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장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실토했다. 불과 두달 전인 지난 연말에만 해도 고용장려세액공제제도는 효과가 없다고 강력하게 반대하던 기획재정부가 입장을 바꾼 이유를 질문하자 영혼론을 들먹인 것이다. 취임시에 공무원도 혼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 당사자였기에 더욱 이채롭다. 윤 장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3월 26일에는 '자동화나 생산성 향상 설비처럼 결과적으로 고용을 줄이는 기업투자에 대해서는 앞으로 세제혜택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두 사건은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시대의 변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윤증현 장관은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작년 말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가 재계의 반대에 부딪혀 다소 범위를 축소한 채 유지되었다.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는 임시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제도가 도입된 28년 동안 20년에 걸쳐 시행해 온 상설에 가까운 제도다. 당을 가리지 않고 많은 국회의원들이 재계의 요구에 호응해 제도의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경제관료들은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통제하기 위해 폐지하기로 했다가 이런 재계와 정치권의 요구에 굴복했다.
필자는 지난 연말부터 투자세액공제를 폐지하고 고용세액공제로 대체하자고 여러 차례 제기하고 있다. 필자 이전에 그 중요성과 의미를 강조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진보진영에서도 이런 방식의 고용촉진에 관한 논의는 많지 않았다. 필자가 저작권을 주장할 생각은 없다. 새로운 것도 아니고 연구자들이면 한번 쯤 들어봤을 정책이다. 또 좋은 경제정책은 아무나 가져다 쓰면 될 뿐이다. 다만 이 정부 어디엔가 (분명 기획재정부나 한나라당은 아니다) 진보적 정책까지 과감히 갖다 쓰고자 하는 세력이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고용세액공제제도는 미국식 기준에 따라도 좌파 정책이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좌파척결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정부 내의 이 불순한 세력을 왜 내버려 두는지 알 수 없다.
70년대 사고방식이 보지 못하는 것
그럼에도 이 정부의 전체적인 상황판단은 엉뚱하다. 만약 4대강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 20조원을 이렇게 고용세액공제에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보자. 막대한 토목공사를 하면서 고용을 늘리기 위한 부수적 목적을 계속 거론한다. 그렇지만 현대의 토목공사는 70년대와는 다르다. 공사 현장에 노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고용은 늘지 않지만 4대강 공사를 고집하는 대통령을 말릴 수도 없고, 그러니 고육지책으로 이런 고용세액공제제도를 도입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70년대에 한국에는 자본이 없었다. 그러니까 자본만 투입하면 엄청난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고, 필요한 자본이 모자랐기 때문에 상당 부분 노동으로 대체했다. 자본은 비싸고 노동은 쌌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자본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고용도 늘어났다.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외국자본이 물밀 듯 들어오는 상황에서 자본은 이미 넘치고 있는 반면 문제는 자본을 투하해서 저금리조차 회수할 수 있는 투자처가 많지 않다. 언론에서 자영업자가 포화상태가 되어 수익을 낼 수 없다고 보도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자영업자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마찬가지이고, 대기업조차도 엄청난 돈을 쌓아 두고서도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이 간단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는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미소금융에서 알 수 있다. (이것도 참여정부 당시 한나라당이 좌파정책이라고 극력 반대하던 것인데 이명박 정부가 대규모로 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유누스 교수가 그라민뱅크를 설립해서 성공한 배경에는 높은 투자수익률이 있다. 한국의 70년대에 우리도 돈만 있으면 높은 수익을 올릴 가능성이 높았고, 그래서 싼 은행 돈을 공급받은 재벌이 빠르게 성장한 것도 같은 이치다. (싼 은행 돈을 빌려주면서 옵션을 걸어두었다면 재벌이 저렇게 후안무치한 행동은 하지 않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2010년 대한민국은 방글라데시도 아니고 70년대 한국과도 다르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시대가 아니다. 예금의 실질 이자율은 (-)까지 내려가 있다. 이자율도 싸고 돈은 넘치지만 돈을 빌려서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저소득층에게 돈을 빌려주면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미소금융은 효과를 내기 어렵고, 그런 미소금융에 은행과 기업의 팔을 비틀어 출자하게 한 것은 한심할 따름이다. 미소금융은 전문 시민단체에게 소규모로 하도록 일임했어야 했다.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가 처음 도입되었던 1982년은 바로 장영자 사건이 터진 해이다. 한국에서 자본이 부족해 사채업자들이 산업계를 주물럭거리던 시점에 도입되었던 제도를 자본이 넘치는 시대에 유지하는 것은 정경유착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이 제도를 거론하는 답답하기만 하다.
