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덴마크의 해고 자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덴마크의 해고 자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라스무센 덴마크 전기원노조 사무총장을 만나다

지난 4월 18일과 19일 싱가포르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운동의 대응"을 주제로 국제회의가 열렸다. 국제화학에너지광산노련(ICEM) 주최로 열린 이번 회의에는 유럽과 아시아의 노동운동가 50여 명이 참여해 각국의 비정규직 현황을 짚어보고 노동조합운동이 할 일을 토론했다.

회의 참석을 위해 아이슬란드 화산재를 넘어 먼 길을 날아온 조르겐 라스무센(Jorgen Rasmusen) 덴마크전기기술자노조(DEF) 사무총장을 만나 비정규직 문제에 덴마크 노동운동이 어떻게 대응하는 지를 들어보았다. 라스무센 사무총장은 전기 노동자 출신으로 덴마크노총(LO) 집행위원을 겸임하고 있으며, 2005년부터 ICEM의 '비정규 문제 전문가 모임'에 자문위원으로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먼저 덴마크 전기기술자 노조(DEF)에 대해 설명해 달라.

영어 이름은 'Danish Trade Union of Electricians'로 덴마크어 약자가 DEF다. 1893년에 첫 현장 조직이 만들어졌고, 1904년 정식으로 출범했다. 역사적으로 덴마크는 산업보다는 직업별로 노조가 만들어졌는데, DEF도 전기 기술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노조로 지금 조합원은 3만 명이다.

코펜하겐의 본부에는 상근자 60명이 근무하고, 전국적으로 13개 지역본부를 두고 있다. 덴마크에서 일하는 전기기사의 90%를 조직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의 다른 노조들처럼 실업기금을 운영한다. 실업기금 재원의 80%는 정부에서 오고 20%는 노조 재정에서 댄다. 현재 전기기사들의 실업률은 전국적으로 7% 정도다. 이들의 실업기금을 우리 노조가 준다.

전국 수준의 단체협약을 25개 갖고 있다. 12개는 전국 규모의 사용자단체들과 체결한 것이고, 나머지는 사용자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기업들과 체결한 것이다.

조르겐 라스무센(Jorgen Rasmusen) 덴마크전기기술자노조(DEF) 사무총장 ⓒ프레시안(윤효원)

한국의 정부와 사용자는 덴마크 노동시장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용자가 언제나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면서 한국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시장 유연성 때문에 '강소국(强小國)'이 되었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사용자의 해고 권리를 보장한 법률은 없다. 덴마크의 노사관계는 법률이 아니라 노사 자율에 의존한다. 사용자의 해고 권리는 단체협약으로 인정된다. 협약 조항만 놓고 보면 사용자가 오늘 노동자를 불러 내일 나오지 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용자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그런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사용자와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단체협약에는 사용자의 해고 권리와 더불어 해고 사유와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협의하거나 합의하지 않은 해고는 있을 수 없다. 물론 회사 경영상 불가피한 경우 노조는 해고를 받아들인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노동조합이 해고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유연안정성(flexicurity) 때문이다. 실업기금 덕분에 해고되어도 월급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실업기간 동안 국가와 노조가 재교육을 제공한다. 재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숙련도를 높여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실업자가 되어도 기업별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원 자격은 유지되고, 사회보장 혜택도 그대로다. 그래서 해고나 실업에 대한 공포감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덜하다.

둘째 이유는 70%에 달하는 노동조합 조직률이다. 2009년 10월 덴마크 인구는 현재 552만 명이다. 그 중 206만 명이 노조원이다. 최근 들어 노조 조직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70%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단체협약 적용률은 2008년 현재 83%로 더 높다. 많은 노동자들이 노조원이 아닌데도 단체협약을 적용받는다. 덴마크의 유연안정성이 그런대로 잘 굴러가는 것은 노조 조직률 70%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노동자는 1600만 명이고, 노조원은 160만 명 수준으로 노조 조직률은 10%며, 기업별노조 체계의 관성 때문에 단체협약 적용률은 10%에 못 미친다 -필자 주.)

덴마크 전기기술자 노조 조합원 가운데 비정규직은 얼마나 되나?

