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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역사가의 경고 '천안함 보복? 그 순간 남북은 공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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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역사가의 경고 '천안함 보복? 그 순간 남북은 공멸!'

[화제의 책] 강만길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

<역사가의 시간>(창비 펴냄)은 원로 사학자 강만길의 자서전이다. 나는 이 책을 참 묘한 시간대에 읽었으니, 독후감을 쓰기로 약속하고 출판사가 보낸 책을 수령한 날이 5월 26일이었다.

바야흐로 일주일도 남지 않은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천안함 침몰 사건을 이용해서 야당의 'MB 심판론'을 잠재우려고 했고, 그들의 맹우인 보수 언론도 북풍몰이에 합세했다. 그 광적인 북풍몰이 가운데 5월 23일치 <중앙일보>에 실린 김진 논설위원의 사설은 그야말로 광견(狂犬)의 헛소리나 같았다. 아래는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이라는 제하에 쓰인 그 칼럼의 첫 문단이다.

천안함 같은 일을 당하면 정답은 북한의 비파곶 잠수함 기지를 폭파하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정교한 계획을 짜야 한다. 동해와 서해에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하고 전폭기 수십 대를 상공에 띄워놓은 후 북한에 경고하는 것이다. "만약 너희가 도발하면 우리는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북한의 모든 핵심 목표를 폭격할 것이다." 그래도 과연 북한이 장사정포를 쏠까. 만약 그래서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일어나면 그것은 절대로 안 되는 것일까.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북한 정권에 지진(地震)이 되어 자유민주 통일의 기회가 앞당겨진다면 그것이 나쁜 일일까.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의 핵심 목표를 폭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무책임하고 무역사적인 망발에 반쯤은 코웃음치고, 반쯤은 진저리치면서 <역사가의 시간>을 읽었다.

▲ <역사가의 시간>(강만길 지음, 창비 펴냄). ⓒ프레시안
본문에도 나와 있고, 책 말미에 실린 연보에도 정리되어 있듯이 강만길은 1933년생이다. 그러니까 저자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1941년 일본이 일으킨 대동아전쟁을 목격하고, 국민(초등)학교 6학년 때 8·15를 맞았다. 이 세대의 신산(辛酸)은 해방으로 끝나지 않고, 좌우갈등으로 점철된 해방 공간을 거쳐 중학교 5학년 때 한국전쟁을 겪는다. 이때 저자는 열일곱 살 나이로 학도의용대에 편입되기도 하고, 그것이 해산된 후에는 생계를 위해 부산부두 하역 노동자와 미군 부대 용역 생활을 하기도 했다.

전쟁을 마칠 즈음, 학제 변경으로 고등학교 졸업자가 된 저자는 1952년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때부터 평생 역사학 전공자로 또 역사 선생으로 살게 되었으니, 거기에 대한 소회가 없을 수 없다.

역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것은 대학의 사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였지만, 이때는 우리 역사학의 경향 같은 것에 대해서는 몰랐고, 다만 역사 공부가 좋아서란 말밖에는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 대학에 입학하기 전이건 후이건 왜 역사학를 좋아했는가에 대해서는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다만 당시의 역사책들이 일반적으로 다루었던 지배층이나 정치사적인 문제보다 사회사적 문제나 서민층의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기억이 있다.

저자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남한의 사학계는 여태도 일제의 식민사관과 해방 후의 반공주의적 검열이 한계 지워 놓은 역사 방법론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저자가 말하듯, 흔히 일제 강점기의 역사 연구 방법론은 ①순수실증주의사학 ②민족주의사학 ③사회경제사학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 '반식민주의 역사학'의 성격을 가진 게 ②와 ③이었는데, 일제 강점기엔 ①만 공인되었다. 일제 아래서는 순수실증주의적 역사 연구 방법론만 가능했지 식민사학의 극본론적 연구나 서술을 할 수 없었고, 민족해방운동사 연구나 서술은 감옥행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더더욱 불가능했다. 일례로 우리가 익히 아는 신채호나 박은식의 민족주의 역사 연구나 저작은 모두 적치하(敵治下)의 조선이 아닌, 중국에서 이루어진 성과다.

일제는 민족주의사학과 사회경제사학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순수실증주의적 역사 연구 방법론을 강요했을 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역사를 배운 한국인 학자들에게 일본 학자들이 내놓은 식민사학론적 해석을 전파했다. 정체성후진성론과 타율성론이 그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학자들이 내놓은 식민사학론적인 해석은, 17세기 이후의 우리 역사 는 임진왜란의 타격 이후 당쟁만 분분했고 경제적으로 침체 상태에 빠져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발전이 전혀 없었다는 정체후진성론과, 일본의 요구에 의한 개항으로 비로소 활력을 찾아 근대사회로 가게 된다는 타율성론이었다.

