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다양한 쟁점이 제기되면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4대강 사업에 대한 후보의 입장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선택의 고민은 덜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 이 글에서는 4대강 사업과 아울러 논란이 되었던 경인운하에 대한 수도권 지자체 후보의 입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운하 찬성에서 반대로 : 지역 주민의 변화
경인운하 사업은 1980년대 굴포천 유역의 잦은 홍수 피해를 방지할 목적으로 일개 치수사업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서 당시 중앙 정부와 개발 공사에 포진된 토건 세력들에 의하여 경인운하 사업으로 바뀌게 된 것이 현재까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사업을 둘러싼 찬반 대립이 팽팽한 가운데 최근 들어 지역에서는 흥미로운 변화가 진행 중이다. 바로 경인운하 공사 구간인 계양구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이 10여 년 동안 견지했었던 경인운하 찬성 입장에서 반대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각종 규제 때문에 지역이 저개발된 상황에서 경인운하 건설이 유발할 지가 상승 등의 경제적 이익을 기대한 지역 주민들은 환경단체의 반대 운동까지 직접 나서 막을 정도로 열성적인 찬성론자들이었다.
하지만 경인운하 건설을 위하여 기존에 주민들이 이용하던 다리와 도로가 사라지면서 유발된 교통난과 이동 불편, 환경문제에 대해서 정부가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게 되자 주거 환경권을 이유로 반대 입장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지역 개발 사업에서 직접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입장이 바뀌게 된 것은 흔치 않은 사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들의 표심을 반영해야 하는 지역 정치인이 그간 자신이 앞장서 왔었던 지역 개발 사업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진퇴유곡(進退維谷)에 빠졌다는 점이다. 이렇게 지역 수준에서 나타난 균열은 운하 사업을 압박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기존의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과 운동은 지역보다는 전국적 수준에서의 운동과 비판에 치중하면서 지역 수준에서의 운동을 간과했던 점을 상기하면 이번 지방선거를 기회로 앞으로 어떻게 지역 수준에서의 운동을 만들어 내느냐가 4대강 사업 추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경인운하, '송영길 운하'야 '이명박 운하'야?
마는 한반도 대운하 논란 초창기부터 대운하와 같은 개발정치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순수하게 이명박 대통령의 아이디어 혹은 중앙 정부의 토건 세력들로만 환원되지 않는 지역 수준에서의 개발정치가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 것이라고 이미 여러 번 강조해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송영길 의원이다. 지난 대선에서 송영길은 민주당의 대표적인 '한반도 대운하 NO맨'이자 '경인운하 YES맨'이었다. 이 때문에 대선 이후에도 민주당은 당내 송 의원의 입지 때문에 한반도 대운하와 달리 경인운하에 대한 입장은 어정쩡했다. 이미 1990년대 경인운하의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로 거의 좌초된 상황에서 2002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경인운하 사업을 완전히 중단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지만 하루 만에 사업 중단 발표가 번복되었는데 바로 송 의원 덕분이었다.
"2003년 1월 노무현 정권 인수위원회의 리스트에 경인운하가 백지화 대상으로 올라와있었는데, 인천 계양구에 기반을 둔 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지역 발전의 명분을 내세워 리스트에서 빼버렸다. 송 의원은 이른바 386세대로 청와대 등에 포진한 실세들과의 친분을 이용하여 목록에서 빼버린 것이다."(임석민, 2009, 경인운하에 대한 정치·경제·사회적 비판, <동향과 전망> 76호, 298쪽)
나는 당시 인수위에서 경인운하사업 철회를 하루 만에 번복한 이유가 경인운하 사업 지역에 근거한 성장연합의 비공식적인 입김이 작용했다고 추측했었지만, 다름 아닌 송 의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줄은 몰랐다가 최근에서야 위 논문을 읽고서 알게 되었다.
지금이야 경인운하가 한반도 대운하의 첫 단추로 누구나 알고 있지만 대선 후보 시절 이명박은 낙동강과 남한강을 연결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면서 경인운하의 중요성을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러한 이명박 후보의 '무지'에 대해서 송영길 의원은 2007년 7월 2일 국회 브리핑에서 "맨땅에 파는 것이기 때문에 경인운하는 반대한다는 이(명박) 전 시장의 주장은 기초 사실도 파악이 돼 있지 않은 무성의한 모습"이라며 꾸짖었다.
이를 두고서 어찌 경인운하가 이명박 운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송 의원의 과거 선거홍보물에서 보듯이 송영길 운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야 송 의원도 섭섭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송 의원은 최근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아래와 같이 경인운하 사업 중단을 고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송영길 후보 선거 홍보물. |
"재검토 후 문제가 있으면 (경인운하 사업의) 주 사업 지역의 광역단체장으로서 정부에 중단 요구를 하도록 하겠다"며 "나름의 생각이 있어 찬성 의사를 밝혔는데 경인운하 사업이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는 오해가 커졌다, 물류에 있어서도 계산이 우리가 추경한 것과 수자원 공사에서 하는 게 차이가 발생했다" (<오마이뉴스> 2010년 4월 30일)
인수위 시절 거의 다 죽어가는 사업을 자신의 힘으로 살려놓고, 민주당이 운하를 통해서 한나라당과 선명한 대립각을 세우려는 것도 본인 때문에 어정쩡하게 만들어놓고, 이명박 정부가 경인운하 물류성이 타당하다고 주장할 때는 어떤 반응도 없던 그가 이렇게 파격적인 입장 변화를 취하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인천시장 후보 선정을 앞둔 지난 3월 11일, 인천환경운동연합이 경인운하를 주도해왔던 송 의원으로 야권 후보단일화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보다 큰 결정타는 앞서 소개한 자신의 표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지역 주민들의 입장 변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렸던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필자는 야권 후보까지 단일화된 마당에 송 의원을 선택하지 말고 대안으로 안상수를 뽑자는 걸까? 적어도 경인운하만을 볼 때 송영길은 안상수보다 일등공신이지만, 안상수도 경인운하를 지지해왔다는 점에서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이다.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송 의원이 지금까지 경인운하를 비판해왔었고, 한반도 대운하의 첫 단추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끼웠다는 점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 정도는 인천시장 후보로 나서기 전에 밝혔어야 한다는 거다.
