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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절벽 지방하천…"5m 수직 제방, 생명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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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절벽 지방하천…"5m 수직 제방, 생명 위협"

[현장] 여주 지방하천 정비현장…"하수구인가 하천인가"

"자칫 발이라도 헛디딜까봐 무섭지. 트랙터 타고 가다보면 생명의 위협까지 느낄 지경이야."

경기도 여주군 가업리를 흐르는 '굿절천'. 8일 오전, 이 마을 이장 김영종 씨가 깎아지른 듯 높이 쌓은 굿절천의 제방을 가리켰다. 폭 2m의 실개천에 지나지 않는 이 하천의 제방 높이만 무려 5m. 굿절천은 여주군 소양천과 만나는 남한강의 지류로, 소하천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2007년 수직에 가까운 콘크리트 제방을 쌓았다. 굽이굽이 흐르던 물줄기도 직선으로 곧게 폈다.

주변 농경지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지만, 아찔한 높이의 제방으로 오히려 지역 주민의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수준이다. 김 씨는 "비가 많이 오더라도 3m면 충분할 텐데, 왜 굳이 나랏돈을 들여 이렇게 높은 제방을 쌓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수해상습지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높이 3m, 폭 1.5m의 제방을 쌓은 여주군 간매천의 모습. ⓒ프레시안(선명수)

여주군 강천면 간매리에 위치한 간매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높이 3m, 폭 1.5m의 제방이 좁은 하천의 물줄기를 마치 성벽처럼 에워쌌다. 역시 콘크리트를 발라 만든 어도에는 물고기는커녕 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총 공사비 107억 원에 공사 기간만 2년. '수해상습지 개선사업'의 일환이라지만, 정작 지역 주민들은 3m 높이의 제방을 쌓을만큼 홍수 피해가 없었다고 말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제방 위를 지나던 간매리 주민 김종기(71) 씨는 "70년 평생을 간매리에 살았지만, 1985년 충주댐 생기고 나서부턴 마을에 큰 물 든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예전에는 개울서 고기도 잡고, 수영도 많이 했는데, 지금 저렇게 높게 쌓아놨으니 물 근처엔 가지도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 거대한 콘크리트 제방이 마치 성벽처럼 좁은 하천을 둘러쌌다.. 양 팔을 벌리고 선 사진 속 사람이 제방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프레시안(선명수)
▲ 간매천 하류에 조성된 콘크리트 어도. 물고기는커녕, 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공사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됐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프레시안(선명수)

콘크리트에 갇힌 지방하천…"물 빼는 고속도로로 전락"

2007년 '생태하천 만들기 10년 계획'을 수립한 정부는 수시로 '자연형 하천 복원', '생태하천 복원'을 말하지만, 농촌 마을을 유유히 흐르던 자연하천의 모습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대신 지방하천 곳곳은 콘크리트 구조물 위주의 마구잡이식 정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당장 간매천의 경우만 봐도, 아직 정비가 진행되지 않은 상류 구간은 수초와 자갈, 모래가 남아있어 자연 그대로의 하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최근 정비를 마친 하류 구간은 수초는 고사하고 콘크리트 제방만이 하천을 에워싸는 등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홍수 피해를 막고 농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지만, 전문가들은 하천을 '물 빼는 통로'로 전락시킨 제방 위주의 대책이 오히려 더 큰 홍수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날 환경기자클럽 기자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본 김진홍 중앙대 교수(건설환경공학과)는 "제방을 높게 쌓고 물길을 직선화하면 하천의 유속이 빨라지면서 오히려 하류에 더 큰 홍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제방을 쌓는 방식이 아니라, 천변저류지를 조성해 홍수량을 유역 전체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지적했다.

▲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제방으로 둘러싸인 간매천 하류의 모습(왼쪽)과 자연 상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여주군 원심천 상류 구간의 모습. ⓒ프레시안(선명수)

'생태'라는 이름의 '인공'하천…"소양천, '생태하천'이 아니라 '공원하천'"

정작 하천에 콘크리트를 발라 제방을 쌓는 인공적인 하천 정비는 정부가 '자연형 하천 조성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에서도 진행되고 있었다. 경기도가 95억 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자전거길, 산책로, 목재데크, 소공원 등을 조성 중인 여주읍 소양천의 모습은 '제2의 청계천'을 예고하고 있었다.

더구나 소양천은 지난달 30일 4대강 사업과 연계해 추진되는 '물 순환형 수변도시 시범사업' 지구로 선정됐다. 건천화되거나 복개한 실개천에 4대강 사업으로 확보한 물을 흘려보내겠다는 것이 사업의 추진 목적이지만, 매년 수십억 원을 들여 인공적으로 물을 끌어오는 청계천 사업에 대한 논란이 식지 않은 터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관련 기사 : 4대강에 '청계천' 1개씩 만든다?)

