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영국 대처 정부가 하던 정책을 따라하고 있다. 대처 수상이 1979년 당선되고 나서 제일 먼저 했던 것 중 하나가 노동조합을 잡는 것이다. 노조를 잡아 자본가들이 구조조정, 임금 삭감, 해고 등 모든 것을 맘대로 하겠다는 생각인데 이명박 정부도 지금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엊그제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올렸다는 등 이명박 정부는 자꾸 경기가 좋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거짓말이다. 난 신용평가기관들을 안 믿는다.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터지기 직전까지도 잘한다고 하다가 터지고 나서 바로 신용등급을 내렸다. 그러면 끝이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전 서울대 교수)는 지난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본다. 마르크스 경제학자인 김 교수는 현재 세계경제가 '공황'에 빠졌다고 보고 있다. 일부 주류 경제학자와 언론에서는 1990년대 세계경제의 특징인 '골디락스(Goldilocks)'가 다시 도래했다는 낙관론까지 내놓고 있는 것과는 대비되는 분석이다. 골디락스는 경제가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상태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없이 꾸준하게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2007년 2학기를 끝으로 서울대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해온 김 교수가 2권의 책을 냈다.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애덤 스미스 원저, 김수행 지음, 두리미디어 펴냄)과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카를 마르크스 원저, 김수행 지음, 두리미디어 펴냄). 김 교수는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두 권의 고전을 통해 이번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독해를 시도했다.
니들이 애덤 스미스를 알아?
▲ 김수행 교수는 15일 오후 출판사 '두리미디어'에서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등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두리미디어 제공 |
2010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 대한 해석이 판이한 것은 무엇에 주목하느냐의 차이다. 누구의 삶을 기준으로 경기 회복을 판단할 것인가에 있어 김수행 교수는 '전국민의 부'에 주목한다. 그의 이런 시각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시조로 여겨지는 애덤 스미스에 기반한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스미스를 자유방임주의자, 시장만능주의자로 인식하는데, 이는 철저한 오역이라는 게 김 교수의 해석이다. <국부론>을 통해 당시 영국의 중상주의를 비판했던 스미스가 내놓은 '국부'는 '전국민의 부'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당시 중상주의 정책을 가장 공격을 많이 했다. 중상주의는 수출을 많이 해서 금은을 많이 갖고 있으면 그 나라가 부자라고 주장했다. 이런 정책을 통해 가장 많이 혜택을 보는 것은 큰 무역상들이나 일부 제조업자들이다. 아담 스미스는 이런 생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금은이 많은 나라가 과연 부자냐. 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예로 들어 이런 생각에 반기를 들었다. 당시 두 나라는 식민지 건설을 통해 금은이 화폐로 들어왔다. 화폐가 많아지니까 물가가 올랐다. 공산품과 농산물 값이 많이 오르니까 다른 나라에서 두 나라에 상품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결국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산업이 다 죽었다. 일부 무역상과 제조업자들은 큰 이익을 보았을지 모르지만 국민 전체가 잘 살지는 못했다.
스미스는 국부를 전 국민의 부라고 정의했다. 국민 전체의 부를 증가시키는 것은 금은이 아니고 그 나라에서 일년 동안 생산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이다. 그 나라의 토지와 노동이 만들어내는 연간 생산물이라고 다시 정의를 했다. 이런 관점에서 국부를 증진시키려면 노동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노동자 수가 증가시켜야 하고, 노동자 개개인이 숙련돼서 노동생산성이 올라야 한다고 봤다.
스미스는 이를 위해 특권층들의 특권을 없애라고 주장했다. 일부 상인들과 제조업자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수출증진정책과 수입억제정책을 쓰는 것을 비판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고 스스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이게 자유방임이다. 지금은 재벌들을 위해 규제완화를 하는 게 자유방임으로 이해하는데 특권층의 특권을 없애는 것이 애덤 스미스가 얘기한 자유방임이었다."
"MB정부 경제정책, 부자들 부만 늘려"
▲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 카를 마르크스 원저, 김수행 지음, 두리미디어 펴냄. ⓒ프레시안 |
"솔직히 이명박 정부 사람들이 국가경제가 뭔지 아는지 궁금하다. 모든 국민을 잘살게 해야지 왜 건설업자에만 몰아주나? 재정적자만 내면서 고용이 늘지도 않고 경제가 살지도 않고,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지난해 2월 기준금리를 2.0%로 낮춘 뒤 14개월째 사상 최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나는 지금 금리가 이렇게 낮은 것도 반대다. 지금 부자들은 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돈 빌려서 땅 사고, 아파트 사고 있다. 또 은행은 예금 금리는 낮춰 놓고 대출금리만 올려 이전에 손해 봤던 거 전부 메우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부동산 대폭락이나 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
"'돈 황제' 정주영을 뛰어넘은 이건희"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수출)대기업 중심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는 노조의 무력화를 통해 외국자본의 국내투자와 한국자본의 수출 증진을 촉진하는 게 목표다. 이를 통해 실제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들은 이명박 정부 2년 동안 호조를 누렸지만, 투자와 고용은 늘리지 않았다. 김 교수는 앞서 수출 경쟁력을 늘리기 위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고 하도급 업체를 쥐어짜는,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욱 착취함으로써 국내수요기반을 더욱 축소시키고 서민들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수출 증대와 서민 불행의 악순환에 대해 지적해왔다. 이 과정에서 재벌 대기업과 정권의 유착은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단독 사면 이후 경영 복귀는 예견된 일이었다.
"이건희 씨가 사면을 받은 뒤 '우리 모두가 정직해져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그 얘기를 듣고 참으로 기가 막혔다. 이건희 씨 옆에 가신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이 이건희 씨의 경영 복귀를 부추겼다고 한다. 이건희 씨는 삼성을 자기가 노력해서 만들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현재의 삼성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결과다. 그래서 이 사회의 것이다. 그런데 이건희 씨에겐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또 한국의 반기업 정서를 언급하면서 다른 나라로 본사를 옮긴다는 협박도 가끔 한다. 내 생각엔 삼성이 다른 나라고 가면 망한다. 한국에 있으니까 그 많은 삼성 장학생들의 비호를 받아 남아 있는 것이다. 삼성이 한국에 있으면서 큰 인심이라고 쓰는 것처럼 하는데, 노조도 없는 대기업이 21세기 어느 나라에 있다고 생각하나. 예전에 정주영 현대 창업주를 '돈 황제'라고 비난한 소설이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이건희 씨가 더한 것 같다."
80년대 현대그룹 직원 출신인 백시종 씨는 <돈 황제(皇帝)>라는 소설을 펴냈다. 이 소설은 한 재벌 회장의 부정축재, 권력·언론과의 유착, 여자관계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연상시키는 책이다.
"자본주의를 제대로 알아야 해법을 찾는다"
결국 두 권의 책을 통해 김 교수가 하고 싶은 말은 "자본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자"는 것이다.
"이번 미국발 세계경제위기에 대해 금융자본가들이 탐욕이 많다는 식으로 원인을 얘기하면 위기를 극복할 해답을 찾지 못한다. 자본주의경제는 인간들의 필요와 욕구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게 아니라 자본가 계급의 이윤 획득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 없이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모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번 경제위기로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읽기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해법은 '전국민의 부'를 늘리는 것이며, 서민들의 쪼그라든 삶이 펴지지 않는 한 '공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김 교수는 올해 안으로 이번 세계 공황에 대한 책과 마르크스 경제학자로서 삶을 회고한 자서전도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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