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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 지금이 사퇴의 적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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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 지금이 사퇴의 적기입니다

[우석훈 칼럼] '존경할 만한 경제학자'로 남길 바라며

선거가 끝났습니다.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어떤 의미로든 조순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고, 그래서 모두가 조순의 제자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 조순 선생님의 직계 제자인 정운찬 총리님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직접 뵌 적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어쨌든 저와 총리님의 인연도 남다른 것이 있었고, 졸저 <88만원 세대>의 시상식 때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것은 제가 영광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기억 중의 하나입니다.

처음 총리에 임명되었을 때, 저는 제가 생각하고 있던 한국 경제에 대한 여러가지 대안에 대해서 공개질의나 신문 칼럼 형태로 요구를 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토건경제에 오랫동안 반대해왔던 정통 케인즈주의자가 총리가 되어서 여러 가지로 국민경제에 균형이 생겨날 것이라고 좋아했었습니다. 신문에 환영사를 썼다가, 정말 여러 사람들한테 오랫동안 '터지는' 곤란한 상황에 몰렸습니다. 총리님이 평소의 소신을 버리고 토건경제로 한 발 한 발 다가갈 때마다, 그리고 가끔 국민 상식에 위배되는 말실수를 할 때마다, 저는 동료들과 선배들한테 엄청나게 '터지면서', 환영사 한 번의 댓가가 너무 크다고 골머리를 앓았었습니다. 현역 최고 소설가 중의 한 명인 공지영 작가의 비꼬는 말은, 진짜 폐부를 뚫고 가더군요. 역시 말로는 공지영 작가를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 이렇게 시간이 갔고, 4대강 사건, 천안함 사건 등 총리님 재임 시절에 아마도 역사가 '위정자의 과오'라고 기록하게 될 사건이 발생했고, 분명히 총리로서 눈에 띌만한 '조정권'을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기록을 하게 되겠지요. 저는 이한동 총리 시절에 총리실에서 근무를 했었는데, 제가 모셨던 수 많은 상사들 중에서 여전히 멋진 정치인이며 또한 유능한 관료라고 그 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연이 다른 형태가 되었다면, 어쩌면 총리님을 제가 총리실에서 모셨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쨌든 밖에서 본 제 입장에서는 실망도 많고, 아쉬움도 많았던 기간인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민의는 분명해졌습니다. 많은 국민들은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있고, 천안함으로 인해서 동북아시아가 분쟁지역으로 긴장감이 높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침 한나라당의 정몽준 대표도 사의를 표했고, 청와대의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도 사의를 표했습니다. 이 이름 중에 하나에 총리님 이름이 있지 않을까 찾아봤는데, 아직까지는 고민하시는 것 같아 보여서 이렇게 감히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 정운찬 총리 ⓒ뉴시스
저는 여전히 총리님을 좋은 경제학자로 기억하고 있고, 또 나머지 여생에서 지나칠 정도의 무역주의자들과 토건경제의 주창자들과 맞서 우리 국민경제가 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남겨주실 좋은 말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총리님도 정치인으로서, 행정가로서 혹은 서울대 총장이라는 보직교수로서의 이름보다는 경제학자로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후대에 그렇게 기억되는 것을 희망하고 계실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총리님 생애사에 아직 많은 시간들이 더 좋은 경제학자가 되실 수 있는 시간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경로로 총리님이 총리 자리에 인준을 받았고, 또 어떤 이유로 세종시로 고향 사람들에게도 힐난을 받고, 4대강으로 종교계에게도 비난받는 그런 상황이 되었는지, 저는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여러 가지 곤혹스러운 상황이 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우리 모두를 위해서 기여하고자 하는 바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총리에서 사퇴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된 사람으로는, 지금은 선진당의 이회창 총재가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에 한 번 한 적이 있습니다. 공인은 어떨 때에는 나아감으로, 어떨 때에는 물러남으로 존경을 받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제 생각으로는, 지금은 물러남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위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에게는 아직도 같이 논의해야 할 좋은 세상 혹은 균형 잡힌 국민경제의 길이 열려 있습니다. 나중에 이중 직업 문제로 논란이 되었지만, 인터넷 출판 유통사 중 하나인 예스 24에서 총리님이 고문을 했던 것에 대해서 저는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문사철이 죽어가는 한국에서 독서를 강조하시면서 경제학자의 인문적 소양에 대한 긍지를 가지게 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의 어렵고도 곤란한 시국에, 총리님이 학식과 덕품을 갖춘 경제학자로서 그리고 검소함으로 세인의 존경을 받는 선비의 풍모를 다시 한 번 보여주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마 야당에서는 총리님을 물러나라고 하고, 여당에서는 조정을 할 기간 동안만이라도 좀 참아달라고 하겠지요. 우리 국민과 국민경제를 위해서,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던 경제학자로서, '스스로 선택함'의 본을 저희들에게 보여주시면 참 아름답고 멋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답고 덕담이 되는 시기에 펜을 들지 못하고, 어렵고 곤란한 시기에 더욱 곤란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심히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저는 최근에 중고등학교에서 10대 학생들을 많이 만납니다. "이 분을 존경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경제학자가 그렇게 많지 않더군요. 부디 많은 고민을 하시어, 영원히 국민들의 가슴에 '존경할만한 경제학자'로 오래오래 남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2010년 6월 3일, C급 경제학자 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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