송에서 김구라는 도박 파문에 휩싸인 신정환을 향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너의 잘못을 다 밝히고 조사 받을 것 받으라"고 진심어린 공개 충고를 했다. 지난 방송분에서 신정환을 혹독하게 지워냈던 제작진은 이렇게 진심을 전했다. 그에 대한 깊은 고민과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MB에게서도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듣는 건 아무래도 어려울까?

하나 더, 덧붙일게 있다. 이 대통령의 아침 프로 눈물은 열심히 보도하던 신문, 방송들, 이 대통령의 '기왕 이렇게 된 거'라는 말은 묵묵부답 조용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에 하루가 멀다 하고 '막말'과 '경박한 언사'를 비난하던 그 목소리들 참 조용하다. 기왕 그렇게 말한 거, 굳이 쓸 거 있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어이없어 실소만 나오는 일들을 진지하게 받아쳐야 할 때 우리는 홍길동이 됩니다. 웃긴 걸 웃기다 말하지 못하고 '개념 없음'에 '즐'이라고 외치지 못하는 시대, '프덕프덕'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쓰는 '풍자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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