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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에게 석면 철거 현장 대청소 요구?…'석면 불감증'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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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학부모에게 석면 철거 현장 대청소 요구?…'석면 불감증' 심각

서울 G초교, 학부모에게 '봉사' 요구…논란 일자 취소

일선 학교의 '석면 불감증'이 위험한 수준이다. 서울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가 석면이 함유된 천장 교체 작업 이후 학부모들에게 공사 현장 청소를 요청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를 뒤늦게 취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폐기물관리법'은 건축물과 시설물의 석면 함유량이 1%가 넘으면 반드시 노동부에 등록된 석면철거전문업체에 공사 및 뒷처리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법 규정이 이러한데도, 석면 먼지가 그대로 남아 흡입 위험이 있는 공사 현장 청소를 전문업체가 아닌 학부모에게 전가하려 했던 것.

G초교, '학교 재정' 이유로 학부모에게 '석면 공사 현장' 청소 요구

23일 서울 강서구 G초등학교의 학부모 및 학교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G초등학교는 지난 17일 학교 홈페이지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통해 '교실 냉난방 공사 후 봉사활동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공지사항을 발송했다. 이 공지사항에는 방학 기간 중 진행한 '천정형 냉난방 공사'가 24일로 마무리되니, 학부모들에게 25~26일 양일간 학교 대청소를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제는 방학 동안 이뤄진 냉난방 공사에 석면이 함유된 천정 텍스를 뜯어내고 비석면 자재로 교체하는 작업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실제 학교가 홈페이지에 내걸었던 공지사항에도 "이번 공사의 세부 공정은 본관 후관 각 교실의 기존 천정 석면 텍스 철거, 천정형 난방 설비 설치, 그리고 무석면 텍스로 천정 마감입니다"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석면 자재의 철거 및 처리를 노동부의 허가를 받은 철거전문업체가 담당하는 것은 물론, 고성능 필터가 장착된 진공청소기를 사용해 청소를 하고 이 과정에서 석면이 흩날리지 않도록 음압기를 가동하는 등 석면 처리 방침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 2007년 개정한 폐기물관리법 시행령을 봐도, 석면의 제거 작업에 사용된 바닥 비닐시트·방진마스크·작업복 역시 '폐석면'으로 분류해, 고밀도 내수성 재질의 포대에 2중으로 밀봉하게 하는 등 지정 폐기물로 처리토록 하고 있다.

▲ 지난 17일 서울 강서구 G초등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사항. 재정상의 이유로 학부모들에게 석면 철거 현장의 대청소를 요구한 이 공지가 논란이 되자, 학교 측은 19일 해당 글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프레시안

이렇듯 현행법이 석면의 철거 및 처리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을 정도로 석면의 비산 위험이 큰 상황에서, G초등학교는 전문업체가 아닌 학부모들에게 '봉사 활동'을 명목으로 석면 철거 현장의 대청소를 요구한 것이다. 이날 학교가 공지사항을 통해 밝힌 '준비물'에는 고무장갑과 먼지를 닦을 수 있는 도구만이 명시돼 있었다.

또 G초등학교는 "냉난방 시설 교체 사업으로 인한 각종 부대 시설의 이전 및 재설치로 인해 예상치 못한 재정이 필요한 상태라 전체적인 학교 청소 용역이 어려운 형편"이라며 학부모들의 '봉사 활동'을 요청하기도 했다.

G초등학교의 한 학부모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학교에는 분명 예비비 명목으로 청소용역비 역시 책정돼 있을 텐데, 예산 부담을 이유로 학부모에게 청소를 종용하는 것은 결국 학부모의 노역으로 돈을 아껴보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더구나 석면같은 위험 물질이 있는 공간을 마스크도 없이 고무장갑과 걸레만 가지고 청소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 물질로, 석면에 노출되면 10~50년의 긴 잠복기를 거쳐 폐암, 악성중피종, 석면진폐 등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수 있다.

학부모 민원 일자 공지사항 변경…'석면' 언급 사라져

특이한 것은 학교 측이 17일 게재한 공지사항이 19일 갑자기 홈페이지에서 삭제됐다는 점이다. 대신 학교는 '학교 냉난방 공사 후 청소 예정'이라는 제목의 새로운 공지사항을 다시 올렸다.

새로운 공지사항엔 '석면', '예상치 못한 재정 필요' 등 논란이 될 만한 언급이 모두 사라졌다. 대신 "24일과 25일에 공사업체에서 전체 대청소를 해주기로 약속했으나, 교실 구석구석까지 깨끗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25일 학부모들의 대청소를 재차 요청했다. 애초 25~26일 양일간으로 공지했던 학부모 대청소 날짜도 25일 하루로 줄었고, 26일에는 용역업체를 동원해 3차 청소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 학부모들의 민원이 일자 G초등학교가 원래의 공지사항을 삭제하고 대신 올린 2차 공지. '석면', '예산 부족' 등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삭제됐다. ⓒ프레시안

이에 대해 G초등학교의 한 학부모는 "19일 서울시교육청에 대청소에 관련한 민원 전화를 했더니, 2시간 만에 원래의 공지사항이 사라지고 새로운 공지가 올라왔다"며 "학교도 논란을 피하고 싶었는지 석면 등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삭제했지만, 위험한 현장을 청소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학부모는 이어 "24일 천정 공사가 끝나는데, 25일 학교 현장을 대청소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안전할 수 있겠나"라며 "아이 때문에 드러내놓고 학교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학부모 청소는 취소됐지만…일선 학교 '석면 불감증'

이 같은 사실이 학부모들과 일부 교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자, G초등학교는 23일 세 번째 공지사항을 올려 대청소 계획을 취소했다.

G초등학교 김모 교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학부모들께 청소 요청을 드리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고, 전문업체가 청소를 하면 더 깨끗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애초의 계획을 철회했다"며 애초의 대청소 계획을 취소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다만 석면에 관한 논란 때문에 학부모 대청소를 취소한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부분에 대해 염려하는 선생님들도 계셔서 (대청소 계획을) 취소한 것"이라며 관련 사실을 인정했다.

▲ 23일 G초등학교 홈페이지에 세 번째로 올라온 공지사항. 학부모 대청소 계획이 취소됐음을 밝히고 있다. ⓒ프레시안

일선 학교의 '석면 불감증'은 비단 G초등학교의 문제만은 아니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지난 7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입수한 '학교 석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 건물 10곳 중 8~9곳 정도가 1급 발암물질인 석면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천장 텍스 등의 건축 자재에 많이 사용된 석면이 관련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조치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 김춘진 의원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동안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유치원, 특수학교 1만9815곳 중 석면 검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학교가 85.7%(1만6982곳)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에는 서울 서초구 소재의 한 고등학교에서 석면 폐기물에 대한 안전 규정을 어긴 채 교실 천장의 석면 해체 공사를 진행해 논란이 인 바 있다.

당시 이 고등학교가 석면 해체 작업 때 사용한 작업복·방진마스크 등 석면 폐기물을 고밀도 내수성 재질의 포대에 2중 포장을 하지 않는 등 폐기물 관련 규정을 어겨 환경단체로부터 거센 비판을 산 점에 비춰본다면, 이번 G초등학교의 학부모 대청소 방침은 석면에 대한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석면 해체 및 관리에 관한 엄격한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철거전문업체도 아닌 학부모들에게 두 차례에 걸쳐 철거 현장 대청소를 요구한 사실은 석면 위험에 대한 안일한 생각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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