위의 신문 기사처럼 태연히 "오해" 운운하면서 경인운하 사업과 자신이 상관이 없다는 먹튀 같은 행동은 지금까지 운하 사업의 심각성을 경고해왔던 학자, 시민단체, 언론에게 물 먹인 꼴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지금까지의 행보를 볼 때 설사 그가 인천시장으로 당선되더라도 경인운하 사업을 저지하는 데 얼마나 발 벗고 나설지 필자는 지극히 매우 회의적이다.
단순히 인천 시민뿐만 아니라 민주당 최고의원으로서 그가 중앙당에까지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같은 당 천정배 의원은 오죽 답답했으면 "경인운하는 나 몰라라 하면서 어떻게 한반도 대운하를 막을 수 있겠느냐. 경인운하 건설에 찬성하면서 한반도 대운하에 반대한다면 어떤 국민이 이를 납득하겠느냐"며 말했다)에서 국민들은 그의 행보를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인천시장이 된다면 제발 송영길 의원이 송영길 운하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가 되어주길 바란다.
경인운하, 김문수의 입장은?
경인운하사업을 추진한 가장 큰 추동력은 송영길 의원이지만 경인운하의 물길은 한강을 통하여 경기도와 서울까지 포함되면서 인천시장뿐만 아니라 경기도지사, 서울시장 후보들의 입장까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발언을 보자.
그는 2009년 6월 16일 한 간담회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직후 자신이 직접 찾아가 "너무 운하를 한꺼번에 해 국민들이 놀라니까 '대운하 5단계 추진 방안'을 제안했고, 1단계가 경인운하"라고 말하면서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해도 되는 거 아니냐면서 우선 경인운하부터 먼저 해보고 박수치는 사람이 많으면 그 다음 쉬운 것부터 하면 된다"고 친히 이 당선자에게 조언을 했다고 한다(<한겨레> 2009년 6월 17일).
이 기사만 본다면 이 대통령으로부터 확인할 길은 없지만 김 지사도 경인운하 사업 추진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보름이 지나서 2009년 7월 2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부천과 김포, 계양, 부평 등 상습 침수 지역의 침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굴포천 방수로 사업으로 17년 전부터 시작한 경인운하는 대운하와는 전혀 별개"라고 말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내 대운하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모든 국민들이 경인운하 추진에 힘을 보태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인용한 두 기사의 타이틀만을 비교하면 독자들은 김문수 지사가 경인운하에 대한 두 개의 자아를 갖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할 것이다. ("김문수 '경인운하는 대운하 사업 1단계'"(<한겨레> 2009년 6월 17일), "김문수 경기지사 '경인운하, 대운하와는 전혀 달라'"(<노컷뉴스> 2009년 7월 6일))
유명 사립대 교수조차도 몇 달 사이에 이명박 캠프로 옮겨지면서 운하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변한 것을 보았지만, 자신이 직접 대통령 당선자에게 한 조언을 보름 만에 번복하는 김 지사도 만만치 않다. 김문수 지사님 당신의 입장은 대체 '뭥미'?
끝으로 오세훈 시장은 시장 취임 초에 발표한 한강르네상스 사업에서도 한강의 주운 기능 활용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촛불 정국으로 운하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지면서 언론 인터뷰에서 운하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피력하면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다가 결국 경인운하와 연계하는 데 동참하였다.
이미 한강 르네상스 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은 취임 당시부터 존재했었다. 일례로 4년 전 서울환경연합에서는 한강 르네상스 사업 긴급 토론회를 주최했었는데, 나도 토론자로 참석하여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비판했었지만, 한 가지만큼은 칭찬해주고 싶었던 점은 당시 서울시 사업 담당자가 단순히 오세훈 시장이 임기 내에 사업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수십 년을 내다보고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힌 점이었다. 이후 오 시장의 발언을 통해서 그가 환경단체에서 활동한 이력을 떳떳이 내세울 만큼 전시행정에 대한 조바심과 과욕을 버렸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최근 오 시장의 행보를 보면 그 발언에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장기적으로 내다본다는 말은 시장 연임에 대한 욕망을 에둘러 말한 데자뷰였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한강을 파괴할 바엔 단임으로 짧게 환경을 망치는 것이 낫다. 일찌감치 김문수 지사와 오세훈 시장은 운하백지화국민행동으로부터 B급, C급도 아닌 4대강 사업 A급 찬성 후보로 뽑혔다고 한다.
정리하면, 지역에서의 반대 여론이 송영길 의원의 입장을 변화시킨 효과에 주목한다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떻게 지역 수준에서의 반대 여론을 조성하여 운하 찬성 후보들을 압박하느냐에 따라서 타 지역에서의 4대강 사업도 저지할 결정타를 날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시민사회에서 좀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경인운하를 사랑한 송영길과 오세훈 그리고 김문수. 가슴 아프겠지만 부디 그들만의 새드 엔딩으로 끝나도록 뒷심을 발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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