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과연 우리가 파시즘으로 전환되었는가? 이것은 아마도 '유사 파시즘'에 대한 논의와 비슷할 것 같다. 방송장악이라는 눈으로 본다면, 이사회를 간단하게 장악해 전파 매체인 KBS, 문화매체로서의 영화진흥위원회는 이미 파시즘 도구화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 것은 파시즘의 특징인데, 최소한 대중매체는 이미 파시즘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용산에서 시작한 재개발 그리고 한강에서 시작된 '4대강 조경사업', 이렇게 토건에 속한 부문은 이미 파시즘 국면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환경영향평가 등 최소한의 행정절차는 국회 장악과 함께 대단히 간소하게 정리가 되었고, 여기에 대해 조그만 반론도 허용하지 않은 채, 연말 국회 예산과 함께 우리는 파시즘 국면을 통과하는 중이다. 자신이 야당인지도 모르고, 모든 걸 다 거수기처럼 통과시켜놓고서 이제 와서 '4대강 저지'를 운운하는 민주당이 과연 야당인가 싶게, 우리는 이제 막 전개되는 이 파시즘을 막을 장치가 거의 없다.
어느 정도의 수준을 파시즘으로 정의할 것인가라는 '유사 파시즘' 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파시즘은 '과반수'라는 민주주의 논의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치즘을 비롯해 우리가 역사에서 본 많은 파시즘은 대중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함께 전개되었다. 한국의 유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여당 후보들이 선거에서 과반수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파시즘이 아니라는 반례는 아니다. 언로를 막고, 대중들을 조작할 수 있다고 믿고, 힘으로 통치하는 것, 그것이 파시즘이라면 이미 우리는 토건 파시즘을 통과하는 중인 셈이다.
여기에 '북풍'으로 불리는 천안함 사건이 생겼고, 봉은사에서 대중 강연을 했던 도올 김용옥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되었다. 언제나 진실이 그렇듯이, 그 총체적 진실은 잘 모습을 보이지 않고, '해석'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사문화된 법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문제지만, 정권에서 '해석'을 독점하겠다는 것은 중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한 가지이지만,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해석을 정권에서 독점하고, 자신과 다른 해석을 제시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를 행정권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는 물론이고 국민의 알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행위이다.
▲ 지난 주말 봉은사 강연에서 천안함 사태에 대한 정부 조사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도올 김용옥 선생은 보수단체들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연합 |
군과 관련된 정보와 자료를 정부가 독점할 수는 있다. 그것은 행정력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석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해석을 독점하고, 내부의 위기를 외부의 위기로 전환시켜 국방 위기로 전환시키는 것은, 전형적인 파시즘의 한 증후이다. 정부가 발표한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하거나 잘 납득이 가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표명하는 것은 당연한 국민의 권리이기도 하고, 김용옥과 같은 당대의 학자들에게는, 학자의 의무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에서도 크고 작은 안보위기가 있었는데, 그러한 위기는 파시즘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고 외국 자본들이 이해를 했는지,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는 일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이게 한국 경제의 작은 변화가 아니라 진짜로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변화가 오는 것이라고 외국 자본들이 판단했기 때문이 아닌가?
조금 크게 눈을 들어서 보자. IMF 경제 위기 때에, '국부 논쟁'을 우리가 한 적이 있었다. 정말로 팔고 싶지 않았던 회사였던 포항제철을 민영화시키면서 팔아야 했고, 은행들을 외국계 헤지펀드들에게 넘기면서 해외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했었다. 그게 12년 전의 일이다. 지금도 서비스품질 세계 1위라고 하는 영종도 공항을 해외자본 유치를 위해서 민간매각해야 한다는 논의가 살아있다. 그런데 내치를 위해 일부러 안보위기를 선택한다면, 그건 선거용 북풍을 넘어 군사 파시즘으로 전환하기 위한 첫 단계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파시즘으로 국정 운영을 하면서 선진국이 된 나라는 일찍이 없었고, 그렇게 '지속가능한 국민경제'를 만들어낸 국가도 없었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파시즘을 하겠다"라는 방식으로 가는 일은 잘 없다. 작은 결정들과 작은 계기들이 모여서 어느 순간에 뒤돌아보면,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파시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국민경제와 민주주의,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두 요소이다. 형식만 남고, 과반수만 남고, 껍데기만 남고 알맹이는 빠진 일방주의, 그것을 우리는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국방과 관련해서, 자료는 물론이고, 해석도 독점하는 상황, 그것을 대체적인 우리의 상식으로 '군사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도올은 누구나 아는 우리 시대의 큰 학자이다. 그가 다른 해석을 했다고 해서 그의 입을 막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군사 파시즘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증거 아닌가?
나는 한나라당의 일방주의와 횡포는 참을 수 있지만, 파시즘은 참을 수 없다. 해석을 독점하려 하지 말라. 그것이 시대의 기준이다. 국민 누구나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수많은 해석에 대한 논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대의 눈이 생겨나는 것이고, 그렇게 다양한 눈을 가진 나라가 좋은 나라이며 또한 잘 사는 나라이다. 해석을 독점하지 마라. 그게 민주주의 국가의 최소한의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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