▲ 목재데크, 산책로, 자전거도로 등의 조성 계획을 담은 '자연형 소양천 조성사업' 안내판. ⓒ프레시안(선명수)

김진홍 교수는 "인위적인 펌핑을 통해 강 본류의 물을 끌어다 대는 방식은 소양천이 스스로 물을 소통하는 능력을 죽이는 행위"라며 "전기의 힘으로 흘러가는 하천을 '자연형 하천'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또 "진정으로 하천 건천화를 막기 위해서는 하천 인근의 아스팔트 도로를 빗물을 흡수할 수 있는 투수층으로 바꾸고, 빗물 침투 시설을 만들어 비가 자연스럽게 땅 속으로 스며들 수 있게 해야한다"며 "스스로 흐를 수 없는 하천은 죽은 하천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소양천에 들어서는 각종 시설물에 대해서도 "조경에만 치우친 소양천의 모습은 '자연형 하천'이 아닌 청계천과 같은 '공원형 하천'에 오히려 더 가깝다"며 "과도한 인공 시설물은 하천 내 생태 서식지를 파괴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도 전문가도 "제방보단 저류지"…실상은 '콘크리트 범벅'
"제방 위주 홍수 대책은 하류에 더 큰 피해 불러"

'제방 축조 중심의 홍수 대책'에서 '홍수터 복원을 통한 유역 관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은 비단 4대강 사업 반대론자들만의 주장은 아니다. 그간 정부가 발표한 수해복구 및 하천관리 지침에도 보와 제방 등 구조물 위주의 치수 대책을 벗어나, 천변 저류지 등을 중심으로 한 홍수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담겨 있다.

먼저 소방방재청에서 펴낸 '2009년 수해복구 추진 지침'을 보면, "토지매입비가 공사비보다 적을 경우에는 토지를 매입해 자연 그대로의 하천을 유지"하며, "하도는 인위적인 직강화를 피하고", "홍수 시 하류지역 첨두홍수량이 저감될 수 있도록 자연 유수지 및 웅덩이 등을 보존"하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2004년 건설교통부 수자원정책과에서 발표한 '한국의 수해예방대책의 현황과 전망'이란 보고서에도 "'하천 제방'으로 홍수를 방어하던 것을 '유역 내에서 분산 방어'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를 "치수 사업의 획기적 전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구체적인 홍수 대책으로는 "상습 침수 지역의 주민 이주를 추진하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하도를 보전해 홍수 저류 공간을 확대하며, 하천 생태 공간을 보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 건설기술연구원 수자원연구부가 2008년 9월 한국수자원학회지 <물과 미래>에 발표한 논문 중 일부. ⓒ건설기술연구원

이러한 지적은 제4차 국토종합계획(2006~2020)에서도 나온다. "하천에서 분담하던 홍수량을 유역 전체가 부담토록 하는 체계, 즉 저류지·홍수조절지·방수로 등 유역 내 홍수방어시설을 확충하고 홍수량을 유역 내에서 분산 방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제4차 국토종합계획 수정계획 부문별 보고서)

좀더 직설적으로 제방 축조 위주의 하천 관리를 비판한 연구 보고서도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적정 하천 공간 확보 방안 연구'를 보면, "기존 제방 위주의 하천 개수 사업에 중점을 둔 소극적 방어로는 급증하는 홍수량을 감당하기에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라며 "근본적인 홍수 피해 경감을 위해 하천 공간을 복원시켜 유역 내 저류 기능을 확대함으로써 홍수량을 저감시키는 적극적인 방어 개념의 치수 계획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적정 하천공간 확보방안 연구>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다. 정부 스스로도 구조물 중심의 하천 관리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대다수의 지방 소하천들은 제방을 높이고 하천을 직강화하는 방식의 하천 정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당장 굿절천, 간매천 외에도 걸은천·원심천·금당천 등 여주군 일대의 소하천 여러 곳에서 제방 축조 위주의 하천 공사가 진행됐거나 진행 중이다.

여주환경운동연합 이항진 집행위원장은 "수해 상습지도 아닌 지역에 100억 원이 넘는 공사비를 투입해 주민들도 반기지 않는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분명한 예산 낭비"라며 "정부가 4대강 본류도 모자라 지방하천에서도 헛발질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홍수 피해가 주로 발생하는 지방하천·소하천의 정비가 4대강 본류 정비보다 우선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러한 주먹구구식 정비로는 '생태'도 '방재'도 모두 놓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경기도 건설본부 하천과 관계자는 "(하천을) 직선을 해서 물이 잘 소통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하천 개수의 목적"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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