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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성이는 사람, 아름다움을 기다린다"

[권은정의 '아우토반 코리안'] 독일 하늘 아래, 화가 오정근 씨

푸른색으로 저무는 5월의 저녁 창가를 배경으로 서서 그가 설명한다.

"이렇게 쳐다보면 건물 사이로 하늘이 보이지요? 제가 그린 게 바로 저거예요. 건물 틈새로 보이는 하늘, 저 모양이 조금씩 달라 보이는 이유는 제가 걸음을 조금씩 옮기면서 바라보았기 때문이지요. 네, 그렇죠, 그렇게 걸음을 옮겨 보세요. 하늘 모양이 바뀌지요?"

고개를 하늘로 올린 채 걸음을 옮겨보는 관객을 향해 화가 오정근이 활짝 웃어 보인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이해한 관객을 만났을 때 보이는 환희의 순간이다.

"제 그림을 보러 오시는 분들과의 소통, 저한테는 그게 제일 소중해요."

오정근의 그림에 나타난 하늘은 강렬한 붉은색과 검정색으로 건물 형태와 구분되어 있다. 그런데 캔버스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순간 어느새 공고한 형태는 유연한 선으로 변하고 틈새로만 보이던 하늘은 무한으로 확장돼 우리를 새로운 차원으로 데려간다. 추상화 같이 어려워 보이던 그림이 너무도 쉽게 다가온다.

▲ 독일인이 사랑하는 한국인 화가 오종근 씨. 그는 6년 전 한국을 떠나 독일을 무대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한민영

5월 한 달 동안 베를린 중심지에 있는 화랑 '갤러리 손'(관장 손미현)에서 오정근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틈새>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독일에 온 지 6년이 되는 오정근에게는 일곱 번째 개인전이다. 그동안 해온 그룹전, 기획전까지 합한다면 전시회 횟수는 엄청 늘어난다. 몇 년 전 그의 작품이 베를린에서 처음 선보였을 때 이곳 언론은 '아주 암시적이고 매력적'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오정근은 이곳 화랑가에서 '반드시 주목해야할 작가'로 꼽힌다.

서울에서 미술 공부로 대학원까지 마치고 학생을 가르치면서 열심히 작품을 그리던 그는 서른 중반에 갑자기 독일로 유학을 왔다.

"공부를 하겠다고 했지만 한 1년 정도 고민하다가 그냥 화랑가로 뛰어 들었죠. 학교도 좋은 공간이었지만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 모습을 보니…. 그냥 뛰어나오고 싶었어요."

오래전부터 독일은 그에게 가보고 싶은 미술의 세상이었다.

"학교 다닐 때 읽던 미술 관련 이론서 저자들이 거의 독일인이었어요. 철학자, 미학자들….그때부터 꿈꾼 거죠.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무엇을 왜 그리는지 구체적으로 생각을 다져놔야겠다 결심했어요. 그래야 그림을 다듬어 가며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바야흐로 베를린은 런던, 뉴욕, 상하이와 더불어 미술 시장으로 기운이 높아져 가는 넓은 세상이다. 더구나 미술 관련 박물관이 세계 어떤 도시보다 많은데다 문화 예술의 도시로 육성하려는 시 정부의 정책이 많은 외국 작가들을 모이게 만드는 동력이 되고 있다.

"그동안 이름만 듣던 외국 작가들과 만나면서 많이 배웁니다. 어떤 자세로 작품을 하는지, 보고 이야기하면서 간접 체험을 많이 하게 되지요."

지금은 어느 정도 순조롭게 작품 활동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도 처음 이 낯선 도시에서 그림을 시작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시내 북쪽 베딩 지역에 아트리에를 마련했지만 캔버스를 세우고 나면 찾아온 손님에게 커피 잔을 내놓을 공간도 없을 정도였다. 그의 그림이 알려지면서 찾아온 한 독일 기자가 '이렇게 작은 방에 어떻게 저 큰 캔버스가!' 하고 감탄한 적도 있다.

ⓒ한민영

그러던 어느 날, 오정근은 '기회'를 만났다. 세계 현대 미술계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함께 전시회를 하게 된 것이다. 1960년대 즈음 회화의 종언 운운하는 미술계의 수군거림을 일거에 날려버리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독일 출신의 거장 리히터. 그와 오정근, 단 둘만의 전시회가 마련된 것이다. 전시회 제목은 <디알로그>(대화). 리히터가 먼저 보내온 작품을 보고 오정근이 동일 사이즈, 동일 작품 수로 답을 보여주는 것으로 기획되었다.

