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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전사'가 못된 99%…"운동 탈락이 인생 탈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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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전사'가 못된 99%…"운동 탈락이 인생 탈락으로"

"이제 열여덟살, 병원 나와 혼자 노래방 가서 엄청 울었어요"

"아팠지만, 뛰어야 했어요. 너무 아파서 대포주사(스테로이드)를 맞았어요. 그렇게 해서 두 게임을 뛸 수 있었어요. 저도 대포주사가 진통제가 아니라 독을 주사하는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스카우트하는 사람들에게 저의 재활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몸 문제는 그 다음이라고 생각했고요." (A 전 농구 선수 면담자료)

"그러다 결국 끝장이 났죠. 일찌감치 체중조절 한답시고, 안 먹고 운동했는데, 무릎이 너무 아파서 걷지도 못 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무릎인대가 나가고 연골이 파열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참담하더라고요. 이제 열 여덟 살인데, 병원 나오고 나서, 혼자 노래방 가서 노래만 계속 틀어놓고 엄청 울었어요." (B 전 태권도 선수 면담자료)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가 발표한 '중도탈락 학생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자료집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들이 월드컵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지만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 만은 않을 이들이 있다. 운동을 중도에 포기해야 했던 이들이다. 특히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사회 적응을 위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인권위는 1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중도에 운동을 그만두게 되는 '중도탈락' 학생선수의 인권상황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이 2009년 7월부터 9월까지 학교운동부 중도탈락 학생 56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과 40명에 대한 심층 면접으로 진행됐다.

주목받는 1%, 중도 탈락한 99%는?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 직함을 가지고 운동을 하는 사람은 14만 명.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선수를 시작해 대학에 갈 수 있는 확률은 10%다. 대학교에 갔다고 끝은 아니다. 대학에서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확률은 또한 10%다. 결국 운동으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비율은 1%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1%의 선수에만 주목할 뿐, 나머지 99%의 중도 탈락한 학생선수들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이 탈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 직함을 가지고 운동을 하는 사람은 14만 명.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선수를 시작해 대학에 갈 수 있는 확률은 10%, 대학에서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확률은 또한 10%다. 결국 운동으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비율은 1%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그리스전을 마치고 관중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연합뉴스

각 문항마다 '그렇다, 보통, 그렇지 않다' 세 가지 답변을 요구한 이번 조사 발표 내용을 보면 중도 탈락한 학생선수들의 33.3%는 '자신의 미래가 불안해서'를 운동 포기 이유로 들었다. 또한 '훈련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가 30.1%, '경기성적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가 25.3%, '자신의 운동능력이 부족해서'가 25.1%, '일반학생이 부러워서'가 24% 순이었다.

조사를 맡은 류태호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 책임연구원은 "중도탈락 학생선수들은 훈련이 힘들어도, 맞아도 참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고 참지 못한 것은 결국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높다"고 설명했다.

류태호 연구원은 "그러나 지속적인 폭력과 강도 높은 훈련을 받으면서 점차 운동에 회의감을 갖게 되고, 일반학생들을 부러워하게 된다"며 "이 과정에서 학생선수들의 참아야 된다는 의지는 약해진다"고 주장했다.

류태호 연구원은 "결국 이러한 부정적 경험이 부상이나 경제적 문제, 경기 능력 부족과 같이 더 이상 운동을 지속할 수 없는 결정적 사건과 결합되면서 학생선수들은 운동을 그만두게 된다"고 설명했다.

'운동 탈락'에 이어지는 '삶의 탈락' 위험

더 심각한 문제는 운동을 그만둔 이후다. 조사 결과 운동을 그만두고 힘든 점은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다(56%)',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30.1%) 등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지원하고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미비한 실정이다.

류태호 연구원은 "운동을 시작하면서 학생선수들의 삶에는 오직 운동만이 존재한다"며 "운동 성적을 위해 수업 결손, 과도한 훈련, 제한된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고 말했다. 류태호 연구원은 "그 결과, 운동을 그만 둔 후 학생들은 그간 하지 못했던 학업문제, 심리적 문제, 생활 적응 문제 등에 놓이면서 학생으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며 "하지만 이들에게 놓인 현실적인 장벽은 이들을 재차 탈락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류태호 연구원은 "결과적으로 학생선수들은 운동에 입문하면서 학업 탈락을, 운동을 중단하면서 운동 탈락을 경험한다"며 "또한 운동을 그만둔 후에는 삶의 탈락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조사 결과를 보면 중도탈락 후 '운동을 그만 둔 후 비행 폭력을 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8.8%를 차지했다.

"학생선수 전문 상담 기구의 설치, 절실히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법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류태호 연구원은 "무엇보다도 학교 단위에서 학생선수 전문 상담 기구를 설치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상담 기구를 통해 운동 시작 단계에서는 운동을 통한 생애 진로를 구성할 수 있고, 운동 중에는 진로, 상담, 개인 목표 수립, 경력 개발 등에 관한 상담이 이뤄 질수 있다는 것.

류태호 연구원은 "또한 운동 중단 이후에는 전문적 상담 지원을 통해 개인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원도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에 운동을 그만 둘 때 아무와도 상담을 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수치는 25.8%에 달했다.

이외에도 류태호 연구원은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 학력 지원제 및 학점 보장제와 같은 규제 조치가 필요하다"며 "더불어 단위 학교 중심의 학습지원 센터 또는 학습 상담제 제도도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태조사 결과, 중도탈락 학생선수의 74.6%가 운동을 했던 이유로 수업을 따라가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류태호 연구원은 "우리나라 운동부 구조 속에서 학생선수들은 고된 훈련, 폭력이나 성적인 폭력, 경기 스트레스 등을 참아가며 운동이라는 외길을 살아가고 있다"며 "그렇기에 학생선수가 운동을 중단하면 외길 인생의 결과를 맞게 된다"고 밝혔다.

류태호 연구원은 "이들은 심리, 사회적 문제를 경험하고 학업 적응의 심각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이제 중도탈락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더 이상 기형적인 운동부로 인해, 탈락 후 제 위치로 돌아가지 못하는 학생선수가 양성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들이 제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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