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다 함께 '커피 당의 수다쟁이'가 되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다 함께 '커피 당의 수다쟁이'가 되자"

[복지국가SOCIETY] 보편적 복지 가로막는 세 가지 걸림돌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지난 2년여 동안의 복지국가 활동을 통해 도출된 각종 연구 및 정책의 성과물을 모아 3월 8일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3월 15일에는 복지국가 운동의 취지에 동의하는 주요 정치인,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지도자, 주요 학자 등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함께 마련한 '복지국가 국민 제안대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그리고 주요 진보개혁 언론 매체들이 이날의 행사와 관련 기사를 크게 보도함으로써 역동적 복지국가 운동이 이 땅에서 진행되고 있음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국민들은 역동적 복지국가 운동의 필요성은커녕, 이러한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진보개혁 성향의 언론 매체를 유심히 읽어보는 독자들이 그리 많지 않고, 그저 스치듯 읽어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3월 15일의 '복지국가 국민 제안대회'가 끝났을 때, 여러 분들이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물은 적이 있었다. "이번 행사는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다음으로 무엇을 할 예정입니까?" 그때 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장은 조금 쉬고, 다음 달부터 지방으로, 밑으로 내려갈 작정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4월 초부터 지방의 '복지국가와 지방의제' 행사 기획에 들어갔다.

지난 4월 26일 제주에서 '복지국가와 6.2지방선거 시민의제 마련을 위한 대 토론회'를 제주지역의 대표적인 시민사회단체들과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이러한 형식과 내용의 토론회 또는 전진대회를 4월 28일에는 충북 청주와 대구에서, 5월 6일에는 부산에서 각각 개최하였다. 이 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하였던 지역의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 뿐만 아니라 공동 개최자였던 복지국가소사이어티도 이를 통해 우리의 한계와 함께 큰 교훈을 얻었다. 가장 뼈저리게 느낀 한계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일반 시민들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기존의 방식으로는 일반 시민과의 접촉면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많은 일꾼들이 '역동적 복지국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왔다.

