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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위독해 병원 달려가자 "무단 이탈!"…비정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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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위독해 병원 달려가자 "무단 이탈!"…비정한 학교

[인터뷰] 여성 비정규직의 눈물…"남편 사별 뒤 학교와 소송 중"

서울 양천구 소재 S고등학교에서 교무실 사무보조원으로 일하는 방은정(38) 씨. 학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다. 그는 만나자마자 "요즘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고용 불안, 저임금, 부당 대우 등 비정규직의 서러움이야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기에 예전부터도 어렵게 일해 온 그였다.

하지만 그가 최근 겪고 있는 일은 도가 지나치다. 현재 그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와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 27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첫 재판이 열렸다. 그래서일까.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얼굴은 시종 굳어 있었다. 자신의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면 눈물이 책상 위에 뚝뚝 떨어졌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었다. 자신이 일하는 직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소송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출산 휴가 내자 해고하겠다고 경고, 결국 호봉 동결

이야기는 2002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소재 중학교에서 학교 사무보조원으로 일해 온 방 씨는 그간 경력을 인정받고 S고등학교에 학교 회계 직원으로 채용됐다. 당시 경력의 70퍼센트를 인정받아 5호봉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전 직장에서 회계 업무로 6년 1개월을 근무했다.

근무 첫 해는 별 탈 없었다. 하지만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학교와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방 씨는 출산일이 가까워오자, 출산 휴가를 신청했다. 그러자 학교에서는 출산 휴가 기간 동안 진행된 호봉 승급 심사에서 방 씨를 제외한 다른 직원의 호봉을 올리는 조치를 취했다. 당연히 방 씨는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부당하다고 항의를 하자, 이번엔 해고라는 카드로 방 씨를 압박했다. 힘든 일은 겹쳐서 온다는 말이 맞았다. 건강하던 남편이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도 이 때였다.

ⓒ방은정

학교와 끊임없이 마찰이 있는 와중에 남편 병수발을 들어야만 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방 씨가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조퇴하거나 잠깐 자리를 비우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두 아이를 돌보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상황이 매우 안 좋아져서 빨리 1인실로 옮겨야 될 거 같다"는 병원 측의 전화를 받았다. 학교에서 일하던 그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남편의 악화된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니 정신이 아득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학교에서는 "무단 이탈을 했다"며 방 씨에게 경고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1인실로 옮긴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탈상 날조차 휴가를 내지 말라고 강요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당장 남편 병원비로 진 빚과 두 아이를 키울 길이 막막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일까. 방 씨의 이러한 딱한 사정을 안 S고 교사들이 해고를 강력히 반대했다. 이로 인해 해고는 겨우 면했지만 대신 학교에서는 방 씨에게 호봉 상한제를 적용했다. 이후 방 씨는 해가 지나도 여전히 5호봉 월급을 받아야 했다.

노동부, 방 씨의 호봉 상한제를 놓고 시정 명령 및 밀린 임금 지급 명령

결국 2007년 10월 5일, 방 씨는 2002년부터 5호봉으로 묶여 있는 게 부당하다며 호봉과 체불 임금에 관한 진정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다. 노동부는 방 씨의 손을 들었다. 그해 11월 28일, 학교에 밀린 임금과 호봉을 정정할 것을 지시했다. 법적인 규칙이나 근거 없이 방 씨의 호봉을 누락시켰다는 판단에서였다.

학교도 노동부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학교는 5호봉에서 10호봉으로 호봉을 승급했을 뿐만 아니라, 그간 호봉을 올리지 않아 받지 못했던 금액 700여만 원을 지급했다. 2008년 호봉 승급 심사에서도 방 씨의 호봉은 11호봉을 적용받았다. 이렇게 모든 게 잘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학교의 탄압은 심해졌다. 특히 2006년 9월 부임한 S고등학교 P교장은 방은정 씨와 여러 차례 부딪쳤다. 교장은 교직원 회의 시간에 방 씨의 임금이 학교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며 방 씨 연봉을 공개하기도 했다. 문제는 방 씨의 연봉은 20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데 3400만 원이나 된다고 발표했다는 점이다.

방 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인권위는 학교장이 허위로 연봉을 발표한 것은 사생활 비밀을 침해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주의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학교장은 개의치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2008년에도 승급되던 호봉이 2009년도에는 누락됐다. 12호봉으로 올라야 하지만 그대로 11호봉으로 유지된 것. 또다시 노동부에 진정서를 넣었고 노동부는 시정명령과 함께 기소 의견으로 서울남부검찰청으로 이 사건을 넘겼다. 노동부가 검찰청에 기소 의견을 내는 건 흔치 않다.

검찰 조사에서도 교장이 문제가 있음은 드러났다. 검찰은 "호봉을 승급시켜야 함에도 승급시키지 않은 상태로 임금을 지급한 점은 근로기준법위반으로 피의사실이 인정된다"면서도 교장이 초범이고 체불임금액이 소액인 점 등을 들어 기소를 유예했다.

