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동차와 쇠고기 분야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재협상은 아니다", "쇠고기와 무관하다"라며 사전 진화에 나섰으나 결국 이 두 분야에 미국의 이해관계가 더욱 강하게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쇠고기는 재협상 등 특별한 조치가 없어도 곧바로 전면 수입이 가능하다.
▲G20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캐나다를 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오후(현지시간) 토론토 숙소호텔에서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
"재협상 아니다"라고 하지만…
일단 앞으로 양국 간에 시작될 논의가 재협상까지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점은 명확하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은 G20 회담에 참석해 "미국 측에서 어떤 제안을 했는가는 명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한국은 재협상(renegotiate)을 제안하진 않을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제통상 분야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29일 "재협상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기존 협상 자체를 뒤엎고 처음부터 다시 관련 협상을 시작한다는 의미"라며 "종래의 협상 결과를 인정하는 선에서 협정문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양국이 의견차를 좁혀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또 "이미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양국이 물밑에서 논의를 해왔을 것"이라며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가운데, 한국의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대가로 한국이 무엇을 더 얹을 수 있느냐를 두고 양국간 만남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수정의 대상은 사실상 무역 불균형 문제가 쟁점인 자동차와 수입제한 조치가 취해진 쇠고기로 확정되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양국 정상의 합의내용이 발표된 이후 데이브 캠프 하원의원(공화당)은 환영의 입장을 밝히며 "이번 진전이 미국에 자동차와 쇠고기 부문의 시장 접근성을 다룰 기회를 제공하고, 무역 관계의 가치를 늘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FTA 예비 협정은 지난 2007년 조약됐다"면서도 "미국산 쇠고기와 자동차 수출에 장벽이 남았다고 판단돼 미 의회에서 비준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또 이 신문은 백악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우려가 "앞으로 논의될 핵심 이슈"라고 설명했다.
쇠고기 문제에 대해 이 신문은 한국이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수입키로 한 양국 간 합의를 두고 "미국의 목장주들은 이 조치가 불필요하며, 한국의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뤄진 조치로 본다"고 풀이했다. 광우병 논란이 일어난 결과 취해진 규제 조항도 무역 보호조치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쟁점은 "쇠고기·자동차 빗장 열어라"
쇠고기는 일부 문구 수정만으로 곧바로 전면 개방이 가능하다. 자동차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일단 자동차 분야의 경우, 미국은 양국간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 판매량은 연간 약 70만 대에 달한다. 이에 반해 국내에 수입되는 미국산 자동차는 연간 7000여 대에 불과하다.
국토해양부 자료를 보면 올해 5월말 현재 한국에 등록된 수입차는 총 46만892대며, 이 중 미국차는 5만5947대로 전체의 12.8퍼센트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1위 독일차(21만678대, 48.3퍼센트)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지난 2007년 예비 협정 당시도 미국 최대 노조인 노동총연맹-산업별 조합회의(AFL-CIO)의 테아 리 부위원장은 "한미 FTA는 심각한 자동차 무역역조 등 불균형적인 시장접근과 노동자 권리,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는 개성공단 등의 3가지 큰 문제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2위 생산업체인 포드(Ford)와 미국자동차노동조합(United Automobile Workers)이 "한국에 수출된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 한국이 충분한 시장 접근권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결국 한국 내 미국산 자동차의 판매량을 늘릴 방법을 제시하거나, 반대로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출량을 줄이라는 압박이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협정문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한국 소비자들이 미국산 자동차를 타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가격이 비싸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이 미국산 자동차의 떨어지는 품질 경쟁력을 일차 원인으로 꼽는다.
송 변호사는 "오히려 한국 자동차의 미국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한 추가 조치를 취하는 등의 방식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이 FTA로 얻을 혜택의 사이즈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쇠고기의 경우는 보다 더 명확하다. 30개월 이상 연령의 도축소도 제한 없이 한국시장에 진입시키는 게 미국의 최대 목표다. 그리고 이는 단 하나의 단서 조항만 얻어내면 된다.
현재 한국에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는 30개월 미만의 비교적 어린 소다. '촛불집회'로 대변되는 국민적 저항에 의해 한국 정부가 쇠고기 품질체계평가(QSA) 프로그램을 가동,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조치의 단서 조항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신뢰성이 확보될 때까지'로 매우 모호하게 달려있고, 민간의 자율 규제에 따른다는 점이다.
현재 정부는 "쇠고기 문제는 FTA 협상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정도로 국내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박상표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그러나 "QSA 관련 합의 내용이 쇠고기 위생조건 관련 본문이 아니라 부칙 사항에 들어가 있다"며 "양국이 어떤 식으로든 '미국 쇠고기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됐다'는 것만 확인하면 곧바로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전면 수입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입증 책임이 명확하지 않고 입증 여부도 추상적인 영역에 머문 '소비자 신뢰 회복 여부'가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여부를 가를 핵심 조건이 된 셈이다. 앞으로 상황 진행 여부에 따라서는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박 정책국장은 "촛불시위의 성과로 잠정적이나마 수입을 제한한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이 본격 재개된다면 제2의 촛불사태 등 국민적 저항이 일어날 것"이라며 "국민 건강권을 협상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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