그러므로 해방 이후의 우리나라 역사가들에게 주어진 제1의 임무는, 순수실증주의적 역사 연구 방법론과 식민사관을 동시에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에 걸쳐 활동했던 사회경제사학 계통의 연구자들이 대부분 월북해버리고, 남한에는 역설적이게도 반공주의적·반북주의적 사학론으로 변모해 버린 민족주의사학과 대중성·현재성이 거세된 아카데믹한 실증사학만 남았다.

남한과 북한의 역사학자들이 타율성론과 정체후진성론 등의 식민사학 독소를 제거하는 작업을 쌓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부터다. 민족주의사학과 사회경제사학의 학맥을 이어보려고 했던 저자 역시 석사 학위 시절부터 사회경제사적 논문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관심사를 조선 전기에서 자본주의맹아론의 무대가 되는 조선 후기로 넓힌다.

그것의 성과물이 1975년에 발간된 저자의 박사 학위 논문 <조선 후기 상업 자본의 발달>로 이 책은, 1970~1971년에 출간된 김용섭의 두 권짜리 <조선 후기 농업사 연구>와 함께 자본주의맹아론과 내재적 발전론을 한국 역사학계의 지배적 학설로 만들었다. 모든 이론과 역사 해석이 그렇듯이, 자본주의맹아론과 내재적 발전론 또한 후학의 이견과 수정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여기에 대한 저자의 논평은 이렇다.

그야말로 '맹아'였기 때문에 그것으로 조선 후기 사회의 전체 사회구성체를 설명할 수 없으며, 또 그렇게 시도한 것도 아니지만, 반식민사학론적 목적의식을 가진 연구라는 점을 떠나서라도, 근대 사회로의 이행의 싹 즉 역사 진행상의 변화의 싹은 비록 그 징후가 작더라도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저자는 개항 후의 조선 상업자본을 다루게 될 논문 형식의 후속편을 쓰지 못하고, 역사학계에서는 '잡문' 취급을 받는 사론문(史論文)을 왕성하게 쓰게 된다. 그렇게 된 계기는 40대 적에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을 맞닥뜨리고 부터다. 그때부터 저자는 "왜 무엇 때문에 역사를 연구하고 또 가르치는가. 역사학이 아카데미즘이란 이름으로 현실 문제를 외면하고 무풍지대인 상아탑 안에서만 안존해도 제 구실을 다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고민한 끝에, 학문의 방향이 크게 바뀌었다. 그때의 각오를 저자는 이렇게 회상했다.

이후에는 과거 사실의 실증에만 치중된 이른바 순수 논문보다 군사독재 체제 종식에 조금 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글, 즉 현재성과 대중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논설문을 더 많이 쓰 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학 전공자라기보다 섣부른 논객이 되어갔다고나 할까.

5·16 쿠데타에서부터 유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지금-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그야말로 오불관언(吾不關焉)이었다. 저자는 정당하지 않은 정권이 일으킨 불의와 폭력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던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구조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근대 역사학이 성립되고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는 불행하게도 국권을 잃어가던 구한말과 타민족의 지배를 받은 일제강점기, 그리고 역시 불행한 민족 분단시대와 겹쳤다. 그같은 불행한 시대를 통해 성립되고 또 발달하기 시작한 우리 역사학이 식민 지배 권력과 민족 분단 권력 쪽의 탄압을 받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카데미즘이란 이름 아래 순수실증주의로 가려진 장벽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도 하겠다.

윗 문단에 이어서 말하기를 역사학이 아카데미즘(순수실증주의)에 침전하게 되면 "일제 강점기나 민족 분단 시대를 객관적으로 연구하거나 비판적으로 서술하는 근대사나 현대사는 기피되기 쉬우며, 따라서 학문은 현재성과 대중성을 잃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젊은 역사학도에게 "역사학에는 '당대사(當代史)'란 말이 있다. 어렵기는 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도 역사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깨우쳐 준다.

이런 사실들을 꼽다 보면, 역사가로서보다는 '논객'으로 더 널리 알려진 저자가 왜 논문이 아닌 사론문을 즐겨 쓰게 되었는지 확연하게 된다. 사론문은 아카데미즘이란 폐쇄를 넘어 현재성과 대중성을 찾는 전략이면서, 당대사에 접속하는 방법이다. 저자는 약간 멋쩍어 하지만 후회는 없다는 숱한 사론문을 통해, 4·19와 5·16은 물론이고 유신과 5·18에 이르는 당대에 대해 '역사가'로서 발언한다. 역사가에게 당대란 "반드시 역사가 되고 마는 현실"이며, "바로 역사 그것이기도 한 현실이 이렇게 잘못 가"고 있을 때 거기에 개입해야 하는 책임을 진다.