학교, 경력 인정할 수 없다며 그동안 받은 월급 중 1700만 원 환수 조치

교장은 방 씨에게 "야, 너" 등의 반말은 기본으로 했다. 복도에서 인사를 하면 마치 투명인간인 것처럼 무시하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한 때는 직원을 시켜서 잡담 시간, 퇴근 시간 등을 일일이 체크하기도 했다. 교직원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메신저도 방 씨에겐 쓰지 못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항상 학교에 오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불안해하는 방 씨였다.

ⓒ뉴시스
자궁근종으로 수술도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신경정신과 치료도 받아야 했다. 밤이면 불면증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는 근무 도중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일들이었다.

하지만 방 씨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9년 7월, 학교에서는 방 씨에게 한 통의 내용증명을 보냈다. 내용인 즉, 2002년도 입사 당시부터 인정해주었던 경력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11호봉에서 8호봉으로 호봉을 삭감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방 씨가 경력을 속였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학교는 그동안 임금이 과 지급됐다며 1700여만 원을 도로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2002년부터 지급받은 금액 중 경력을 인정받아 받은 호봉 금액만큼을 내놓으라는 것. 하지만 방은정 씨는 "학교에서 말하고 있는 경력을 속였다는 부분은 내가 작성한 게 아니라 전 직장에서 발급한 것으로, 그곳에서 직급을 틀리게 발급했다"고 설명했다. 전 직장에서는 방 씨의 직급을 '학교회계직, 기능직, 육성회직원' 등 문서마다 다르게 발급했다.

방은정 씨는 "유사 경력은 반드시 전력 조회를 하게 돼 있지만 학교에서는 이를 하지 않고 있다가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를 한 뒤 호봉을 삭감한 것은 보복성 조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방 씨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내용증명을 보낸 다음 달인 8월부터 학교는 임금에서 80만 원을 공제하고 있다. 그의 월급에서 80만 원을 제하면 77만700원이 남는다. 이것은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이다.

그나마 학교장이 2009년 국정 감사에서 모든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조건으로 질의를 받지 않고 돌아온 뒤인 11월부터는 최저생계비인 114만 원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당뇨병으로 지병이 앓고 있는 친정어머니를 돌보고 두 아이를 키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4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136만300원이다. 결국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리고, 대출을 받아 겨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돈 없어 방 씨, 국선 변호사 통해 소송 vs 교장은 학교 예산으로 법정 대응

방 씨는 학교가 2009년에 12호봉으로 올려야 되는 걸 11호봉으로 동결시킨 게 부당하다며 서울 남부지법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진행한 호봉 정정에 관련해서는 방 씨와 비슷한 사례로 소송 중인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의 재판이 끝나면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하지만 변호사 비용이 없어 방 씨는 국선 변호사를 선임했다.

반면 교장은 학교 예산으로 노무사와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고 있다. S고등학교는 줄줄이 이어지는 소송 때문에 2009년에는 자문용역비, 즉 변호사비와 노무사비로 1276만 원을 사용했다. 애초 864만 원을 책정했다가 600만 원을 더 책정했다. 2010년에도 1656만 원을 책정했다. 방 씨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학교 운영위원 중 한 관계자는 "학생과 교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예산이 쓸데없는 곳에 낭비되고 있다"며 "교장의 잘못된 판단으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은정 씨는 "교장은 만약 1심에서 진다하더라도 대법원까지 갈 거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며 "하지만 그때까지 학교와 싸울 수 있을지도 걱정"이라고 했다. 4인 가구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으로 학교일 하랴, 집안 일 하랴, 아이들 돌보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방 씨이다.

하지만 학교 측 입장은 단호하다. 학교 측 관계자는 "적법한 기준에 따라 (호봉을) 조정했을 뿐"이라며 "인사 규정에 따라서 적용해야 할 것을 사전에 숙지하지 못한 관계로 이제야 적용하게 됐다"고 호봉 조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학교회계직원 인사관리규정을 보면, 학교회계직원의 보수는 지방공무원보수규정에 따른다고 돼 있다"며 "이에 여기에 있는 '일반직공무원 등의 경력환산율표'에 따르면 사립학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 사람은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 걸로 돼 있다"며 "방은정 씨의 경우 비정규직으로 일했기 때문에 경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학교 측 관계자는 노동부의 시정 명령을 두고도 "노동부의 판단이 그럴 뿐"이라며 "법원에서 사실을 가려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에서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리기엔 방은정 씨의 상황은 열악하기만 하다. 방 씨는 "변호사비 조차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학교가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다른 직장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딱히 갈 수 있는 곳도 없는 상황이다. 식당일이나 청소일이 전부다. 이런 일을 하면서 아이들까지 돌보기는 육체적으로나 금전적으로도 힘들다.

하지만 방 씨는 아이들만은 앞으로도 밝게 자라길 바라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올해 10살인 큰 아이는 아버지 없이 컸지만 구김없이 자랐다. 공부도 잘해 이번에 반장까지 했다. 임원 활동을 해야 하는데 변변한 거 하나 해주지 못하는 게 방 씨는 못내 미안하다.

방 씨는 아이들을 이야기하며 시종 눈물을 흘렸다. 언제쯤 이 눈물이 그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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