500명 정도 된다. 우리 노조는 비정규직은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도 조합원으로 받아들인다. 앞서 말했듯이 덴마크에서 일하는 전기 기술자 10명 중 9명이 우리 노조원이다. 90%가 넘는 노조 조직률을 바탕으로 전기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가 비정규직으로 저하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ICEM 주최로 싱가포르에서 열린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운동의 대응" 세미나 모습. ⓒ프레시안(윤효원)
덴마크 경제 전체를 볼 때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인가?

비정규직, 특히 파견노동자(agency workers)가 제조업에서 문제가 된 것은 10년 정도 된다. 직접적인 계기는 유럽연합(EU)의 관련 법령(directive) 제정이다. EU가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법제화했고, 그 결과 사무직에만 있던 파견노동이 제조업에도 침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한국과 같은 기업별노조가 아니라 산업 혹은 직업별로 묶이는 초기업별 노조 구조를 갖다보니, 비정규직들도 쉽게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한국과 비교할 때 큰 차이점은 정부나 사용자의 반(反)노조 성향이 현저히 덜 하며, 비정규직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을 보호할 조직이나 장치가 취약하기 때문에 낮은 임금, 장시간 노동, 열악한 조건, 사회보험으로부터의 소외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정부나 사용자의 선의(善意)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법도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 반(反)노동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법이 개악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이야말로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 가장 효과적인 조직이라 할 수 있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세계 최고이면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한국처럼 심각하지 않은 것은 노동조합의 강한 힘과 단체협약의 포괄적 적용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이 대기업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이익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 노동운동을 어떻게 보는가?

2005년에 한국을 방문해 비정규직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공장과 노조를 방문해서 현황을 살펴본 적이 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국제적으로 한국 노동운동만큼 비정규직 문제를 자기 문제로 안고 싸우는 데가 없다. 물론 대기업 정규직에 기반한 기존 관성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의 다른 노조운동들과 비교할 때 한국의 노동조합들은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 정치 의제로 제기하는 데 성공했고, 산업별노조 건설과 산업별 단체교섭의 시도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보호와 조직화에 애쓰고 있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역동성은 한국 노동운동이 가진 강점이다.

물론 궁극적인 목표에 만족스럽게 도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과를 폄하(貶下)해서는 안 된다. 밖에서 볼 때, 한국의 노동운동은 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이익집단보다는 전체 노동계급을 위한 사회운동이라는 성격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 점에서 한국 노동운동가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 노동운동에 조언을 해준다면?

세 가지다. 첫째, 한국의 경우 기업별노조를 하루 빨리 산업별노조로 전환해야 한다. 기업별노조 체제를 유지하는 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와 조직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동운동의 역사를 볼 때 기업별노조가 소수의 정규직 노동자의 이익을 벗어나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 적이 없다.

둘째, 법 만능주의에 빠지면 안 된다. 법은 정권이 바뀌면 또 바뀐다. 법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직화와 단체교섭 같은 노동조합 주체의 노력과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 원칙인 '동일노동-동일임금', '동일노동-동일대우' 조항을 법률과 단체교섭에 확실하게 넣어야 한다.

한국의 사용자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덴마크처럼 유연한 노동시장을 정말로 원한다면, 노동조합의 산업별노조 전환에 협력하고 산업별 단체협약을 체결하라고.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동운동을 넘어 사회 구성원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 자체도 문제지만, 기업과 사용자가 왜 비정규직을 쓰느냐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결국 이윤 때문이다. 노동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사회적 덤핑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속성이다.

노동조합의 역할은 지금 당장 자본주의 자체를 변혁시키기는 어렵더라도 인간을 덤핑용 물건으로 취급하는 자본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자본가도 인간이고 노동자도 인간이다. 일터에서 자본가의 전횡(專橫)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근본 이유다.

비정규직을 쥐어짜서 창출한 이윤이 어디에 쓰이는가. 회사의 발전을 위해 쓰였는가. 미국 발(發) 경제위기는 인간을 덤핑해서 만들어진 이윤의 상당 부분이 부패한 기업주와 경영인과 주주들의 개인 주머니로 들어갔음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인간 덤핑의 사슬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 중심에 비정규직 문제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인간 덤핑이 무제한으로 허용된다면, 그 다음 순서는 당연히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덤핑이 될 것이다.

인간은 덤핑용 물건이 아니다. 한국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하향평준화로 갈 것인가? 아니면 상향평준화로 갈 것인가? 그 답은 여러분이 지금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