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알렌은 <제중원>의 '정식 의사'였을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알렌은 <제중원>의 '정식 의사'였을까?

[근대 의료의 풍경·13] 조선은 왜 고용을 주저했나

제중원은 조선 정부의 병원이었지만, 알렌과 같은 미국인 의사가 없었다면 근대 서양식 정부 병원의 운영은 물론이고 설립조차 어려웠을지 모른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일본인 의사들이 조선에서 진료를 하고 있었고 그들에 대한 평판도 대체로 좋았다.

알렌은 1884년 10월 1일 선교본부 총무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본인 병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그(조선인)들은 항구마다 하나씩 있는 작은 병원에서 일본 의사들이 제공하는 서양 의료에 호감을 보입니다(They take readily to foreign medicine which the Japanese doctors supply at their small hospitals, of which they have one in each port)."

하지만 조선 정부와 국왕은 일본인 의사를 직접 활용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일본을 경계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극적으로 미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의도가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북장로교회 소속인 알렌과 헤론은, 그들이 엘린우드에게 보낸 아래의 편지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스크랜튼과 미국북감리교회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지 모른다고 몹시 우려했다. 그들의 기록에는 일본인 의사들에 대한 염려는 전혀 없다. 미국에 대한 조선 정부의, 특히 국왕의 짝사랑을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는 감리교에서 여기로 (여의사) 한 사람을 보낼까봐 매우 염려가 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저는 여기에서 나가야 하고 우리는 기반을 잃게 될 것입니다(I am very afraid that the Methodists will send one here, if they do, then I am out and our place is lost). (알렌, 1885년 10월 7일)

알렌의 기록들을 보면, 조선 정부와 왕비가 미국인 여의사를 매우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자신들의 사활이 걸렸다고 생각한 그 문제에 대해 알렌은 감리교 쪽을 매우 의식하고 경계했다. 뉴욕의 북장로교 선교본부가 무리하게 엘러스를 파견한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상세히 언급할 것이다.)

감리교 선교회는 이미 자신의 병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제중원)을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병원은, 정부 병원에서는 아마 앞으로도 허용되지 않을 기독교 사업을 할 기회를 그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The Methodist mission would not take it, for they have already one of their own, which gives them what the government hospital probably never will be hampered opportunities for Christian work). (헤론, 1886년 12월 27일)

헤론의 이 편지에 제중원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헤론은 북감리교가 이미 선교까지 할 수 있는 독자적인 병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교가 허용되지 않는 제중원의 자리를 넘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애써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스크랜튼과 감리교에 대한 우려는 알렌이 미국 주재 조선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받아 제중원과 조선을 떠난 뒤에 증폭된다.

물론 우리가 여기에서 힘을 잃게 된다면, 스크랜튼 의사가 기꺼이 병원(제중원)과 제 개인적인 일 모두를 차지하게 될 테고 그러면 우리는 회복불능이 될까 두렵습니다(Of course, if we ever lose our grip here, Dr. Scranton would take all the work up, both hospital and private, gladly and it would be, I fear, irretrievable). (헤론, 1888년 1월 8일)

박사님, 제물포나 근처 어디에 의사 한 사람을 더 두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야만 헤론 의사가 병을 앓는 경우에도 그의 일을 스크랜튼에게 넘길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I do wish, Dr., that you had another physician at Chemulpo, or somewhere near so that in case of sickness, Dr. Heron would not have to hand over his work to Scranton). (알렌, 1888년 2월 16일)

각설하여, 조선 정부가 미국인 의사들과 함께 병원을 운영할 생각이었으면 그들에게 정식으로 직책을 부여하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왜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묄렌도르프를 외아문 협판이라는 고위직으로 임용하는 등 전례가 없지 않았는데 말이다.

여기에 대해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는 조선 정부 측 입장에서, 알렌을 신임하기는 하지만 관리로 정식 임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여겼을 가능성이다. 급료를 절약하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다.

또 한 가지는 알렌의 입장에서, 조선 정부에 고용됨으로써 자유로운 활동에 제약을 받을 것을 꺼려했기 때문일 수 있다. 알렌이 이미 <병원 설립 제안>에서 봉급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 이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렌이 1885년 8월 31일자로 해관 의사로 조선정부에 고용되고 월급은 5월초부터 소급하여 받은 사실(제10회)로 보아 두 가지 설명 모두 충분한 것 같지는 않다. 알렌이 해관 의사로 일한 것은 9월 초부터이므로 5월부터 8월까지 넉 달치 월급은 해관에서 일한 대가가 아니다.

제중원 설립 과정에서 마련된 <제중원 규칙>에는 의사에 관한 조항이 없다. 이것은 외국인 의사들이 제중원의 정식 직원이 아니라는 의미이며, 또 한편으로는 고용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알렌과 헤론이 고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조선 정부와 대등한 자격으로(혹은 아예 독단적으로) 병원 운영에 참여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어왔다. 그들이 끝내 고용(임용)되지 않았다면 그러한 주장도 일리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외국인 의사들은 1887년 초 알렌을 시작으로 제중원 의사로 고용되었다.

▲ <일성록> 1886년 6월 14일(음력 5월 13일)자. 알렌과 헤론을 "미국인 의사(美醫)"로 표시했다. ⓒ프레시안
이러한 점을 무엇보다도 제중원에서 일했던 외국인 의사에 대한 호칭의 변화와 월급 지급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번 회에서는 주로 호칭에 대해서 살펴보자.

