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거시경제의 한축을 책임지고 있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입을 열었다. 19일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통해서다. 김 총재는 이날 "부동산 가격의 큰 변화를 가져오는 정책은 곤란하다"고 밝혔다. 부동산 가격을 더 떨어뜨릴 수도 있는 금리 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부동산 시장을 떠받쳐줄테니 불안감을 떨치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시장에 보낸 셈이다.
김중수 총재의 발언으로 정부가 금융규제 완화 등 추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김 총재는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2008년 세계경제위기로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은 모두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통해 부동산 경기 부양에 성공했던 전력이 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든 떠받치려 하는 것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현 시점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중간평가라고 할 수 있는 6월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어 더 절실한 문제다.
김중수 "가계부채, 늘어도 문제 줄어도 문제"
▲ 김중수 한은 총재 ⓒ뉴시스 |
김 총재는 733조7000억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에 대해서도 "빚이 늘어도 문제이고 줄어도 문제"라며 "경제는 동태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변화에 민감해야지 레벨(수준)에 민감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연 2.0%라는 사상 최저금리를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자본 이득에 대한 기대는 줄었지만, 일본처럼 (부동산값이) 떨어진다고 보는 건 이르다"며 과거 1980년대 일본식의 버블 붕괴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총재는 이날도 국제공조와 정부와 정책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삼성전자는 (정부가) 아니지만 한은은 큰 틀에서 정부이며, 행정부는 아니지만 광의의 정부가 아니라고 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 정책과 공조를 강조하는 김 총재 입에서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서는 곤란하다는 발언이 나옴에 따라 LTV, DTI 규제 완화 등 추가적인 규제 완화 정책이 나올지 주목된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와 관련해 건설업계에서는 금융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 김중수 총재를 포함한 '강만수 경제팀'에서 지난 2008년 연일 부동산 규제정책을 풀어 금융규제를 제외하곤 별다른 정책 수단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강만수 경제팀', 2차 부동산 경기 부양도 성공할까?
현 시점에서 정부가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게 적잖은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최근 집값 하락에 대해 "부동산 시장은 거시경제 위에 얹혀 있는 구조물"이라면서 "거시경제 상황에 따라 정부 정책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집값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 거시경제 상황에서 저금리와 규제완화 등 부동산 투기를 부추길 수 있는 정책 수단을 쓸지라도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 한국의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PIR, Price to Income Ratio)은 2008년말 현재 6.26으로 미국(3.55), 일본(3.72)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다는 점에서 부동산 거품이 어느 정도 빠지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가 대신 다른 변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한은 총재가 지금 부동산 가격을 쳐다볼 때가 아니다"면서 "김 총재가 말로는 국제공조를 강조하지만 사실 세계화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한은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이 금리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라면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게 되는 순간 한은이 그에 걸맞게 금리를 빨리 올릴 수 있느냐. 보조를 맞추려면 금리를 급격하게 올려야 하는데 그러면 부동산 시장이 완전히 무너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래서 지금부터 금리를 서서히 올려야한다"면서 "0.25%씩 서서히 올리는 방식을 통해 외부 충격에 반응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렇게 저금리 상태로 계속 있다가 해외에서부터 금리가 올라가는 상황이 오면 한국경제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정부가 강조하는 국제공조에 대해 "한국경제가 올해 물가상승률 3%, 경제성장률 5%를 전망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물가상승 0%, 경제성장률 2-3% 바라본다"면서 "그렇다면 한국이 금리가 훨씬 더 높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 9%를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각 나라가 처한 경제상황이 다른데 미국 금리가 낮으니까 그 금리를 쫓아가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부활한 70년대 마인드, 저금리-고환율의 불가능한 조합 고집"
홍 교수는 2010년 들어 다시 부활한 강만수-최중경-김중수 경제팀이 70년대식으로 경제를 인위적으로 끌고 가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도 대기업 간부로 경제일선에 있었던 1970년대에는 금리가 낮으면 무조건 좋았다"면서 "하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개방경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금리가 낮으면 외환시장이 요동을 칠 수 밖에 없다"며 "그런데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 또 수출이 잘돼야 하니까 환율을 올려야 한다. 금리는 낮추고 환율은 올리는 불가능한 조합을 고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환율안정, 통화정책의 자율성이라는 세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는 게 '개방경제의 트릴레마'인데, 부활한 강만수 경제팀은 또 이 불가능한 조합을 잡겠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결국 정부가 또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냐"고 우려를 표명했다.
홍 교수는 현재 부동산 시장이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도 2008년 강만수 경제팀의 인위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8년에 다른 나라들이 부동산 버블이 빠질 때 같이 빠져 줬어야 했다. 그때 빠졌으면 상황이 이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부가 경제 회복의 증거 중 하나로 삼는 주가 상승에 대해서도 "반드시 좋아할 일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자본이 들어오고 우리 주가가 오르면 경제가 좋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70년대 사고 방식"이라면서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전망이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리스크 분산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2008년처럼 국내 금융시장에 유입된 외국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다시 한 번 크게 출렁일 수 있다는 점도 염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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