세계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
자본이 부족했던 그 시기에는 이자율을 낮춰야 기업이 살았고 경제가 좋아졌다. 아무데나 콘크리트를 부어대도 시간이 지나면 쓸모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용 편익 분석에 따르면 있어서는 안 될 토목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엉뚱한 토목공사를 하다하다 안되니, 이제는 4대강 사업이라는 희한한 사업까지 벌이고 있다. (이 한심한 사업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보수가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지 궁금하다.) 토목 공사뿐 아니라 기업의 많은 투자도 수익을 낼 수 없다.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을 쥐어짜서 대부분의 소득층에서 소득이 줄어드는데, 국내에 투자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낮은 이자율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70년대 화석에 불과하고 세계화가 무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더욱 큰 문제는 자본시장이 개방되어 있는 상황에서 국내 이자율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학 교과서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는 행위다. 자본의 이동을 허용하면 독립적인 통화정책이나 환율통제 중에서 하나를 포기해야한다. 고집스럽게 자본의 이동성(그것도 유입되는 자본만 강조)을 높이면서 이자율과 환율을 동시에 통제해서 비즈니스 프랜들리의 진면목을 보여주려나 보다.
▲ 747 경제팀이 돌아왔다. 강만수 특보(오른쪽)와 최중경 수석(왼쪽)이 청와대에 포진했고, 김중수 총재가 중앙은행을 거머쥐었다. ⓒ뉴시스 |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서 경제의 장기적 안정성을 해칠 때, 거품이 아니라고 규제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난데없이 부동산 가격 폭락은 방치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오를 때 거품이 아니었으면 내릴 때도 정상가격일 텐데, 그건 왜 막는지 필자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냥 건설족 프랜들리 정부라서, 건설족 프랜들리 한국은행이라서, 건설족 프랜들리 관료라서 그렇다고 고백하는 편이 낫지 않겠나 싶다.
그래서 그들이 돌아왔다. 이자율은 낮을수록, 환율을 가급적 높여 경상수지는 흑자를 많이 낼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인사들, 외환위기를 맞을 때마다 현장에 있었으면서 여전히 70년대 방식을 고집하는 인사들이 다시 돌아왔다.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주권국가가 외환시장을 통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믿는 인사들이 다시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들이 정책을 주도할 때마다 한국경제는 위기에 빠졌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느날 갑자기 외국인이 마음이 바뀌면 한국경제는 다시 위기에 빠진다. 해외 자본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한국경제를 든든한 반석 위에 올려놓을 방법을 그들이 알 리 없기 때문이다.
위험을 분산하라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사는 것이 한국의 전망이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경제의 전망이 좋다고 한국인이 한국주식만 사는 것은 바보들이 하는 짓이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재무경제학의 기본원리조차 모르는 것 같은 한국경제의 모습이 답답하기만 하다.
지금은 한국주식을 팔고 해외 주식을 사야할 때고, 한국 부동산을 팔아서 해외 부동산을 사야 할 때다. 해외 부동산이 폭락하기 전에도 그랬으니 해외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 지금은 더욱 유리하다. (비용이나 수수료도 비싼데, 자꾸 환율을 조작하고 있으니 실제로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재무경제학의 기본 원리는 수익률만 보지 말고 위험을 보라는 것이다.
2010년 한국이 처한 상황은 1970년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세계화의 격랑을 안정적으로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사고가 필요하다. 세계화 시대에는 자본이 아니라 노동에서 승부가 난다. 생산성 높은 노동자가 있는 곳에 자본이 간다. 70년대에 한국주식과 부동산을 팔라고 주장하면 그건 미치광이의 주장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파고가 높은 2010년에는 한국주식과 부동산을 팔아서 충분한 해외자산을 확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세계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으면서 FTA 체결에만 열을 올리는 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재무경제학의 기본도 모르면서 자본시장 통합과 개방에만 열을 올리는 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아무런 대비를 할 수 없는 서민들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다 죽으란 말인가? 여전히 세계화를 자기 편한대로 해석하는 보수의 무감각과 무능력에 경악할 따름이다.
망국의 교훈을 잊지마라
어렴풋이나마 120년 전 일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일본인들과 서양인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있었다. 개화파든 수구파든 모두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당혹해 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래서 결국 망국 100년을 맞았는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120년 전 선조들과 똑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는 모습에 참담하기만 하다. 이 정부 어딘가에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남아 있다면 제발 세계화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고민 좀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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