제중원이 설립되고 1년 남짓 지난 1886년 6월 14일 조선 정부는 외아문 독판이자 제중원 당상인 김윤식을 비롯한 제중원 관리를 포상하고 알렌(安連)과 헤론(蕙論)에게 당상(堂上)의 품계를 제수했는데, 이때 알렌과 헤론의 호칭은 "제중원 의사"가 아닌 "미의(美醫)", 즉 미국인 의사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 알렌에게 다시 2품계를 특별히 제수할 때에도 "미의(美醫)"라고 칭했다.

敎曰美醫安連效勞旣多甚庸嘉尙特授二品階 (일성록 1886년 10월 24일[음력 9월 27일]자)

그리고 알렌과 헤론이 작성한 <조선 정부 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1886년)에도 자신들의 직책을 알렌은 "조선국 해관 의사 겸 공사관 의사"로 표기하고 헤론에 대해서는 아무런 직책이나 소속을 표시하지 않았다. 다른 기록에서도 알렌은 자신을 "美醫生敖蘭(미국 의사 알렌)"(초기에는 알렌의 한자이름을 安連, 敖蘭, 哉蘭 등으로 혼용했다. 일각에서 주장하듯이 국왕이 "安連"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면, 다른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大朝鮮濟衆院留醫生敖蘭(대조선 제중원에 머무는 의사 알렌)"(1885년 5월 7일 외아문 독판 김윤식에게 보낸 편지) 식으로 표현하지, 정식 직책을 뜻하는 "제중원 의사"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헤론도 1886년 5월 무렵에는 조선 정부의 직책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알렌은 5월 13일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지금 그(감리교도)들은 추방당할까봐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헤론과 저는 정부 관리이기 때문에 안전합니다." 그들이 당상관 품계를 받은 것은 한 달 뒤인 6월 14일이므로 그것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해관 의사로 임명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1887년 초부터는 조선 정부가 알렌을 "제중원 의사"(醫師 또는 醫士)라고 호칭하며 매달 월급 50원(달러)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호칭의 변화가 아니라 알렌의 신분이 이때부터 제중원의 정식 의사로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인천항통상사무 엄(嚴)의 보고(牒呈) 1887년 2월 23일(음력 2월 1일)자. "제중원 의사 알렌(安連)"이라고 부르고 있다. ⓒ프레시안

한편, 알렌과 더불어 제중원에서 일해 온 헤론의 호칭은 1888년 1월(음력 1887년 11월)까지도 여전히 미국인 의사(美醫師)였으며, 역시 함께 제중원 일을 보는 엘러스(Annie J Ellers)도 제중원 의사가 아니라 미국인 여의사(美女醫師)로 불렸다.

▲ <일성록> 1888년 1월 6일(음력 1887년 11월 23일)자. 그 동안의 공로를 인정하여 헤론에게 2품계를, 엘러스에게 정경부인(貞敬夫人)을 특별히 제수한다는 내용이다. 헤론의 호칭은 여전히 미국인 의사(美醫師)이며, 엘러스는 한자 이름이 없어서인지 "미녀의사(美女醫師)"라고만 되어 있다. ⓒ프레시안
1888년 1월까지 미국인 의사로 호칭되던 헤론은 그 해 3월부터는 "제중원 의사"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음력 3월부터 월급 50원을 지급받았다. 헤론의 월급은 알렌과는 달리 장기간 체불되었다가 음력 1889년말 22개월치를 한꺼번에 받았다.

알렌이 "제중원 의사"로 근무할 동안에는 정식으로 임명받지 못했던 헤론은 알렌이 미국 주재 조선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제중원을 떠난 뒤 (그것도 반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제중원의 정식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알렌은 제중원을 떠난 뒤에도 6개월이나 월급을 받았다. 공사관 직원 월급도 물론 받았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제중원 의사의 정원은 1명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듯 제중원에서 일하는 외국인 의사들의 신분은 똑같지 않았다. 알렌은 1887년 초부터, 헤론은 1888년 2월(음력)부터 "제중원 의사"로 임명받아 근무했으며, 그 이전에는 정식 직원이 아닌 일종의 "자원봉사자"(알렌이 1885년 5월 7일 제중원에서 일할 의사 한 명을 허락해 달라고 김윤식에게 보낸 편지에 "故自願有醫相助救療者"라는 표현이 보인다) 또는 "객원의사" 자격으로 일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 <황해도관초(黃海道關草)> 1888년 3월 31일(음력 2월 19일)자. 강성원으로 하여금 "제중원 의사" 헤론(惠論)에게 속히 돈을 내어줄(推給) 것을 재촉하라는 관문(關文)이다. ⓒ프레시안
알렌이 봉급을 받는 "제중원 의사"로 임명받기 위해서는 <제중원 규칙>을 개정했거나 그것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었을 터이지만 이에 관한 근거 자료는 아직까지 발견된 바가 없다.

빈튼은 제5회에서 살펴본 1891년 6월 27일자 외아문 공문 "제중원 경비 사용 불허와 및 의사 빈돈(彬敦) 거취의 건"을 보아 근무 시작 때부터 정식 직원으로 일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에비슨도 미국 공사 실(J M B Sill)의 공문 "제중원 의사 예비신(芮斐信) 자퇴의 건"(1894년 5월 10일자)으로 보아 정식 의사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밖의 엘러스, 호튼, 하디 등에 대해서는 확실한 근거가 발견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는 편이 적절할 터이지만 정식 의사로 일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면 초기에는 제중원 의사로 고용(임용)되지 않았던 알렌이 1887년 초부터 정식으로 고용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추정만이 가능할 따름이다. 우선 조선 정부가 처음과는 달리 알렌을 의사로 고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또한 알렌으로서도 정식으로 임용을 받는 편이 안정적이며 낫다고 생각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