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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건희 구속'이면 충분하다"

[삼성을 생각한다] "삼성 문제, 더 정교한 접근 필요하다"

김상봉 교수가 쓴 "제2의 '노무현'을 꿈꾸는가? 그럼, 삼성과 싸워라!"를 읽었다. 김 교수는 이 장문의 글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가슴 시린 추억을 '사랑'이라는 단어를 매개로 떠올린다. 김 교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많은 국민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은 이유를 현실의 악과 싸웠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노무현의 아류들과 노무현을 결정적으로 구별 짓는 기준이 바로 현실의 악과 모든 것을 걸고 싸울 수 있느냐 여부이다. 노무현의 아류들은 노무현이 벌인 싸움이 아니라 노무현의 스타일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김 교수의 지적은 탁견이며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갈구하는 정치인들이 늘 기억해야 할 지적이다.

김 교수는 노무현의 한계도 지적한다.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지역주의와 언론-구체적으로는〈조선일보>- 문제를 싸움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김 교수가 보기에 이는 패착이었다. 지역주의와 언론 문제가 분명 사소한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시대를 규정짓는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모순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가 보기에 새로운 시대를 규정짓는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모순은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 그것이 극단화된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이다. 김 교수는 이를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설령 지역 문제가 해소되고, 언론이 제정신을 차린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한, 이 땅에서 인간의 불행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것을 알기엔 너무도 순진한 사람이었다."

우리 사회를 옭죄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의 정점에 삼성이 군림하고 있는데도 노무현은 이를 간과한 채 고작(?) <조선일보> 따위와 결전을 벌였다는 것이 김 교수의 인식이다. 김 교수는 삼성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가 한국사회 모순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노무현에게 없었던 데다 더 나아가 삼성에게 투항한 순간 노무현의 운명은 비극으로 끝날 예정이었다고 본다.

한편 김 교수는 기업이 국가의 구성 요소-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하지 않다-에 머물고 있는 한 별 문제가 없다고 평가한다. 김 교수는 이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기업이 국가의 한 구성요소에 지나지 않는 단계에서는 기업이 독재적이든 아니든 시민의 정치적 자유는 지켜질 수 있다. 그 단계에서 시민들은 기업을 통해서는 경제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국가적 삶의 지평에서 보다 고차적인 정치적 자유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가 기업국가화 단계에 접어들면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는 것이 김 교수의 분석이다. 공산당 보다 더 한 독재원리로 무장한 채 이윤추구를 최고의 목표로 삼는 기업이 실질적으로 국가를 지배하는 상황은 김 교수가 보기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치명적 위협에 다름 아니다. 김 교수의 표현을 직접 인용해 보자.

"하지만 국가가 통째로 기업화되어 기업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면, 더는 시민들이 국가를 통해 정치적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왜냐하면 국가 자체가 기업에 의해 도구화되고 노예화 되어버려 국가 자체가 더 이상 시민적 자유의 현실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시민들은 이전까지 누리고 있던 정치적 권리 역시 제한되거나 빼앗기게 되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 활동이 실질적으로 불법화되고 집회와 표현의 자유가 갈수록 더 심각하게 위축되는 것은 단순히 대통령 한 사람을 잘못 뽑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나라가 본질적으로 기업에 의해 지배되는 기업 국가의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가 그토록 삼성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삼성이-보다 정확히 말해 이건희가-대한민국을 기업국가화하는데 첨병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존재가 삼성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이건희라고 평가한다. 문제는 이건희가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국민들로부터 선거를 통해 권한을 위임받은 사실이 없다는 사실이다. 김 교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민적 제(諸) 권리의 수호를 위해서는 대한민국을 기업으로 만들고 있는 삼성과 맞서 싸우는 것이 무엇보다 긴절하다고 호소한다. 김 교수가 보기에 2010년을 사는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사명 중 으뜸은 바로 삼성과 대결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만악의 근원인가?