2007년 12월 갤러리에 도착한 리히터의 작품 포장을 열 때 오정근은 어찌나 손이 떨렸던지 한참이나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의 미공개 작품(2005년도) 두 점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숨이 탁 멈추는 듯했어요. '스노우 화이트'라는 제목의 추상 작품 두 점이었는데 너무나 간단했어요. 형형색색의 뒷 배경 그림을 단 하나의 흰색으로 덮고 그 위에 가볍게 드리워진 몇 개의 연필 선들, 그게 다였는데요. 선문답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었어요. 어떻게 읽고, 어떻게 답을 할까, 고민했지요. 결국 제 자신을 추스르는 자세로 그리기로 했지요. 그 대가 앞에서 저는 초보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오정근은 '비움과 채움'의 주제로 자신의 답을 내놓았다. 리히터와 오정근 각각 두 점의 작품, 그 넓은 갤러리에 딱 네 점만 걸어놓고 전시회가 열렸다. 리히터는 전시회에 온 관객이 작품 앞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라는 주문도 함께 보냈다(리히터는 직접 전시회에 참석하지는 않았다).

당시 쾰른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복원 작업에 전념하던 리히터와 한 신예 작가가 나누는 <디알로그>. 그 현장에 모인 독일 관객과 비평가는 오정근의 대답이 왜, 어떻게 나왔는지를 특히 궁금해 했다. 지역과 문화, 입장이나 나이가 확연히 다른 두 작가가 회화라는 공통의 영역에서 어떻게 만나고 소통하는지 그들이 나눈 대화는 단연 화단과 언론의 깊은 관심사였다. 단 이틀간 열렸던 그 전시회는 지금도 화랑가의 주요 화제가 되고 있다. 감동적인 당시를 떠올리며 오정근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리히터의 그림 값이 워낙 비싸니까 그림 운반 때나 전시장에 항상 경호원이 지켰어요. 밤에는 갤러리 관장께서 그림을 싸들고 집으로 갔지요. 물론 제 그림은 전시장에 그대로 걸어 두었고요, 하하하…. 나중에 화랑으로 리히터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성공적인 전시회와 대화에 아주 공감한다고, 아주 보람 있게 생각한다고요. 다행히 욕은 안 먹었다 싶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요. 여기서는 비평할 때 가혹하게 하거든요."

그 후 오정근의 더욱 경건해지고 조심스러워졌다고 고백한다. 대가와의 조우를 통해 작품에 임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고 그림을 그리는 삶에서 찾아오는 고난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오로지 그림에 정진하는데서 온다는 진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오정근은 2007년 독일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주간 행사에서 한국 미술 전시를 총괄 기획해, 젊은 한국 미술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그는 2009년에는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행사로 런던 전시회를 가졌다. 런던 주재 독일 대사관이 오정근의 베를린 하늘을 런던에서 보여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제가 그린 베를린 시내 영국 대사관 하늘 그림을 보고 영국 쪽에서 런던 전시회를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독일 쪽에서 행사 주제와 딱 맞는 것이라고 원해서 그렇게 된 거지요."

ⓒ한민영

검은 색과 붉은 색의 하늘은 작품마다 독특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조형물인 건물 사이를 빠져나가 그 하늘로 들어가면 영원한 아름다움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붉은 하늘에 독일 사람이 매료되었다. 이방인 작가 오정근은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이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독일의 미술 시장이 상당히 크지요. 작가들 활동도 왕성한데 이곳이 주변 국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미술에 관한 이즘, 즉, 미술 운동이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에 대한 미학적인 근거를 같이 지니고 간다는 것이지요. 이론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며 살아 숨 쉬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문화적 풍성함이 좋아요. 외국 작가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인지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도 덜해요. 독일은 자신들의 과거 때문에 타민족, 타국가에 대한 배척이 주변 국가에 비해 덜한 점이 있어요. 그래서 저 같은 이방인 작가가 독일 거장과 나란히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도 마련된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사회 내에서 한국인 작가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특별한 점이 있는지 궁금했다.

"글쎄요, 하나의 이방인으로 보기보다는 어떤 자세를 가진 사람인가로 평가하는 것 같아요. 독일인이 근면성실한 가치를 높이 사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잖아요. 특히 우리 한국인은 지난 시절 파독 간호사 광부들을 통해서 그런 점이 많이 알려져 있어요. 이곳에 정착해 살면서 그분들이 정말 어려운 가운데서도 역할을 100퍼센트 해내 오셨잖아요.

사회에 잘 동화되어왔고 또 2세들 교육에 특히 열성을 보인 덕분에 다들 건실하게 성장해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배경이 제가 여기서 한국인 작가로 활동하는데 밑거름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신의 그림이 이곳에서 인정받는 이유가 한국인의 성실함, 그것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말이다. 아무리 독일인이지만 예술적인 안목도 그런 기준에 맞춰 있을까? 오정근은 그렇다고 우긴다.

"여기 실력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열심히 하는 제 모습 때문에 자기네들 자리를 좀 비켜준 거예요."

그러면서 그는 한 가지 예를 들어준다. 현재 작업 중인 독일의 유명 도자기회사 KPM과의 계약도 그렇다는 것. 오정근의 하늘 그림 시리즈 작품이 커피 잔 세트에 입혀져 나가기로 되었다. 오리지널 작품이 KPM 도자기 박물관에 영구 보존되고 에디션 100개는 한정 판매로 나간다. 회사 측은 애초 고급스럽고 값나가는 큰 접시나 화병에 작품을 입히자고 했지만, 그는 대중들이 마음 편하게 손댈 수 있는 커피 잔으로 하자고 고집했다. 자신의 그림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하고 싶어서였다.