스스로 잡문이라고 말하지만, 저자는<한국 현대사>를 쓰면서 일제 강점기의 사회주의운동도 민족해방운동으로 정당하게 평가하는 물꼬를 텄다. 또 어느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이 시대를 반공주의나 대북 적대주의에 고착된 시대가 아니라 평화 통일을 전망하고 지향하면서 반드시 극복해야할 시대로 여기면서 '분단시대'라는 말을 고안해 우리들의 일상 용어와 학문 용어로 정착시켰다. 이런 저자를 두고 역사학계에서는 '이단아'라고도 부르고, 좌경 역사학자니 좌파 역사학자라고도 부르는 모양이지만, 저자는 '분단 극복 역사학', '통일사학', '통일민족주의사론'을 세우고자 한다.

이 독후감의 첫머리에 어느 미친 사람의 헛소리를 인용했다. 행여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전쟁은 남한에 의한 통일 가져 온다'는 그 옹알이에 솔깃한 사람이라면, 6·25를 직접 체험하기도 했던 역사학자의 분석을 경청해야 한다.

(6·25는)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참극이었지만, 그 전쟁이 전체 민족사회에 큰 교훈을 준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그 교훈이란, 6·25전쟁은 우리 땅의 경우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그 지정학적 위치 문제가 주된 원인이 되어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정복하는 전쟁의 방법으로는 통일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음을 아는 것을 말한다.

앞으로 (남북 간의) 평화주의가 정착할수록 유리하게 될 수도 있을 그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전쟁 통일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 7000만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철저히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천안함 침몰 이후, 한국은 서해상으로 미국 항공모함을 불러 한미 간의 동맹을 과시하고 북한을 위협하려고 했다. 그러자 서해상으로 미국 항공모함을 불러 군사 훈련을 하려는 한국을 향해 중국은 엄중 경고 신호를 던졌다. 이런 현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로는 두 가지다.

먼저 남북 공멸의 길. 한반도라는 링 위에 올라가 있는 선수는 남한과 북한만이 아니다. 남과 북 사이에 또 다시 전쟁이 벌어지면 한반도는 또 한 번 열강들의 대리전이 펼쳐지는 무대가 될 것이고, 통일은 더욱 멀어진다. 전쟁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나고, 남한은 아시아의 하류국으로 전락한다. 두 번째 길은 저자가 "2000년 6월부터 이미 한반도식 통일은 시작되었다"고 거듭 강조해 마지않는 남북 공존의 길로, 그것은 베트남식 무력 통일도 독일식 흡수 통일도 아닌 "우리식의 협상 통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 강만길(77)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
역사학 전공자는 일반적으로 젊을 때는 각주가 충분히 달린 순수 논문을 쓰고, 그 학문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의 시대사를 쓰고, 마지막에는 전체 역사 시대의 개설서를 쓰며, 그러고도 능력이 있으면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쓰게 된다고 한다. 저자는 앞의 두 가지는 어느 정도 했지만, 뒤의 두 개는 하지 못했다고 자탄한다. 그러면서 능력이 된다면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다소 미지근한 명제로 유명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뛰어 넘는 저서를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에 그치는 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인류 사회가 추구해 마지않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공부를 하면서 살아온 평생을 통해 꼭 하고 싶은 한마디를 하라면 역시 "역사는 변하고 만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싶단다. 과연 6·2 지방선거를 새벽 늦도록 관전하는 동안, 나는 저자의 전언을 계속 떠올렸다. 아쉽게도 서울과 경기에서 모두 이기진 못했지만, 대세는 저자의 말처럼, 역사는 변하고 만다! 어쩌다 "다소 둘러갈 수도 있고 또 지체할 수도 있지만 역사는 본래 가야 할 길로 정확하게 가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 <역사가의 시간>에는 거짓말 하지 못하는 역사 발전 법칙에 대한 저자의 신뢰가 아로새겨져 있다.

역사가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큰 방향은 많은 곡절이 있으면서도 결국은 인류 사회가 지향하는 이상을 현실화해가는 과정 그것이라는 생각이다. 인류 사회의 이상이 현실화되는 방향은 크게 말해서 전체 인류 사회가 정치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방향, 경제·사회적 불평등으로부터 해방되는 방향, 문화·사상적 부자유로부터 해방되는 방향이며, 또한 세계 평화를 이루어가는 방향이 그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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