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등 이명박 정부 제1기 경제팀이 다시 요직에 오르면서 1기 경제팀 수장이었던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에 힘이 한층 실리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747정책'을 입안했던 이들이 정책 실패를 책임지고 물러났다 2010년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강만수 특보와 그의 정책노선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이 확인된 셈이기 때문이다.
2008년과 2009년 세계경제위기의 여파로 침체됐던 경기가 2010년 다소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컴백한 '747 경제팀'은 2008년 실패했던 정책을 다시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저금리, 부동산 경기 부양, 고환율 정책 등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 조합들이다. '실세'임이 거듭 확인된 강만수 특보는 27일 자신의 정책노선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경제학자들을 "최근 논문은 읽지 않고 40년 전 이론을 갖고 비판한다"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강만수 인용한 '맨큐 칼럼'은 오류 지적된 칼럼
강 특보가 이런 과감한 주장을 한 근거는 <맨큐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의 2009년 12월 13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이다.
강 특보는 이날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 감세 정책에 대한 맨큐 교수의 주장이라면서 "세금을 1달러 깎으면 국내총생산(GDP)가 3달러 늘어난다고 한다"며 "경기를 살리는 가장 좋은 수단이 감세"라고 강조했다.
강 특보는 이어 "일부에서는 케인즈의 이론을 들먹이면서 세금 1달러 깎아봤자 GDP가 99센트 밖에 안 늘어난다고 한다"며 "강만수가 경제학 교과서도 모른다고 비난하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측의 이론이 40년 전 이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 나온 논문은 읽지도 않고 정책을 비판한다"며 "그렇게 해도 석학으로 대접받는다"고 자신이 2008년 단행한 대대적인 감세정책을 비판하는 학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감세정책을 비판하는 경제학자들을 "무식하다"고 비판한 것은 강 특보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도 마찬가지 주장을 했다. 다만 차이점은 당시에는 별 근거 없이 비난하다가 이번엔 맨큐 교수의 주장이라는 근거를 찾아낸 것.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날 강 특보가 감세정책을 비판한 학자들을 "최근 논문을 읽지도 않는 석학"이라고 깎아내리는 근거로 제시했던 맨큐 교수의 칼럼은 이미 오류가 지적된 글이다.
엄밀히 말하면 "세금을 1달러 깎으면 GDP를 약 3달러 증가시킨다"는 주장은 맨큐 교수의 연구 결과가 아니다. 크리스티나 로머 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 남편인 데이비드 로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와 공동 수행한 연구 결과를 맨큐 교수가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맨큐 교수는 로머 부부의 연구 결과를 왜곡 인용해 "감세가 재정지출보다 효과가 크다"는 주장을 했다. 로머 부부의 연구는 감세가 아니라 '증세 효과'에 대한 연구이며, 연구 결론은 "1달러 증세는 GDP를 3달러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증세와 감세가 반대말이지만 증세 효과를 뒤집으면 감세 효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맨큐 교수의 주장은 틀렸다.
부시 정권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맨큐 교수
또 맨큐 교수의 주장은 특정한 정치적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강 특보는 이런 배경에 대해선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맨큐 교수의 주장을 근거로 자신의 '유식함'과 감세를 비판하는 경제학자들의 '무식함'을 강조하려 했지만, 이런 배경에 대해 강 특보가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배제해 원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맨큐 교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다. 맨큐 교수는 케인즈학파의 주장도 일부 수용했다고 하지만, 그의 이론을 관통하는 것은 시장과 국가를 적대적 관계로 놓는 신고전주의 주류 경제학이다.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 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신고전주의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신자유주의가 태동했다. 이런 이유로 맨큐 교수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부시 정권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하지만 부시 정권 임기말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맨큐를 비롯해 부시 정부의 경제정책을 디자인했던 우파 경제학자들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반면 '시장의 실패'를 예견했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 케인즈학파들은 이번 경제위기로 주목을 받게 됐다. 맨큐 교수의 주장은 감세보다 재정지출이 효과가 크다는 케인즈학파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특히 맨큐 교수는 크루그먼 교수와 각자의 블로그를 통해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민주당 지지자인 크루그먼 교수가 오바마 대통령 당선 후 경제팀 인선과 관련해 "엉터리 인물들이 가고 뭔가 할 줄 아는 인물들이 온다"고 평가하자, 부시 정권에 관여했던 맨큐 교수가 "부시 행정부 때 등용된 경제학자들의 수준이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발끈했었다. 이후 맨큐 교수는 날을 세워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대해 날을 세워 비판하기 시작했다.
강만수, 환율 문제에선 "미국에서 배운 경제학으론 안 돼"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대목은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맨큐 교수의 입장을 근거로 자신의 감세론을 옹호하던 강 특보가 환율 문제에선 180도 다른 입장을 보인 점이다.
강 특보는 "환율에 대해 확실히 얘기하고 싶은 것은 미국에서 배운 경제학만으로 다룰 수 없다는 점"이라면서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그는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외환시장은 전체의 1%다.1%를 전제로 시장을 논의한다"며 "99%는 투기적 요소가 있는데 시장에 맡기겠다고 하면 안 된다.환율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환율주권론을 폈다.
강만수 특보와 최중경 수석은 강경한 '환율주권론자'다. 이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고환율 정책'을 쓰다 '제2의 외환위기' 직전의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물론 환율 문제에 있어 한국과 미국이 다르다는 지적은 맞다. 문제는 환율주권론을 주장하기 위해선 그에 따른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의 이동을 일정정도 정부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환율제도를 완전자유변동제로 바꿨다. 아시아에서 완전자유변동제인 나라는 한국, 일본, 필리핀 뿐이다. 기본적으로 시장에 환율을 맡기는 완전자유변동제를 쓰면 환율변동폭은 커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이 이 환율제도를 쓰게 된 것은 IMF의 압력 때문이다.
정부가 환율을 일정정도 통제할 수 있는 관리변동제로 가자는 주장은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 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 등도 주장하고 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환율고정, 통화정책의 자율성이라는 세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는 게 '개방경제의 트릴레마'다. 자본시장을 열어놓은 채 '환율주권론'을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환투기 세력에게 먹이감을 던져주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강만수 "한국만 강물 더러워 요트 안 타"
한편 강 특보는 이날 4대강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독특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는 "4대강 사업이라는 것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종합사업인데 토목사업으로만 본다"며 "강에 자전거 도로가 생기고 요트산업이 생기고 관광지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으면서 요트 안 타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강물이 더러워서 요트를 안 탄다"며 "4대강 사업을 통해 서비스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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