우리나라가 역동적 복지국가로 전진하는 데 있어, 필자에게 고무적으로 다가온 것은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뿐만이 아니었다. 필자가 그 동안 행하였던 각종 '역동적 복지국가' 강연을 통해 만났던 분들은 가히 복지국가의 주체가 되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유아와 학생 자녀를 둔 평범한 중산층 주부들, 노동자와 그 가족들, 중등학교 선생님들, 병원 노동자들, 이 모든 분들이 역동적 복지국가의 지지자였다. 강연의 말미에 이들의 대부분은 장차 역동적 복지국가에서 살 수 있고 이러한 나라를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기꺼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세금을 더 내겠다고 대답했다. 필자는 보통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을 접할 때마다 큰 기쁨과 함께 역동적 복지국가 운동의 희망을 본다. '머지않은 미래에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열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품고, 이를 더욱 다지게 되는 것이다.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주창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는 인간의 존엄과 연대를 모토로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라는 네 가지 원칙을 기둥 삼아 사회구성원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국민의 집'을 짓자는 것이 핵심 논리이다. 이러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내용 중에서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장 크게 관심을 끄는 것이 '보편적 복지'이다. 지방의 시민사회단체 일꾼들은 한결같이 '보편적 복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보편적 무상급식 주장이 6.2 지방선거의 주요 의제로 등장하면서 벌어진 커다란 정치사회적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보편주의 무상급식이 이제 전국적 수준에서 진보적 시민사회의 공론이 되어 있음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6.2 지방선거의 과정을 통해 이를 유권자 운동으로 확산하는 일과 무상급식 의제를 넘어선 보편적 복지의 새로운 지평을 확대하는 일이 이미 시민사회의 주요 과제로 부상해 있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인간답게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하는데,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사회적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들인 아동수당, 질병급여,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이며, 다른 하나는 의료, 보육, 교육, 노인요양 등 일생에 걸친 사회서비스 제공체계의 확립이다. 이는 중산층을 포함하는 국민 모두가 복지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제도적 국가복지체계를 말하는데, 이러한 복지체계는 자신의 처지나 조건과 무관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물적 조건을 모든 국민에게 제공해 주며, 기회의 완전한 평등을 보장해준다. 이러한 보편적 복지는 모든 국민에게 삶의 안정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활력과 도전정신을 동시에 확보해주는 사회경제적 효과를 거두게 해 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최근 들어 보편적 복지가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나가는 데는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보편주의 무상급식 추진이나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같은 연구자 단체 또는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일정한 기여를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기여가 가장 중요했거나 결정적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최근 보편주의 복지 담론의 확산에는 '신자유주의'라는 양극화 성장체제가 일등공신이다. 경쟁지상주의, 시장만능주의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가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기 이전인 1997년 외환위기 전후 시기만 해도 보편주의 복지의 필요성이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으로 전혀 설득력을 얻지 못하였다. 그저 복지정책론의 좋은 이야기, 일부 교과서적 내용을 간주되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당시에는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를 어떻게 내실화할 것인지가 시민사회의 최대 관심사였고, 이러한 지향과 사회운동의 성과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복지, 소위 선별적 복지는 과거에 비해 크게 확충되었다. 사회양극화의 진행에 따라 선별적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절박함이 커진 탓도 있겠으나, 잔여주의 복지를 튼튼히 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옹호해야 한다는 지난 10년 동안 소위 민주정부의 온정주의도 큰 역할을 하였고, 이러한 정책적 흐름은 시민사회의 요구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므로 정치사회적 시너지를 크게 발휘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불우한 처지와 불안에 대한 제도적 처방이 크게 효과를 발휘하였음에도 사회 전체적으로 민생불안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민생불안의 문제가 서민과 중산층에게서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안정적 고소득자나 자산소유자를 제외한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일상생활 자체가 불안의 연속이다. 이에 대한 해법이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일 수는 없다. 하위 3% 국민이 선별적으로 수령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수급자가 되는 것이 그들에게 적합한 사회안전망이라고 여기는 서민과 중산층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민과 중산층에게도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은 보편적 복지가 사회적 시민권의 하나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일생을 통해 '사회적 기본소득'과 '사회서비스'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준다면, 일상화된 민생불안이 사라지게 된다. 불안에서 제도적으로 해방된 사람들은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도전하려는 기업가 정신으로 충만하게 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협력하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사회는 인적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수준이 높고 지식경제 체제에서 혁신적 경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넓고 깊게 진행됨에 따라 서민과 중산층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최근의 보편적 복지 담론의 확산은 어느 누구의 기여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라는 공동체 파괴적 자본주의가 초래한 정치사회적 결과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와 보편적 복지 담론의 대결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과정이며, 보편적 복지 담론의 정치사회적 승리는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체물, 즉 역동적 복지국가의 탄생으로 귀결될 것이다.

▲ 미국 의료제도의 끔찍한 현실을 고발한 영화 <식코>. 부자나 빈자나 똑같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누리는 스웨덴 모델과 비교하면, 미국 의료모델의 한계는 더욱 도드라진다. ⓒ프레시안
그런데 우리는 보편적 복지 담론의 승리를 위해 몇 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첫째, "가난한 자에게 복지를, 부자에게 세금을"로 상징되는 진보적 잔여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이는 계급주의 또는 근본주의 사상이 짙게 배인 것으로, 우리 현실에서 이들 진보진영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질 낮은 복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의료복지와 스웨덴의 의료복지를 비교해보면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명확해진다. 정부가 가난한 사람에게 무상으로 의료보호(메디케이드)를 제공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시장에서 의료를 구매하는 미국의 의료제도는 사회계층 간 의료서비스의 질적 격차가 심각하다. 이에 비해 중산층 보편주의 전략을 취한 스웨덴은 부자나 빈자나 똑같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요즘 들어, 노회찬 후보와 심상정 후보를 비롯한 거의 모든 진보정당의 후보들이 보편적 복지를 주창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전략적이든, 전술적이든 모든 진보개혁세력은 보편적 복지를 전면에 내세워야 하며, 이를 공통분모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둘째, 보편적 복지에 대한 '현실적 한계론'을 경계해야 한다. 예산의 제한이 존재하므로 우선 시급한 빈자들의 복지에 재원을 할당해야 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논리가 그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보편주의 복지는 실현될 수 없게 되고, 잔여주의 깃발만 영원히 나부끼게 된다. 예산의 제한 또는 고정을 전제하고 나면,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방식은 잘못된 것이 된다. 한정된 예산으로 5학년과 6학년 학생들 전체에게 보편적 무상급식을 하게 되면, 나머지 학년의 비교적 가난한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따져 묻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보편주의를 추진할 수 없게 된다. 일부 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보편주의를 하게 되면, 나머지 학년의 학부모들은 그들 자녀의 학년에도 보편적 무상급식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제도화됨과 동시에 재원 문제가 공론화될 것이다. 복지 혜택을 경험한 적이 없는 중산층에게 세금은 저항의 대상이겠으나, 그들이 직접 복지 수혜자가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보편주의 복지는 증세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도 분명히 해야 한다.