위에서 살핀 것처럼 김상봉 교수는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간파하며 정치인들에게 노무현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의 악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라고 주문한다. 그 길만이 노무현처럼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김 교수의 분석과 주장에 대체로 동의한다. 필자 역시 대한민국이 기업국가화되는 현상을 경계하고 헌법에 규정된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이건희 일가와 가신그룹을 준엄하게 징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고 지대추구행위가 용납되지 않으며 독과점이 존재하지 않는 시장경제질서 하에서 이루어지는 기업들의 영리활동을 강하게 긍정하지만, 국가의 목표 및 구성원리는 기업의 그것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필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대 실수 가운데 하나가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원리 가운데 하나인 법치주의와 공정한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경제질서를 송두리째 유린한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을 그대로 둔 것이라고 평가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건희를 구속해 대한민국에 법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지난해 말 사면 받은 직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0'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 회장(사진 오른쪽). ⓒ뉴시스

물론 김 교수의 분석과 주장에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시대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모순을 신자유주의로 규정한 대목은 전혀 동의가 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정체 모를 괴물을 김 교수가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는 정확치 않다. 김 교수의 글 가운데 등장하는 민영화를 보건대 김 교수가 민영화를 신자유주의의 개념적 징표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는 것 같기는 하다. 신자유주의의 개념적 징표들을 나열해 보면 각종 정부 규제의 철폐, 민영화, 시장개방, 무역자유화, 고용유연화, 경쟁의 촉진, 사회보장제도의 축소 등이다. 언뜻 보기에도 확실히 어떤 정책은 나빠 보인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는 동안 한국사회를 괴롭힌 주범이 과연 신자유주의였을지는 의문이다. 김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그 사이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진 근본원인이 진정 신자유주의 때문이었을까?

그보다는 부동산 및 주식 불로소득의 편중으로 인한 자산양극화 및 부동산 가격 폭등, 기회(교육과 의료, 금융 서비스 등)불균등의 심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불공정 경쟁으로 인한 내수 시장의 위축 및 실업률 상승 등이 민주정부 10년 동안 한국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의 삶을 핍진하게 만든 원인들이 아닐까 싶다. 위와 같은 문제들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특권과 반칙이다. 신분제 사회에서나 횡행하던 특권과 반칙이 여전히 한국사회를 주름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근대 이전에 있다.

김 교수가 한국사회의 특수성에 조금 더 천착한다면 한국사회가 직면한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모순이 신자유주의가 아니고 특권과 반칙, 불공정성, 비정상성, 반/비합리성이라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 문제에 대한 보다 정교하고 효과적인 진단과 처방이 필요

삼성 문제에 대한 김상봉 교수의 문제의식은 그가 일전에 프레시안에 기고한 "지금 당장 '삼성 불매 운동'을 제안합니다""제2의 '노무현'을 꿈꾸는가? 그럼, 삼성과 싸워라!"에 잘 집약돼 있다. 필자는 이미 "삼성 해체가 답인가?"라는 글을 통해 삼성 문제에 대한 김 교수의 해법을 비판한 바 있다. 필자는 삼성 문제는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의 문제로 보는 것이 적확하며 이들을 처벌하고 이들에게 분수에 맞는 자리를 찾아주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가능케 할 강하고 선하고 의로운 국가를 구성해야 하며 이를 창출하고 유지시킬 각성한 시민들의 존재도 필수적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이 지배하고 있는 삼성이 한국사회 모순의 핵심 가운데 하나라는 것, 국가기구들을 사유화하고 있는 삼성이 기업국가화의 첨병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또한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을 징치할 강하고 선하고 정의로운 국가를 조직하기 전까지는 삼성 제품에 대한 소비자 불매운동이 삼성개혁을 위한 유효한 압박수단이라는 점에도 찬성한다. 더 나아가 시대는 삼성과 대결하는 정치인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다는 김 교수의 주장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삼성 해체를 주장하는 김 교수의 주장은 수긍할 수 없다. 이는 마치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을 제압해야 삼성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니 삼성을 해체하자는 주장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경제와 자본 혹은 기업일반을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삼성 해체 주장이 자연스럽겠지만 김 교수가 그런 입장에 선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삼성그룹도 해체될 수 있겠지만 이는 그룹으로서의 효용성 및 경제성, 더 나아가 국민경제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다.

김상봉 교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삼성 문제를 한국사회의 핵심 모순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게 하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이는 엄청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며 상찬 받아 마땅한 기여다. 다만 삼성문제에 대한 김 교수의 인식과 해법에 아쉬운 대목이 있어 필자가 악역을 자청할 뿐이다. 김 교수가 삼성 문제에 대해 보다 정확하고 현실적합성이 있는 진단과 처방을 내놓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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