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노조, 전시 체제 돌입…"시장 논리 강조하는 관치 금융"?
이런 사실은 두 가지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어 내정자가 평소 주장해 왔던 논리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다. 은행 간 인수합병을 통해 세계 50위 규모의 '메가뱅크'를 만들어 내자는 게 그의 평소 지론이었다. 다른 하나는 관치금융 논란이 번질 가능성이다. 어 내정자는 은행 실무 경험이 전혀 없다. 정권과 가깝지 않았다면, 민간 은행 경영자 후보 물망에 오를 리가 없는 사람이다. 이런 그가 순수 민간은행을 경영하게 됐다는 사실은, 은행이 정부의 조종을 받는다는 해석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작은 정부'와 '시장 논리'를 강조했던 현 정부로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두 가능성이 교차하는 자리에 있는 게 KB국민은행 노동조합이다. 노골적인 '관치'로 인해 KB금융지주의 핵심 계열사인 KB국민은행의 독립성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노동조합을 휘감고 있다. 또 '메가뱅크'를 낳기 위한 은행 간 인수합병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뒤따를 가능성은 KB국민은행 노조를 저항 태세로 몰아간다. 노조는 현재 '전시 체제'를 선언한 상태다.
변함없는 고대 동문 챙기기…MB정부, 6.2 선거 민심에 귀 닫았나?
▲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뉴시스 |
하지만 어 내정자가 "현 정부 임기 안에 결국 노른자위 자리 하나 꿰찰 것"이라는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런 예상은 현실이 됐다. 문제는 시점이다. 어 내정자가 KB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출된 날은 6월 15일. 지방선거에서 현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생각이 드러난 지 불과 13일만이다. "이명박 정부는 반성을 모른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낙하산 인사가 '이명박표 시장주의'인가"
이처럼 거센 후폭풍이 예상되는 결정에 대한 KB금융지주 측의 설명은 소박하기 짝이 없다. 어 내정자 선출 이유에 대해 임석식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은 15일 기자들과 만나 "어 내정자는 3개 은행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국제금융센터 소장을 지냈으며 국제금융을 전공하는 등 금융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과 지위에 있었다. 그리고 고려대처럼 큰 기관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등 경륜과 경험이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은행 실무 경험이 전혀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금융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현장 경험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이런 설명에 대해 노조는 물론 투자자들도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어 내정자 선출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던 이날, KB금융지주 주식 가격은 전날보다 3퍼센트 가량 떨어졌다. 시장이 먼저 거부반응을 보인 셈이다. 하루 전인 14일에는 노조가 어 내정자의 메가뱅크 주장에 대해 "노동조합과 직원들의 극한 대립과 투쟁을 불러올 수 있다"며 반발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은행 합병이 구체화될 경우, 우리금융지주, 매각을 앞둔 외환은행, 민영화 전망이 나오는 산업은행 등이 대상이다. 어느 은행과 합병하건, 구조조정과 내부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노조와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정치권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15일 오후 국회 브리핑에서 "어윤대 회장 후보 추천을 철회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명박 정권 들어 특정학교 편중인사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면서 "또 고려대 출신 인사를, 그것도 정부의 지분이 전혀 없는 일반 민간금융회사에 낙하산식으로 꽂는 것이 '이명박표 시장주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메가뱅크' 향한 우려 "부실은행끼리 합병한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당장 쏟아지는 비판이 아무리 거세도, '실적'만 제대로 나온다면 금세 잠잠해질 수 있다. 어 내정자 취임 이후, KB금융지주의 실적이 개선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어 내정자 취임은 한국 금융권이 '메가뱅크 설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신호인데, 여기에 동참해야 할 은행들의 체력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게다. KB금융지주 핵심 계열사인 KB국민은행은 2년 전만해도 명실상부한 국내 1위 은행이었다. 그러나 최근 눈에 띄게 허약해졌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경쟁은행인 신한은행의 직원 1인당 순이익이 5742만 원인데 KB국민은행은 2458만 원에 불과하다. 합병 대상으로 자주 오르내리는 우리은행, 외환은행 역시 조직 효율성이 낮기는 마찬가지다. 비효율적인 조직끼리 통합해서 효율성이 높아지기를 기대하기란 무리다. 주식 시장이 어 내정자 취임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에서도 '은행 대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종종 나온다. 그러나 현 정부 경제팀은 "대형 금융기관을 보유한 선진국과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업적으로 내세우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 발전소 건설 사업 수주 과정에서 국내 시중은행이 작은 규모 탓에 보증을 설 수 없었다는 점을 예로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어 내정자가 확정되면서, 한국 금융계는 또 한 차례의 모험을 치르게 됐다.
장관급 공직자, 왜 민간은행으로 옮기려 할까?
그런데 궁금증 하나. 어 내정자가 현재 맡고 있는 국가브랜드위원장은 장관급 공직이다. 지금도 굳이 아쉬울 게 없는데 왜 그는 무성한 뒷말을 감수하며 KB금융지주 회장이 되려 하는 걸까.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알려진 사실은 KB금융지주 회장 연봉이 10억 원을 훌쩍 넘는다는 점. 그리고 이 자리를 놓고 청와대와 끈이 닿는 이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어 내정자의 경쟁자였던 이철휘 캠코(자산관리공사) 사장은 청와대 김백준 총무비서관의 매제다. KB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둘러싼 경쟁은 청와대와의 거리를 놓고 겨루는 '파워게임'이기도 했다는 게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을 자처하는 어 내정자로서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