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현실에 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태도를 놓고 민주노총과 노동부 사이에 때아닌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ILO가 최근 우리나라의 노동기본권 문제에 대해 '직접 개입'할 것을 약속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노동부는 ILO 측이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는데 민주노총이 과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ILO가 우리나라의 노동현실에 대해 '심각한 우려'의 뜻을 표명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ILO가 앞으로 우리나라의 노사관계에 어느 수준으로 개입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민주노총 "ILO 사무차장이 '직접 개입' 약속했다"
8일 민주노총에 따르면, 이창근 국제부장 등으로 구성된 'ILO 방문단'은 지난달 27일과 28일 ILO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ILO의 타피올라 사무차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방문단'은 우리 정부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와해하기 위해 각종 지침을 내놓고 있고, 전재환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 등을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하는 등 노동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타피올라 사무차장에게 전하고 ILO의 대응책 강구를 요구했다.
이에 타피올라 사무차장은 우리나라 정부의 노동기본권 탄압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한편, 우리 정부에 대해 '직접 개입(Direct Intervention)'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방문단'은 주장했다.
노동부, "사실무근" 반박
그러나 노동부는 이같은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ILO가 '직접 개입'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제네바에 파견돼 있는 정부 측 담당자가 확인했다는 것이다.
8일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4일 주 제네바 대표부의 권혁태 노무관은 민주노총 방문단이 면담한 당사자인 타피올라 사무차장을 만나서 사무차장이 '직접 개입'을 언급했는지를 확인했다.
이에 타피올라 사무차장은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해 ILO 차원의 걱정을 표명하긴 했지만 '직접 개입'은 언급하지 않았고, 이는 민주노총이 과장되게 표현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는 것이 노동부의 설명이다.
'심각한 우려'는 무엇을 의미하나?
현재로서는 타피올라 사무차장이 민주노총의 '방문단'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직접 개입'을 언급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주목할 부분은 타피올라 사무차장이 우리나라의 노동현실에 대해 '심각한 우려(extreme concern)'를 표명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노동부도 이견을 달고 있지 않다.
이에 민주노총은 타피올라 사무차장의 '발언' 자체를 두고 진위 논란을 벌이는 것은 본질을 벗어나는 일로 판단하고, ILO가 어떤 방식으로 '심각한 우려'를 현실화시킬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은 "타피올라 사무차장이 '직접 개입' 의사를 수 차례 밝힌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그러나 노동부가 이를 전면 부인하는 상황에서 타피올라 사무차장의 발언에 대한 진위 논란을 이어가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노총은 ILO가 우리나라의 노동기본권 훼손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 만큼 향후 ILO가 어떤 방식으로 이해당사자 간의 조율을 통해 직접 개입을 하는지 지켜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도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타피올라 사무차장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것은 사실"이라며 "ILO가 향후 어떤 식의 행보를 보일지에 대해서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ILO가 개별 국가의 문제에 대해 '제소->논의->권고'라는 공식적 절차를 따르지 않고 ILO 주요 인사가 주 제네바 대표부의 우리 정부 담당자를 만나 '심각한 우려'의 뜻을 전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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