셋째, 보편적 복지 담론을 일반 국민들에게 전달할 통로가 거의 막혀있다. 형식적 언로는 열려있으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신자유주의 경쟁지상의 사회에서 시장적 방식으로 스스로 살아남는 데 여념이 없다. 매일 매일이 전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과 불안 극복 이외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고, 그럴만한 정신적·물리적 여유도 없다. 이미 지역사회나 공동체도 자본주도 시장의 지배 하에 무력해져 있거나 해체되고 말았다.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일반 시민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아무리 열심히 기성 권력의 비리와 문제를 파헤치고 고발하여도, 새로운 대안을 개발하고 제시하여도 일반 시민들의 귀에는 더 이상 들리지 않거나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경쟁지상,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지역공동체를 철저하게 개인 단위로 분할함으로써 진보적 복지국가 담론의 형성과 정치사회적 힘의 규합을 가로막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사회양극화를 초래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복지국가로 갈 수밖에 없는 필연적 환경인 민생불안을 심화시킴과 아울러, 동시에 자본의 힘 앞에 파편화되어 시장에서 스스로의 자구책을 경쟁적으로 강구하는 시장적 개인을 양산하고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갈 수밖에 없도록 하는 필연적 환경을 조성함과 동시에 복지국가 운동의 주체 형성을 제약함으로써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는 여정에서 양날의 칼인 셈이다.

그래서 지방으로, 아래로 보편적 복지 담론을 확산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매스컴을 통한 보편적 복지 담론의 대대적인 홍보가 있으면 도움이 되겠으나, 기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자유주의 시장의 파편화된 개인들을 연결하는 일은 이러한 매스컴의 홍보나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전통적인 활동만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 지역사회에서 수많은 종류의 일상적 대화, 즉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지역사회의 수다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수다 클럽'이 필요하다. 부녀회나 반상회에도 나가야하며, 보편적 복지를 말하는 수다쟁이가 되어야 한다. 동창들과도 만나야 한다. 사람들이 모인 모든 곳이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커피 당(coffee party)의 지부가 되도록 해야 한다. 역동적 복지국가를 꿈꾸는 우리 모두는 '커피 당의 수다쟁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3월 15일의 여의도 복지국가 제안대회 이후 필자가 지방의 복지국가 의제 대회를 다니면서 느끼고 배운 교훈이자 역동적 복지국가 실현 전략의 일부이다. 이것이야말로 생활 속의 복지국가를 위한 시민정치운동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풀뿌리 수준에서 일어나는 커피 당의 수다쟁이 운동이 더욱 확산되고 성공하려면, 이들의 복지국가 지향과 정치사회적 꿈을 받아 안아줄 전국적 수준의 정치세력이 크게 형성되어야 하며, 복지국가 세력의 집권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현재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가 일정하게 파급되어 있고, 역동적 복지국가 논리의 핵심 원칙인 '보편적 복지'가 6.2 지방선거의 주요 의제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복지 담론의 승리와 역동적 복지국가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밝지 못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동력이 모아지지 않은 이유도 있겠으나, 이에 못지않게 역동적 복지국가 정치세력의 부재 또는 분열된 진보정당들의 당선(집권)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최선의 노력으로 6.2 지방선거 과정에서 보편적 복지 담론을 확산하고, 지방선거 이후에는 더욱 본격적인 풀뿌리 커피 당의 확산과 함께 명실상부한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정치세력을 형성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만, 고통과 불안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넘어 사회구성원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역동적 복지국가 시대를 조속히 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