애초 계약 전에 회사에서는 석 달 동안 매일 4시간씩 출근해주기를 원했다. 도자기가 가마에 들어갔을 때 그림의 색상을 살펴보자는 것이었다.

"저도 사실 제 그림이 3차원 입체에 씌워질 때 어떨지 궁금했으니까 기꺼이 응했지요. 검증기간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출근을 너무 꼬박꼬박 한 거예요. 보통 9시에 문을 여는데 8시에 이미 가 있었으니까요. 문을 열어주는 사람보다 더 일찍이요. 석 달 동안 매일 그렇게 하니까 아주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본거 같아요. 계약이 아주 쉽게 되었어요. 작품 성과는 둘째 같았어요, 하하하…."

하루 14시간씩 쉬지 않고 그림에 매달리는 날도 많다. 그러니 성실하다는 소문이 안 나기가 힘들다.

"한국에서도 부지런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었어요. 그런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 3배 정도 더 작업하는 것 같아요. 8시 30분에 아이 학교 데려다 주고 와서, 밤11시 막차 타고 집에 갈 때까지 그려요. 제 작품이 시간이 많이 걸려요. 캔버스 전체를 다 칠하고 마른 다음 다시 칠해야 하니까 물리적으로 시간이 필요하지요. 인내심이 있어야 하는데 성급하게 덤벼들어 후회하는 경우도 번번이 있어요."

ⓒ한민영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거나, 그림에 대한 다른 이의 의견을 듣는 그의 자세에는 지극한 정성이 느껴진다. 도무지 그림을 그린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마 그는 관객이야말로 자신의 그림의 진짜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관객이 제 그림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때의 기쁨, 관객의 그 경험이 제게는 또 다른 배움이에요. 그러니 경청하지 않을 수 없어요. 하늘 그림을 보고 간 사람 중에 전화로 '야, 네가 그린 그림과 똑같은 하늘이 여기 있어', 또 전시회에 와서 '저 하늘 어디 건물에서 본 거 맞지?' 하면서 수수께끼 풀듯이 즐거워하기도 하지요."

그는 베를린에서 작가의 작품 활동이 관객의 일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에서는 주로 가까이 있는 이들한테서 격려를 받는데 여기서는 오프닝 관객의 80퍼센트가 비전문가예요. 생활 속에서 그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우러나오는 거지요. 관객들이 평소에도 관심을 가져줘요. 산책 중에 잠깐 들러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또 소소한 배려도 해주고…. 그런 보살핌 덕분에 그림 그릴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거죠."

이곳 언론은 오정근의 그림을 자주 소개한다. 따라서 그림도 많이 팔리지 않을까? 미술 애호가는 보통 매스컴의 평가에 귀를 쉽게 열지 않는가? 그가 반대의 대답을 한다.

"매스컴에 덜 나가도 대중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작가의 그림이 구매자들이 많아요. 한국과 다르지요. 매스컴에 나가면 팔리는 게 시간문제이기 쉬운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아요."

이곳 전시장에서는 자주 그림 옆에 붙여진 초록색 딱지를 볼 수 있다. 구매자들이 마음에는 있지만 그림을 살지 말지 아직 결정 하지 못하고 고민 중이라는 표시로 붙이는 것이다. 구매 전까지 오래 고민하고 신중한 선택을 하는 그런 관객이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고 오정근은 말한다. 그림에 대한 애정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어느 전시회 때인가 자신의 작품을 사간 젊은 신혼부부를 떠올리며 그가 말했다.

"그때 내놓았던 작품 중에 제일 작은 그림을 사가겠다고 약속한 관객이었어요. 그 부부는 각자 매달 100유로씩 아껴서 모은 돈으로 1년에 그림을 한 점 씩 산다는 거예요.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그림 값을 좀 깎아주자고 화랑에 말했지요. 내가 받을 몫을 줄여도 좋다고 했어요. 그림이 나가는 날 일부러 나가서 그 부부를 기다렸다가 직접 전해주었어요."

ⓒ한민영

그는 자신을 '서성거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걷기도 하고 멈추기도 한다. 한 장소에 아주 오랫동안 머물러 있기도 한다. 응시하고 집중한다. 모든 사물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제 그림의 테마는 일상 속에 얼마나 아름다운 게 많은지 같이 보자는 것입니다. 나 혼자만 찾아낼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씩 마음을 기울일 줄 안다면 익숙한 것들, 별 관심두지 않았던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사실은 그거예요."

드넓은 전시장 벽면마다 오정근의 하늘이 활짝 열려 있었다. 영혼까지 담을 것 같은 깊이의 캔버스, 그 웅장한 아름다움은 세상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오정근의 하늘 그림은 서울에서 베를린으로, 그리고 세계의 모든 공간을 넘어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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