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두리반' 단전…9일째 암흑·폭염과의 사투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두리반' 단전…9일째 암흑·폭염과의 사투

재개발 저항 7개월, 시행사 단전 요구로 위기

28일 새벽 1시. 서울 마포 홍대입구 지하철역 인근의 국숫집 '두리반'. 전기가 끊겨 암흑이나 다름 없는 이 가게에서 통기타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리반은 재건축에 반대하는 사장인 안종녀 씨와 남편 유채림(소설가) 씨가 홍대 주변 예술가, 시민활동가들과 함께 7개월 넘게 농성을 하고 있는 곳이다.

"누구는 뺏고 누구는 잃는가. 험난한 삶은 꼭 그래야 하는가. 앞서서 산 자와 뒤쳐져 죽은자, 그 모든 눈에는 숨 가쁜 눈물이. 왜이래 세상은 삭막해 지는가.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가수 연영석 씨의 '간절히'란 노래를 '두리반'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불렀다. 탁자를 중심으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지만 서로의 얼굴도 쉽게 분간하기 어려웠다. 불빛이라곤 테이블 위에 놓인 촛불 5개가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한쪽 벽면에는 배터리에 연결된 200여 개의 전기 촛불이 켜져 있었지만 어두운 '두리반'을 밝게 비추기엔 부족했다.

단전 9일째, 불빛 하나 없는 10평 공간

'두리반'에 전기가 끊긴지 벌써 8일이 지났다. 낮에는 그나마 공사장 펜스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는지라 어둡지는 않았지만 밤에는 사정이 달랐다. 불빛 하나 없는 10평 남짓 공간은 사람이 제대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프레시안(김봉규)

'두리반' 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듬성듬성 전기 촛불이 켜져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음식, 맥주, 막걸리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던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더위를 식혀주었던 선풍기는 멈춰 선지 오래였다.

'두리반' 사장 안종녀 씨의 남편 유채림 씨는 "무엇보다 힘든 건 더위"라며 "선풍기가 켜지지 않아 정말 죽을 맛"이라고 얼굴을 찡그렸다. 열대야 때문에 밤에 자다가도 몇 번이나 잠을 깨는 그였다.

잠도 잠이지만 밥을 먹는 것도 문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그동안 전기밥솥으로 밥을 해먹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냉장고도 작동되지 않아 반찬도 매 끼니 때마다 사거나 집에서 가져와야 한다. 유채림 씨는 "상황이 열악하다보니 도움을 주기 위해 자주 들르던 분들도 오기 어렵게 됐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한전 "강제집행된 곳이라 전기 연결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지난 7월 12일, 두리반 인근 지하철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한영토건 현장 소장이 두리반을 찾아오면서부터였다. 두리반 일대를 재개발하는 시행사 남전디앤씨에서는 한영토건에게 내용증명을 보내 '불법농성 중인 두리반에 전기를 공급하면 모든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두리반'은 지난해 12월 한국전력에서 전기를 끊자 인근 공사장에서 전기를 연결해 생활해왔었다.

▲ 두리반 1층에서 2층으로 가는 계단에는 촛불이 켜져 있다. ⓒ프레시안
당시 곧바로 한국전력에 민원을 제기하려 했으나 두리반 근처 지하철공사를 하는 한영토건 현장 소장이 전기를 공급해주겠다고 해서 민원을 포기했었다.

그런데 12일 전기가 끊기게 될 위기에 처하자 안종녀 씨는 현장 소장에게 며칠간 말미를 줄 것을 부탁하고 한국전력를 찾아갔다. 끊긴 전기를 다시 연결시켜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전에서는 "강제집행한 곳이라 전기를 연결하기 어렵다"며 거부했다.

답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안종려 씨는 "한전에서는 지난해 12월, 전기를 끊을 때, 두리반을 찾아와 전기 실사용자가 거주하고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동의도 묻지 않았다"며 "직무유기를 해놓고 사람이 사는 곳에 전기를 연결해줄 수 없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분노했다.

한전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한전에서는 통상적으로 경매나 임대기간 종료 등의 이유로 임차인이 사용 중인 건물에 단전을 요청하는 경우 단전 요청자가 전기 사용 당사자인지 여부를 파악한 후 약관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 또한 임차인이 전기를 사용하는 경우라면 단전을 하기 전, 임차인의 동의를 얻은 뒤 단전을 한다.

"생명과도 다를 게 없는 에너지를 무기로 압박하고 있다"

안종녀 씨는 마포구청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며 26일 부터 마포구청 도시계획과 사무실에서 농성 중이다. 안 씨는 "생명과도 다를 게 없는 에너지를 무기로 해서 철거민을 압박하고 있다"며 "지역 주민이 전기가 끊긴 상태에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데, 구청에서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농성 이유를 설명했다.

마포구청에서도 '주민생활 보호 차원'에서 한전에 전기 재공급 협조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나설지 주목된다. '두리반 강제철거 반대 대책위원회'는 "한전에서는 단전 해결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전기 없이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하는가"라며 2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단전사태 해결을 위한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한편 한국전력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12월 단전을 할 당시, 두리반은 출입이 금지된 상태"였다며 "현장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전에서는 강제집행이 된 건물에 다시 전기를 연결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하고 있다"며 "검토가 끝나면 전기를 연결할지 말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김봉규)
ⓒ프레시안(김봉규)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