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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깨운 '양심' 이문옥, "감사원은 권력 하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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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한민국을 깨운 '양심' 이문옥, "감사원은 권력 하수인"

[인터뷰] 내부 고발 봇물 튼 지 20년…"부패에 맞서 싸워야"

내부 고발자. 몸담고 있는 조직, 혹은 외부의 부정 거래나 불법 행위 등의 정보를 신고하고 공개하는 사람. 공익 제보자, 휘슬 블로워(whistleblower), 딥 스로트(Deep Throat)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런 내부 고발자로 나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배신자', '역적' 등의 멍에를 평생 쓰고 살아야 한다. 조직에선 쫓겨나고 배신자로 낙인찍힌 내부 고발자를 다른 조직에서는 받아주지도 않는다.

20년 전 감사원의 감사 비리를 밝힌 이문옥 전 감사관 역시 그렇다. 당시 이문옥 전 감사관은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감사를 벌이다 로비 등으로 감사가 중단된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렸다. 그때가 1990년 5월 11일. 꼭 20년이 됐다.

이로 인해 당시 감사원과 정·관계, 재벌 기업 사이의 정경 유착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그런 사실을 알린 내부 고발자 이문옥 전 감사관은 감옥에 갇혀야 했다. 감사원에서도 파면되었다. 주위에서는 그를 '배신자'라며 조롱했다.

벌써 20년 전이다. 당시 상황을 이문옥 전 감사관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꼭 20년을 하루 앞 둔 10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이문옥 전 감사관이 60일 만에 석방된 뒤 가족을 만나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원까지 부패 만연, 묵과할 수 없었다"

프레시안 : 만나면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때 왜 감사원의 비리를 언론을 통해 공개했는가. 당시 분위기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며 넘어가는 분위기 아니었나.

이문옥 : 당시 조직의 배신자 등 불미스러운 말은 다 들었다. 하지만 공무원은 법을 집행하는 데 국민 다수를 위해 공평하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부패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건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상식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감사원은 공직 비리를 적발해서 처벌하고 예방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감사원까지도 이를 묵인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부패가 만연되고 있었던 것이다. 묵과하긴 힘들었다.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런 생각이 묘하게 날 지배했고 결국 하게 됐다.

프레시안 : 당시 내부 고발을 할 때 무섭지 않았나. 당시 시대가 엄혹한 시대이기도 했다.

이문옥 : 사실 무서웠다. 그때는 안전기획부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던 때였다. 모 월간지 기자도 반정부 성향 기사를 썼다가 테러를 당했다. 당시 내가 고발을 한 뒤 상황은 불을 보듯 뻔했다. 파면은 물론이고 감옥을 가는 건 당연했다. 연금도 반액으로 삭감되고 퇴직금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걱정된 것은 당시 중3과 고2인 두 딸이었다. 가장 민감한 시기에 영향이라도 미치게 될까봐 걱정이 컸다. 하지만 당시 난 좀 무식한 생각을 했다. '법은 믿을 수 없다, 역사가 나를 무죄로 만들 것이다.' (웃음) 이런 생각 말이다.

프레시안 : 법정 싸움을 상당히 오래 한 걸로 알고 있다.

이문옥 : 그때는 내부 고발 사건이 처음 있었던 때라서 세상이 정말 시끄러웠다. 나를 위해 변호사 60명이 무료로 변호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들이 내게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보자고 했다. 5월 11일 언론을 통해 감사원의 비리가 보도된 뒤 4일 있다가 구속됐다. 그때부터 온갖 소송이 시작됐다. 구속 적부심 심사, 보석 신청, 파면 처분 취소 청구 소송….

결국 모든 소송에서 내가 이겼다. 1996년 대법원으로부터 공무상 비밀누설죄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 파면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도 승소, 감사원으로 복직해 감사교육원 교수로 근무하다 1999년 정년퇴직했다.

"가진 자들은 부패를 좋아한다. 그리고 일반인은 가진 자를 부러워 한다"

프레시안 : 외국보다도 한국의 경우 내부 고발자에 대해선 차가운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도 별반 갖춰지지 못한 실정이다. 그렇다보니 아직까지도 내부 고발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왜 이런 상황이 됐다고 생각하는가.

이문옥 : 가진 자들은 부패를 좋아한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누굴 밟고 올라서야 하는데 그 힘은 부패에 있다. 문제는 다들 가진 자들을 부러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암묵적으로 부패를 용인한다. 그러면서 가진 자들끼리 서로를 챙기는 패거리 문화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것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힘없는 사람들만 죽어나는 것이다. 그나마 이러한 부패를 막고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부패방지법 같은 법 제도들이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 들어 감사원의 감시가 소홀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행정부와 기업 등에 견제의 역할을 해야 할 기구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문옥 : 그건 아니다. 어느 정권이고 다 한통속이다. 현 민주주의 제도에서 의회가 정부를 견제한다. 의회의 능력이 부족하기에 감사원을 둔 것이다. 감사원은 의회 밑에 있는 게 일반적이다. 대부분 나라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만 감사원을 행정부 밑에 두고 있다. 이례적이다. 이러한 제도를 바꿔야 한다. 독립을 하든지 아니면 국회 소속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

감사원에는 대통령 특별반이 있다. 그 정도다. 죽은 정권에겐 강하고 산 정권에겐 약하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완전 하수인이 된 게 감사원이다.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이 될 거 같다. 20년 전 내부 고발을 했던 때와 지금을 비교해서 사회가 투명해졌다고 생각하는가.

이문옥 : 우리나라 사람들의 명예욕은 대단하다. 벼슬 욕심이 엄청나다. 그것 때문에 윗사람들 눈치를 본다. 많이 좋아졌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런 근성들이 여전한 것을 보면 나아졌다는 게 보이지 않는다.

이문옥의 고발은…

1990년 5월 11일과 12일에 걸쳐 <한겨레>에는 단독 기사가 실렸다. '23개 재벌 계열사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비율이 43퍼센트로 드러났는데, 업계의 로비로 인해 감사원 조사가 상부 지시로 중단됐다'는 것.

당시 23개 재벌 계열사를 조사하던 이문옥 감사관은 부당한 압력에 항의하며 이 같은 내용을 언론에 제보했다. 이로 인해 당시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이 감사관이 실제 내용과 다른 자료를 언론에 유출해 정부 공신력을 떨어뜨렸다며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구속시켰다.

감사원은 문책성 인사에 대한 반발로 이 같은 내용을 누설했다며 이문옥 감사관의 도덕성 흠집 내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 감사관은 이에 굴하지 않고 구속적부심청구심에서 8대 의혹을 추가적으로 알렸다. 이 내용의 대부분이 사실임이 드러나면서 그간 이 감사관이 제기했던 내용도 사실로 믿어져 사회에 큰 파문을 만들었다.

이후 이문옥 감사관은 60일 간 구속된 뒤 보석으로 풀려났다. 6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1996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감사관은 1990년 <시사저널>, <동아일보> 등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또 경제부정고발센터 대표, 민주노동당 부대표 및 부패추방운동본부장, 공익제보자와함께하는모임 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진보신당 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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