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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양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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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양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라!

[홍성태의 '세상 읽기'] '잔인한' 4월을 보내며

중간고사를 본다고 고생한 학생들을 위로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요시토모 나라와의 여행>이라는 다큐 영화를 보여줬다. 사실은 전공의 연장선에서 보여준 것이었지만 아무튼 그냥 편하게 보도록 했다.

요시토모 나라는 냉소적이고 화난 표정의 여자아이 그림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화가이다. 2005년에 서울에서 큰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서울에서 열린 팬 미팅에 참석한 7살의 한 여자아이는 자기는 슬플 때면 요시토모 나라의 그림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팬 미팅이 끝나고 요시토모 나라는 동료에게 그 여자아이가 자기 그림을 가장 잘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그의 참으로 순수하고 진지한 표정,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애쓰는 그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준다.

춥고 아픈 봄날이 계속되고 있다. 잘 지내고 싶어도 잘 지내기 어려운 날들이 도무지 끝나지 않는다. 토마스 엘리어트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유명한 시구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엘리어트는 서구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이성의 몰락'을 외치게 했던 제1차 세계 대전의 황폐한 결과를 '황무지'라는 시로 노래했다. 전쟁의 파괴와 고통을 겪은 그에게 생명이 소생하는 4월은 오히려 '가장 잔인한 달'로 여겨졌다.

우리의 4월도 비슷하다. 한창 새 생명으로 빛나야 할 강들이 미증유의 파괴와 고통을 겪고 있다. 다이너마이트와 포클레인과 불도저와 트럭의 난장으로 생명의 강이 '황무지'로 파괴되고 있다. 그리고 만연한 토건 부패의 사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고, 성 접대까지 받은 뇌물 검사의 문제가 밝혀졌고, 경찰과 선관위의 관권선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강만이 아니라 나라 전체가 '황무지'인 것 같다.

엄청난 문제들이 계속 드러나고 밝혀지고 제기되고 있지만 제대로 논의도 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천안함 사고가 워낙에 큰 관심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과 한국방송(KBS)은 천안함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한 달째 계속하고 있다.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가족들의 안정을 위해서, 그리고 시급히 처리해야 할 여러 국가적 사안들을 위해서, 천암함 사고에 관한 모든 의혹이 하루빨리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천안함에 관한 모든 자료와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고 분석되어야 할 것이다. 부분적인 공개와 일방적인 분석은, 뇌물 검사의 진상규명위원회가 그렇게 되고 있듯이, 오히려 더 큰 의혹을 낳을 수 있다. 이 나라에는 수많은 예비역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있다. 천안함 사고의 원인 규명은 이런 사회적 사실을 유념하고 진행되어야 한다. 불통하고 밀통하는 태도가 아니라 투명하게 소통하는 자세로 원인 규명에 임해야 한다.

다행히 천안함의 함미와 함수가 인양되어 심층적인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곧 치러질 것이다. 전국 곳곳에 조문소가 설치되었고, KBS에서는 밤낮없이 조문 현황을 보도하고 있다. 수십 명의 젊은 군인들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으니 천안함 사고는 정말 큰 사고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그 원인에 대한 의혹은 낱낱이 밝혀져야만 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북한의 공격에 의한 참사라면서 북한에 대한 전쟁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전쟁은 수십 명이 아니라 수십만 명, 수백만 명,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그러니 전쟁은 사실 어떤 경우에도 피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원인을 한 치의 의혹도 없이 완전히 밝혀야 한다. 지금처럼 의혹이 큰 상황에서 전쟁을 주장하는 것은 절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4대강 죽이기를 강행하는 것처럼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일 수 있다.

나는 천안함 사고와 관련해서 세 가지 사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무엇보다 그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천안함이 침몰하게 되었는가, 침몰과정을 찍은 동영상은 과연 없는가, 정보의 전달과 공표에서 왜 그렇게 많은 문제가 발생했는가, 최첨단 장비를 갖춘 군함이 왜 함미를 발견하지 못했는가 등의 문제들이 모두 밝혀져야 한다.

둘째, 누구의 짓인가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만일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면, 전쟁은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합당한 조치가 반드시 취해져야 할 것이다.

셋째, 징병제와 불평등의 문제에 대한 폭넓은 논의와 철저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나라에서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엄청난 불평등의 원천이 되고 있다. 칼레의 시민들이 보여줬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이 나라에서는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매년 많은 젊은이들이 군에서 의문사와 사고사를 당하고 있으니 징병제의 기반이 심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 요시모토 나라는 화난 표정의 여자아이 그림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화가이다.
수많은 국민들이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으니 천안함 사고의 진상은 머지않아 드러나게 될 것이다. 김효석 의원의 주장대로 양심선언이 잇따를지도 모른다. 미국과 중국에서도 조사 결과를 발표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희생자들이 되살아날 수는 없지만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따라서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조치도 제대로 취해질 수 없게 된다면, 이 나라는 정말 '황무지'로 질주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쟁을 해야 한다는 무서운 선동이 아니라 투명한 소통의 방식으로 진상을 제대로 밝히고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슴에는 깊은 추모의 마음을 담고 머리로는 진상의 규명과 대책의 마련을 냉철히 감시하고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천안함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최상의 예우를 갖춰서 대우하면서 금양호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다시피 하고 있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천안함 희생자들은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다가 희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금양호 희생자들은 군인의 보호를 받으며 평화롭게 살아야 하는 민간인들이었다. 천안함 희생자들이 전사한 것이라면, 그들을 구하다가 희생된 금양호 희생자들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전투에 참여했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민간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다가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은 것이 금양호의 희생자들이 아닐까? 금양호 희생자들에게 천안함 희생자들보다 더 높은 예우를 해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천안함 희생자들과 금양호 희생자들을 함께 조문하고 장례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요시토모 나라는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면서 냉소적이고 불만에 찬 표정의 여자아이 그림을 더 이상 그리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대신에 좀 더 따뜻하고 명랑한 여자아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어느 것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변화는 좋은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모든 변화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작가에게 변화는 아마도 언제나 좋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춥고 아픈 봄날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이 나라에서는, 토마스 엘리어트의 '황무지'가 새삼 의미심장하게 읽히는 지금 이 나라에서는, 요시토모 나라의 예전 그림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같다. 4대강 살리기를 내걸고 강행되는 4대강 죽이기, 토건 부패 자치, 뇌물 검사, 정치 검사, 관권 선거, 전쟁 선동, 무시되고 있는 금양호 희생자 등 냉소와 불만의 대상이 참으로 길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희생자들과 금양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가족들에게 깊은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이런 모든 문제들이 하루속히 해결되어 이 나라가 부디 따뜻하고 명랑한 나라가 되기를 염원한다. 주권자인 우리 자신이 따뜻하고 명랑한 변화의 주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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